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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pt Jun 06. 2021

경고요? 다음엔 퇴장 시킬 건가요?

카드 캡터 체리야, 뭐야.

경고야, 조심해.


내 면전에 대고 저 워딩을 실제로 구사하는 자를 마주한 적은 없다.


종종 대사로는 들어본 적 있는 말이랄까?

예를 들자면, 느와르를 빙자한 양아치 어조의 쌈마이 영화라던가, (ex. '경고했었지? 니 배때지는 조만간 내가 봐 버린다고.' 따위) 혹은 붕당정치가 극심했던 시대의 궁중 암투를 그린 숱한 사극 드라마라던가 (ex. '내 경고하건데, 자네의 그 사사로운 야욕이 종묘사직을 위태롭게 할 것이야아~!' st.)


그런데 실제로 그런 대사를 구사하는 이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근래 들어 연달아 접하였다. 한 명은 판교에 위치한 본사 건물이 통유리라 그 건물에서 비롯되는 빛반사가 주변 거주자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취지의 송사에 휘말려 10년 만에 손해배상 청구 재판에서 패소한, N사의, 어떤 개발 임원. 또 다른  한 명은, 자기 작품의 bgm으로 쓰려고 글로벌 ip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9억인지 10억인지를 주고 사왔다고 자랑하더니, 급기야 결정적 장면의 고속촬영 컷마다 bgm으로 깔아놓고 극의 흐름을 홀딱 깨부셨다는 평을 듣더라는, 어떤 감독.


그러니, 내가 저 워딩을 직접 들으면 문어체를 구사하는 오타쿠를 마주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 잠깐 스치고 말겠지만, 여러분이 매일 마주쳐야 하는 윗사람이 저딴 말투를 시전한다면, (이 경우엔 윗사람이라고 쓰고 잡것이라 읽자.) 그걸 겪는 아랫사람으로서는 그 짜증과 고통을 참기 힘들 것이리라.  



비겁한 애들 종특


저런 말투를 들을 때 느끼게 되는, '딱히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ㅈ같음' 따위를 설명하는 것이 이 매거진의 취지다. 왠지 반복될 주제일 것 같으니 외우고 넘어가자. '딱히 설명할 수 없는 ㅈ같음'의 핵심은 비겁함과, 비겁함 뒤에 당연히 뒤따르는 얇디 얇은 거만함이다. 이를 일컫는 사자성어(?)가 있다. 강약약강. (줄임말의 위대함에 건배.)


물론 신입사원 OT 때 살아있는 닭을 일본도로 베어보라고 했다는 참신한 또라이가 시전한, '전혀 비겁하지 않고 당당하게 ㅈ같은', '다짜고짜 뺨 때리기'가 저런 '비겁하고 은은한 협박성 어투'보다 낫냐고 묻는다면, 그냥 둘 다 똑같이 치워야 할 쓰레기라 말할 수 밖에 없긴 하네. (어차피 다 똑같은 똥을 뭘 구분해.)


하지만 난 이 둘을 이번만큼은 구분해보고 싶다. 어떤 사안에 대해 '그냥 총체적으로 거지 같네'거나 '아무튼간에 이건 아니야' 라는 식으로 간단히 말하는 것은, 순간적인 기분풀이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다음에 같은 일이 생겼을 때를 가정한다면 전혀 건설적이지 않다. 욕하고 깔려면 디테일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까야, 까는 나도 학습이 되고 맞는 걔도 타격을 입는다. 애매한 리액션은 걔한테 승리감을 주고 걔의 정신승리는 또 다시 내게 타격을 준다. 그러니, 제대로 알고 까자. 아님 걍 거기에 대한 고찰을 말던가. (니체 말마따나 심연을 오래도록 바라보면 그 심연도 나를... 근데 그럼 이런 뻘글을 못 쓴다.) 말하자면,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견해이자, 나의 소소한 유희거리란 소리.


각설하고, 이를테면, 돈이 썩어나게 많이 쌓이는 바람에 돈벌레 냄새에 뇌가 이상해져 백화점 직원에게 폭언을 하다 침을 뱉고 뺨을 때린 갑질 빌런이 변호사를 돈으로 사고 검사도 돈으로 사고 온 세상 천지를 자신의 뇌물로 수놓겠다고 소리치는 소릴 듣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많은 돈으로 송사를 치르시라고 하고 나는 깽값을 받으면 된다. 뒷짐 진 손을 절대 풀지 말고, 같이 가래침을 뱉어 인중에 맞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핸드폰으로 상황을 잘 찍어두면 된다.


