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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ine Aug 22. 2020

유노윤호도 쉬고 싶지 않을까?

저 휴학합니다

  2018년 1월 8일. 내 인생에서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물 한 잔을 마시면서 한양인 포털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경건히 일반 휴학 신청 페이지에 들어갔다. 사유 선택은 간단히 ‘어학 연수’ 라 해두자. 신청 버튼을 누르고 나니 휴학 신청이 끝났다고 알림 창이 떴다. 3초 만에 휴학 처리가 된다니. 휴학 고민은 3일, 아니 3개월, 아니 3000시간 넘게 한 것 같은데 3초 만에 이렇게 끝나 버리다니. 휴학 신청한 것을 캡처 해서 인스타에 올리니 진짜 휴학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아 3월 개강을 맞이하고 3102번 버스를 타고 학교를 안 와야 더 확실한 휴학생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유노윤호 여동생인 줄 알았던 내가 휴학을 한다고 말하자 꽤 놀란 눈치로 문자를 보내는 친구, 자기는 휴학하지 않지만 휴학하는 내가 부럽다는 친구 등 하루 만에 지인들에게 휴학 관련 문자만 수십 통을 받았다. 22년간 한 번도 쉬지 않았던 학업 생활, 이제는 좀 맘 편히 쉬려고 하는데 다들 나에게 묻는 한 가지가 있다. ‘Why 휴학?’


우리가 휴학을 하는 이유

 지난 학기가 시작할 때부터 친구들한테 ‘내년에는 꼭 휴학한다.’ 라 선포하고 다녔었다. 대학생이라면 과제와 팀플, 대외활동, 아르바이트에 둘러싸인 바쁘고 힘든 일상 때문에 ‘휴학하자’ , ‘자퇴하자’라는 말을 농담 삼아 던진 경험,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거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해외여행을 가려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야 했고, 장학금을 받으려면 시험 기간에는 학정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왜 쉬어? 주말이 어디 있어?’ 가 내 인생 모토였다.


대학생이 되어서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욕심이 과했던 거지. 그렇게 쉼 없이 2년을 달리다 보니 2학기 개강과 동시에 온몸에 힘이 빠지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대해 회피의 감정이 솟구쳤다. 확 때려 치우고 싶지만 억지로 이어나가는 느낌이 가득했다. 지인들은 모두 나에게 ‘삑: 일하기 싫어증 입니다’ 라 말했다.


 네 맞아요. 하기 싫어요. 삶에 쉼표가 필요했어요. 

 

 휴학을 결심하게 되었던 건 추석 이후였다. 추석 동안 팀플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아르바이트때문에 추석 당일 날 겨우 고향으로 내려가는 나를 보면서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라는 생각을 했다. 알바로 돈을 벌면 무엇을 하리, 주말 아르바이트라는 이유로 여행도 못 가는데. ‘도대체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거지? 말만 하고 해외여행은 무슨 집도 겨우 내려가네’라는 생각에 휴학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구로 향하는 SRT 기차 안에서 휴학 후 첫 여행으로 대만 비행기 표를 끊었다. 역시 생각 난 김에 행동으로 옮기는게 제 맛이지. 


우리 모두의 고민휴학

 하지만 이런 휴학 결심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알바 몬에서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 1~4학년 중 40.8%는 휴학을 결심하고 있다고 한다. 휴학을 이유는 다양했다. 학자금 마련, 취업에 도움될 사회경험을 위해, 해외여행 및 어학 연수,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전공분야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등등이었다.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사회를 경험하게 되고 현실에 직면 한다. 취업 준비, 자격증 취득, 학자금 대출 갚기, 학점 관리 왜 이렇게 준비를 해야할 것은 또 많은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가면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어’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제는 ‘취업하고 나면 마음대로 살 수 있어’라는 말을 듣고 있다. 많은 이들이 여러 이유로 휴학을 한 번쯤은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만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현실. 우리는 왜 휴학을 왜 망설이는 걸까.


 꼭 무언가를 해야하나 

왜 내일을 오늘 골라야 할까. 어릴 때부터 학습 플래너를 작성하면서 들었던 생각이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미리 할 공부를 정해놓아야 할까. 그때 가서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 나를 위해 잠깐 쉬어가면 안되는 것인가. 며칠 전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친한 언니를 만났었다. 이번 년도에 휴학을 한다는 나에게 언니가 한 말은 ‘꼭 휴학을 해야겠어?’ 였다. 


“ 취업 준비, 학자금 마련때문에 나는 두 차례 휴학했거든. 그런데 휴학 기간은 공백기로 생각하더라. 나한테 휴학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는데 말이야..공부하느라 휴학했다 말하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나를 위해 쉬었다고 말하면 건강에 문제가 있냐, 불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더라. 또 면접에서 등록금 마련하느라 알바만 하고 지냈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시간을 허투루 쓴 사람 취급하고…내가 면접에서 자꾸 떨어지는 이유가 전적으로 휴학때문인거는 아니겠지만 그것도 이유 중에 하나가 되는 것 같아서.. ”


왜 꼭 내가 휴학을 하면서 알차게 보냈다는 것을 타인에게 증명해야 할까.

언니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 처음 듣는 것은 아니었다. 휴학했다는 사실을 주변 지인들에게 알리면 제일 먼저 받는 질문과 반응은 크게 3가지 였다.


‘너 휴학하고 뭐 할 거니?’

‘휴학하고 알차게 살 자신이 없다’ 

‘나도 휴학하고 싶은데 취업에 불이익을 준대’

                                                  

 그런데 알차게 살 자신이 없어서 휴학을 하면 안 되는 이유, 휴학하는데 꼭 구구절절한 사연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마다 살아가는 속도가 다를 뿐이지 누구도 내 결정이 틀렸다고 이야기할 권리는 없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 가는 길 잠시 멈추어 갑시다

 누군가는 복학하고, 누군가는 휴학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또 다른 목표를 위해서 과감하게 학교를 떠난다. 오늘도 답을 잘 모르는 질문에 끝없이 달려가는 우리. 가본 적 없는 선택과 선택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휴학을 정의하라 한다면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선택지’ 라 내리고 싶다. 대학생들 중 절반 이상이 ‘무엇을 할 지 모르겠다’, ’ 어떤 일을 해야할지 모르겠다’라 고민하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12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동안 나에 대해 고민할 시간은 주었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학은 취업의 매개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진짜 사회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의 시간. 간접적 경험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휴학 역시 대학 생활이 일부이다. 누가 하라고 해서 한다거나 하지 말라고 해서 한다고 결정하기 보다 본인 주관적인 생각에 잠시 ‘인생 가는 길 멈추어 가자’라 느낀다면 과감히 자신을 믿고 따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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