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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pt Jun 02. 2021

지칭대명사로 본인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에 관하여

셀프 지칭대명사 증후군

본인은~


'형이'

'오빠가'

'누나가'

'언니가'

등등


이렇게 스스로를 지칭대명사로 일컫는 말투 뒤에는 관습법적으로 정해진 발음기호가 있다. 물결표시, '~'. 대표적인 예로, '오빠가~~'


그리고 전대미문의 시그니쳐 셀프지칭, '본인은~'

(feat.전재산 29만원. 마침 6월이네.)


이 말투의 함의에 관해서라면 길게 할 말이 없다. 그 근원과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고, 딱히 들여다봐야 아무 것도 없고, 이 말투를 구사하는 이들이 언제나 바라마지 않는 기대효과가 실효를 거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사실 그 효과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지속적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이 말투가 도대체 무엇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말하는 저들조차 '저들이 하는 말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확신하는 바이다. 아니, 적어도, 저 말투의 기대효과와 실제 결과가 언제나 불일치하는 것을 우린 아는데, 쓰는 사람들은 결코 모른다는 것은 확실하다.


저런 셀프 지칭대명사로 시작하는 문장을 들었을 때의, 표현하긴 쉽지 않으나 확실히 느껴지는 그 빌어먹을 감정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너무 뻔해져서 참아질만큼 가벼워졌기에 그저 지나쳤을 뿐인, 딱 그 정도의 구린 느낌.


내가 여러분들의 심란했던 마음을 대신하여, '셀프 지칭대명사 증후군' 환자들의 증세를 임의로 단정짓고, 내키는대로 처방을 내리겠다.


처방 : 찐따 같으니까 그러지 마라.


대안 : 그러고 싶은 순간엔 차라리 자기 이름을 넣어 말해보자. 이 경우, 문장의 어미도 변형해보자.


자, 그러니 불특정 연상남아. '오빤 그렇다? 니가 그런 표정 지으면 참 슬퍼.' 따위로 말하지 말고, 담백하게, '철수는 짐 쫌 슬포.' 라고 해보자. 연하의 연인에게 느끼하게 보이는 것 보단 차라리 비웃음을 사는 것이, 진지한 게 아니라 드립을 치는 거라고 오해받는 것이 백번 낫다.


갑자기 슬퍼진다. 왜 저 두 말투 중 하나를 꼭 선택해야되는건데! 왜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문장을 '오빠가~'로 시작하는 걸 도저히 못 멈추겠다거나 하는 심각한 중증일 경우엔 최악의 사태만을 피하잔 얘기지, 이 방법이 언제나 더 좋은 권고사항은 아님을 확실히 밝힌다. 사실 뭐가 나은지 나도 모르겠다. 미안하다.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오빠가~'가 아닌 다른 경우에는 어쩌면 효과가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저녁 점호 중에 부하들에게 멋있게 한소릴 하고 싶은 신임 중대장이 '셀프 지칭대명사 증후군' 환자라면? 그러니까 자기가 중대장인 것에 너무 감격하여 행여 다른 이들이 그 사실을 모를까봐 언제나 자신을 '중대장이~'라고 부르는 육군 대위라면? (예를 들면, 서기 2001년 모 부대의, 육사 출신의 내 두번째 중대장...)


'중대장이~ 오늘, 너희에게 참 실망이 크다.' 라고 근엄하게 목소리를 깔아 말하느니, '슬기는 니들한테 실망이얌.' 이라고 말하면 어떤가.


다소 '혼돈의 카오스, 죽음의 데쓰' 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겠지만, 아무튼 결론적으론 확실히 부대원들이 더 긴장하지 않을까. (탈영하고 싶거나... 탈영을 못하겠다 싶으면 아무튼 절대로 슬기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지겠지.) 반짝이는 계급장에 다림질한 A급 전투복을 입은 우리의 슬기씨는, 살짝 귀엽게, 정신나간 도른자로 보일테니까.

 

중대장이 본인을 중대장으로 일컬음으로써 얻어내려 했던 지휘관의 무게를 잃는 대신(어차피 본인을 중대장으로 스스로 일컫는 순간 그 무게는 이미 바람에 날려가기 시작하지만..) 어쩌면 그가 자기도 모르게 원하고 있던, 부하들의 경악하는 눈빛은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존경의 눈빛과 경멸의 눈빛을 구분하는 것부터가 우선되어야겠지만, 지칭대명사로 스스로를 일컫는 것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언가를 얻고 싶은 이들에게 그런 사리분별력이 있을리 만무하니 무얼 바라랴. (아, 참고로 우리 중대장 이름이 슬기였던 건 아니다. 슬기는 사실 옆 부대 취사장에 있던 개 이름이었던 거 같다..)


슬기가 짖는 소리마냥 가볍게 쓰려던 글이 수습이 안될 기미가 보이니 서둘러 정리해보자면 이러하다.


지금의 그 말투로 당신이 시도하는, 게으르고도 느끼한 자기존재증명은 정말이지 제발 사절이다. 차라리 듣는 이에게, 말하는 당신을 비웃거나 어이없게 여기게 해달라.


이렇게 이 글을 끝내려 했는데 뭔가 아쉬워 아이디어가 하나 더 나왔다.


요샌 힙한 스타트업이나 IT 기업 같은데선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른다는데, 이 참에 본인 전용 지칭대명사로 이국적인 이름을 하나 만드는 건 어떤가.


'재촉하지마. 짜증나. 매덕스가 지금 가고 있거든?' '너는 그런 일이 있었으면 셸런버거한테 먼저 말했어야지.'


아, 못 해먹겠다.


그냥 '나, 내, 제, 저' 를 적절히 잘 활용하자, 제발. 원래 있는 거 용도에 맞게 잘 좀 쓰라고.


일단, 난 스스로를 저런 식으로 칭해본 적이 내 평생에 단 한 번도 없다. 자랑하려는게 아니라 저 말투를 구사하는 사람을 앞으로도 계속 싫어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다.


말인즉,  여사친, 여후배에게 '오빠가, 오빠는' 거리거나, 나나  동생들한테 '형이, 형은' 거리면 아구창 돌릴꼬야. 진지하게 끄적여봤지만   말이 하고 싶었던  같다.


말하자면, 형이~ 아구창을 돌리기 위한 추진력이 필요해서 쓰는 글이얌.


아님 나부터라도 이국적 이름 셀프 지칭으로 대응할까? 아, 그럼 이름을 뭘로 하지? 트래비스? 막시무스? 브루스 배너? 안톤 쉬거?


그만 하자, 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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