빌런의 저 행각은 무덤에 계신 우리 증조부부터 내 조카에 이르기까지, 혹은 사돈의 팔촌의 땅을 산 친구의 친구 아버지에게 보여줘도, 저 빌런의 뇌상태를 걱정하게 되는, 심플하고 명백하게 미친 자의 미친 짓. 얼마나 간단명료한 상황인가. 세상에 칼로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있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 우리의 모든 병의 근원일지도 모를진데, 이런 상황은 그야말로 그 근원을 치료해줄 백신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난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지길 간절히 원하고 또 원한다. (일례로 얼마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났고, 뇌가 고장난 갑질 빌런이 갑자기 그런 자기를 촬영 중인 내 핸드폰을 보더니 스스로 병을 고치고 내 앞에 실제로 말 그대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은혜로운 일이 발생했고, 나는 몇 주간 앓던 우울증이 나았다.)

 

그러니까, '경고야. 조심해.' 라고 말하는 것이 이런 상황들과는 다르지 않냔 말이다. 길게 말했지만, 짧게 말하면 이런 게다. '좀 애매한', 그러니까 핸드폰으로 찍어서 고소를 하기엔 애매한 언어폭력, 위축된 당사자가 이 말을 듣고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게 만드는 워딩. 강약약강의 비겁자만이 입 밖에 낼 수 있는 단어. 그런 말투나 단어가 많겠지만, 희소성에 있어서 '경고야, 조심해.' 는 무척 귀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야, 정말 니네 대단하다, 진짜 이렇게 말하는 구나.



경고는 누가 하는가


'경고!'라고 소리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 사람의 직업은? 심판. 대표적으로 축구 심판. 1차 경고는 옐로우 카드, 2차 경고는 레드 카드. 레드 카드를 받으면 퇴장.

  

자, 그러니, 경고를 준다는 건 자신이 게임의 룰이자 심판이란 얘긴데... 그럼 우린 선수? 그런데 자신은 심판이고? 이게 어디가 이상한 건지 정리해보자. 정리해놓으면, '경고 먹고 당황, 위축되서 눈치보다 집에 와서 빡침.'의 과정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우선, 모든 스포츠에는 협회가 있다. 협회는, 때때로 심판의 판정에 항의하는 이들을 위해 VAR같은 영상판독을 도입하기도 하고, 부당한 판정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선수나 팀이 재소할 기회를 주기도 하고 판정을 번복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모든 경기엔 주심과 부심이 있다. 주심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그렇기에 부심이 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의 목적은 '공정한 판단'으로 우리 모두 이 경기의 룰에 입각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자웅을 가려보자는 것이다.


다시 묻겠다. 내게 경고를 먹인 저 팀장은 지금 무엇을 위해 복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부심이 있나? 공정한 판단으로 내가 옐로카드를 한 장 먹으면, 그럼 난 누구와 자웅을 겨루는데 있어 피해를 보게 되나? 나는 지금 저 팀장과 대화 중이던게 아닌가?


그러니까, 둘이 치고받다가 상대 선수가 갑자기 심판을 하겠단 소리네. 근데, 애초에 자기는 나랑 동등한 선수 입장이 아니었다고, 그래서 나한테 경고를 준다고 하네? 그런데, 그럼 이 대화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나와 같이 링에 올라서 대화를 하고 있던거네?


그러니까, 첫 번째 bullshit 포인트는 이것이다. 갑자기 카드를 방패삼아 링 밖으로 도망치는 멘탈. 나와 대화를 하는 사람이, 자기는 선수가 아니라 그보다 우월한 제3자, 그러니까 심판자라는 정신머리.


ㅇㅋ 그래, 자기가 나와 함께 나누던 대화가 아니라, 내가 평소 하는 짓거리가 맘에 안든다며 저렇게 경고를 날릴수도 있으니, 뭐 그럴 땐 심판의 역할을 하겠다는 게 자기 딴엔 모순적이지 않다고 여길 수 있지.


여기서 두 번째 bullshit 포인트가 나온다. '내가 다 맞아', 떼쓰기. 그러니까, 넌 룰을 모두 숙지하고 있고, 니 판단은 언제나 맞단 거지? 그러니까 내게 경고를 먹이는 거잖아. 부심을 불러서 같이 얘기해보자거나, 영상판독을 해보자고 하면 어떡할거야? 당연히 두 번째 경고를 먹이겠지. 판정 번복은 불가, 판정에 대한 항의는 또 다시 경고.  


