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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pt May 30. 2021

우린 어쩌다 멀쩡한 얼굴로 그리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연재의 변

요즘 유독


이런 일이 잦아졌다.


너나 나나 뻔히 아는 메시지를 절대 입 밖에 내지 않고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한사코 그런 뜻이 아님을 표현하려 애쓰다가, 2012년형 씽크패드 노트북이 뻑이 난 마냥, 애매하게 웃는듯 우는 듯 실룩거리는 표정 그대로 안면근육이 멈춰서 애꿎은 테이크아웃 커피잔에 꽂힌 종이 빨대만 잘근거리다가, 산뜻하게 악수를 하고 일어서서 사실은 찝찝하게 자리를 떠나게 되는 일. 무언가를 풀어내려 누군가를 만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대화를 복기해보면 잠잠하던 속이 더 베베 꼬이는 일.


길고 긴 대화라야만 이렇게 엉키는 게 아니다. 일터의 복도에 놓인 자판기 앞에서 누군가와 어쩌다 잠깐 한 두마디를 섞었는데, 이윽고 정신이 아득해지더라는 간증이 속출하는 것은 어딜 가나 매한가지.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문장이 떠오르는데, 슬라보예 지젝이 책 제목으로도 써 먹은 바 있는 지져쓰 크라이스트의 말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이건 누구의 문제인가? 말하자면, 자다가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하며 깨어난 나는, 뇌를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쏟아냈던 나의 말 때문에 몸서리 치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입에서 아무렇게나 새어나와 내 귀로 흘러든 남의 말 때문에 이를 가는가? 그러니까, 우리가 소위 사회 생활이 뭔지 모르던 애송이일 때는 오가는 말의 행간과 뉘앙스를 못 알아챘기에 어리버리하단 욕을 먹었을지언정 속은 편했던 겐가. 아니면 머리가 좀 커지니, 말마따나 별 게 다 불편해진 건가. 찰만큼 찬 짬밥 대우를 받지 못한단 생각에, 앉은 자리에서 남 몰래 다른 궁리를 하느라 복잡해진 머릿속이 문제인가.


지젝이 쓴 제목 앞엔, 지져쓰의 생략된 말이 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말 그대로, 신에게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한 것인데,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라는 건 당연하고, 하물며 정녕 나 또한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원하냐면, 다시 말해, 허튼 소리를 퍼부어 귓구멍에서 피가 흐르게 하는 수많은 타인들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부드럽게 타고 넘어 한 귀로 흘리면서도 멘탈의 데미지 없이 평온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생을 축복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냐면...천만에. 노 땡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저들이 도대체가 자기들이 입 밖으로 내는 저 말이 무슨 말인지 알긴 할까요?' 싶은 순간이 올 때, 저 성경구절을 묵상하면 위안이 된다고 스스로를 속여봤자 우울해질 뿐이다. 오히려, 저 위대한 분의 그 유명한 말을 곱씹을수록 또렷해지는 건 이런 생각이다. '나도 누군가의 입에서 저 간절한 기도가 나오게 만드는 인간이란 건 괜찮니?'


그러니까 이 글은 다음의 결과다.

 

나만 그런가 싶어 부끄럽다가, 쟤네가  저러니까 내가 이러지 싶다가, 쟤는 대체  그러는 걸까, 아니, 우린   모양일까 싶어 머리를 쥐어뜯다가, 그러든 말든, 우선 내가  그래야 쟤네도  그러라고   있지 않겠냐 싶은데, 그건  나아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너보다 낫다고 말하고 싶어서라는 생각이 들다가, 이래나저래나 그럼에도 ' 그러는'  모두에게 좋은 거라고, 그럼 우선 '그러는'  대체 어떤 건지부터 정리를 해야, 그러든  그러든  것이 아닌가 싶어 쓰는 .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매거진의 제목이 정해졌다는 소리다.


듣다 보면 뭐지 싶은 소릴 나도 할까봐 겁나서 써 놓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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