이쯤되면, 저 경고를 정말로 무서워해야 되는 게 맞나 싶다. 몸서리쳐지고, 대처방안은 떠오르지 않고, 나는 고립되고 불안해진다. 이미 경고를 하나 먹었으니 이 게임을 이기길 바라기 힘들고, 퇴장만 안 당했으면 싶은 마음만 간절해지는 게 맞나? 쟤가 원하는 그대로.



무엇이 나를 퇴장시키는가


그러니, 어쩌잔 말인가? 상황이 이런 줄 잘 알고 당하면 덜 아플 거라고? 아니. 당신은 이제 이 말도 안되는 세팅을 인지했으니, 그러니까 윗사람이 '경고야.' 라고 한마디 말하는 것이, 그저 잠깐 기분나쁘고 말 소리라거나, 극복해야 할 그의 약간은 특별한 말버릇이라 치부할 게 아니라, 그 말은 그 자체로 나를 꼼짝 못하게 하려는 치밀한 상황 설정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그 시스템을 벗어나야 한다. 매트릭스의 빨간 약을 삼키는 것에 준하는 선택을 해야하는데, 그 선택은 마음 먹기엔 거창한 일이나, 실행하기엔 간단한 일이다.


이렇게 물어보라. '다음엔 퇴장인가요?'

'빈센조'처럼 어깨를 으쓱 하고 살짝 찡그리며, 손가락 끝을 모은 두 손을 살살 흔들면서.


당신에게 있어서의 퇴장이란 무엇인지 상상해보라. 여러분이 빈센조처럼 마피아의 콘실리에리라면, 퇴장은 암살 당하는 것일 게다. 축구 선수라면 당연히 그저 경기장을 떠나 이번 경기를 쫑내는 것.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에게라면 이번 일을 못 따내는 것일 수 있겠다. 많은 프리랜서가 여기서 다른 걸 걱정한다. 그런 걱정을 하는 이들이 뭐라 항변할지 나도 안다. '이번 일이 아니라 다음 번 일도 이번 경고로 인해 따낼 수 없게 될 것이 두렵다'는 것. 하지만, 그건 잘못된 징계다. 정말로 저 '경고'가 합리적이고 공정하다고 하더라도, 이번에 카드 두 장을 받아 퇴장을 받는 것과, 다음 경기 출전 금지는 다른 사안이다.


하지만, 당신은, 내게 경고를 내리는 그가 다음 경기에도, 그 다음 경기에도, 심지어 다시는 그라운드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영원히 은퇴시켜버리겠다고 마음 먹으면 내가 지금 머리 숙여 읍소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그러니 저렇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직접 되묻는 것이 마음에 부담이 된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래서, 다음엔 퇴장인가요? 퇴장시키려구요? 은퇴시키려구요?'


'경고야.' 라는 말은 직접 들어본 적 없지만, '업계에 발 못 붙이게 하겠다.' 비스무리한 조언 비슷한 빈정거림 같은, 사실은 협박이었을 말을 들은 적 있다. 그 말을 한 이의 목표와는 달리 난 콧방귀가 껴지던데, 그건 그 말을 한 이의 회사가 얼마 못 가 망할 거 같았기 때문이고, 정말 그리 되었다. 내가 보기에 그 회사가 망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나에게 한 저런 말을 여기저기 일삼으며 만만하게 보이던 작업자들을 협박했고 그렇게 작업자들을 후려친 결과물을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며 지들 포트폴리오인 마냥 영업을 다녔는데, 막상 그 일을 그 돈에 해줄 작업자들이 그 일을 다신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이 영원히 갑일 거라는 착각과 자신은 링 밖에 있다는 착각의 결과다.


정말 당신을 '업계에서 다시는 발 못 붙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겠다.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건, 당신이 저지른 악행이다. 무엇이건, 당신이 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법을 어기고 사사로이 이득을 취하고, 남을 이간질시키며 사기를 치고 혼자 이득을 독식하기 위해 드럽고 추잡한 수를 썼다면, 바로 그것이 당신을 업계에서 추방시킬 것이다. 그 일은 경고 없이 일어난다. 그렇게 퇴장당하면, 당신은 한 경기에서만 쫓겨나는 게 아니다. 당신은 은퇴를 해야 할 것이다. 퇴출의 꼬리표를 잘라내려면 속죄해야 할 것이고, 속죄에는 시간이 들 것이다.


다시 묻는다. 당신은 퇴장이 걱정되는가? 퇴출이 걱정되는가? 뭔가 잘못한 것이 있는가? 그것부터 바로잡아라. 만약,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는데, 경고를 받았다면, 경고를 날리는 이에게 물어봐라. 제가 뭘 잘못했나요? 만약 제대로 된 심판이라면, 그렇게 물어오는 이에게 친절히 알려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애초에 당신에게 긴장을 풀라며 뺨을 때리거나, 정신을 차리게 하려는 마지막 경고라는 식으로 지껄이지 않을 것이다. 경고하는 이의 생각과는 달리, 아마 당신은 잘못이 없고 경고하는 이는 자신의 언행이 지적받아야할 바로 그 잘못이라는 걸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라고 해라. 우리는 그걸 바로잡아줄 필요없다. 확인할 것만 확인해보면 된다.


그러니 결론은 이렇다.

경고요? 내가 뭘 잘못했나요? 은퇴시킬 건가요? 그럴 능력이 되나요? 부심 판정은 어떻게 되나요? 선수끼리 판정하는 룰인가요? 개솔 마시구요. 드라마 그만 보시구요.



경고는 아니고


위에 언급된 N사에선, 그 개발 임원의 재입사에 반대하던 팀장 15명이 결국 줄줄이 퇴사했다. 끝까지 남았던 팀장급 인사 한 명이 얼마 전 스스로 유명을 달리했고, 공중파 뉴스는 일제히 그 소식을 전했다. 각종 뉴스에서, 그 문제의 임원이 일삼던 폭언에 대한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나 또한 그 뉴스를 보고 그가 '경고야.'라고 말하더라는 증언을 듣게 되었다. 한 증언자는 이렇게 말한다. '경고야. 라는 말을 실제로 쓰는 사람을 처음 봤거든요. 그리고, 제가 알기론 군대도 뭐 안 간 걸로 아는데 이상한 군대 말투 비슷하게...'


내가 몸 담은 곳이 아니라 그 필드의 상황을 잘 알지는 못하고 함부로 말할 순 없다. 그러나 이건 더 이상 가벼운 말투 문제가 아니다. 상급자가 구사하는 말투로 유추할 수 있는 뼛 속 깊은 적폐의 문제다.


위에 언급한 또 다른 사례인 모 감독의 근래 한 현장에선, 촬영 몇주만에 교체된 조명감독을 위시하여, 제작부, 연출부, 의상팀 등등 숱한 스텝이 자의로 타의로 현장을 관두었고 급기야 조연출도 손을 털고 나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소문은 언제나 금새 퍼지는데, 그 감독 현장의 그런 일화는 이제 놀랄 일이 아니라 안주로도 쓰기 힘들다는 얘기마저 너무 뻔해진지 오래. 이 또한 웃을 일이 아니다. 어쩌면 그럴 가능성이 있는 필드에 한 발 걸치고 있는 나는, 내 기력이 쇠하기 전, 그가 버릇을 고치기 전, 그를 마주치길 고대하고 있다.


뻔한 빌런의 뻔한 버릇에 대해 뻔한 소릴 해보자면, 자기들을 여태 더러워서 피한는 거란  자기들은 모르겠지. 그래, 안다. 똥이 위협적일  있다. 굳기 전의 냄새 나는 똥은  그렇다. 똥은 굳는  시간이 걸린다. 냄새나고 질척거리는  피해가지만,  굳은 똥은 누구나 발로 거리낌없이 차서  위에서 치운다. 그러니까, 만만한 이에게만 서슴없이 경고를 해대는 엄한 심판병 환자들에게 일어날 일이 그러하다.


귀하는 지금 딱딱하게 굳는 중이고,  굳고 나면  세상이 당신을 신속하게 싸리비로 쓸어버릴 것인데, 그걸 시쳇말로  방에  간다고 하지요. 그리고 경기 종료 시간은 얼마  남았습니다.


이건 경고가 아니고, 예언.


그러니까, 그 날이 오면 두고본다며 삿대질을 하거나 미간을 찌푸려 눈을 치켜뜨거나, 되먹지도 않게 혀를 쓰읍 거리며 방울뱀 소릴 내거나, 그도 아니면 이를 갈며 절치부심도 하지 말고.... 계속  누구도 퇴장 시키지 못할 그깟 '경고' 계속 날려주세요. 경기 후에 누가 은퇴하게 될런지 느무느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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