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line Sep 07. 2020

박스를 벗어난다는 것

본인이 원하는 일에 몰입하는 삶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의사나 공무원이 돼라. 이게 정답이고 네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 내가 꿈꾸는 것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회가 만든 “박스” 안에서, 남들이 정의한 성공을 쫓다 보면 정말로 의미 있는 삶이 될까?"       -

20살, 내가 마주한 첫 사회생활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았던 시간이 길어서 그랬을까, 시골에서 상경한 나에게 서울은 내 꿈을 이루어 줄 수 있는 곳이자 새로운 스릴을 만끽할 수 있었던 곳이었다. 20살, 김연수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남들이 해보지 않는 것들을 시도하고 싶어 한 사람이었다. 


내 전공은 컴퓨터 공학이다. 요새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취업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환영받는 전공"이고,  4차 산업 시대를 이끄는 전공으로 많은 학생들이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문이다. 


나는 성적 맞춰서 대학에 온 학생이었다. 예상만큼 수능 성적이 나오지 않자, 인 서울권 문과에 입학하기보다 공대에 가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면 좋은 직장,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재수 학원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이끌려, 내가 가고자 하는 대학의 문과 전공으로서는 네가 성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부모님의 조언에 못 이겨,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고등학생 시절 나는 문과적 성향이 뚜렷한 학생이었다.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을 읽으면서, 부모님이 가장 싫어하는 돈 안 되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던 학생이었다. 생물과 물리는 뒤에서 4등을 했지만 사탐과 국어, 영어는 전교권에서 놀던 학생이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을 가진 내가 겪은 첫 대학 생활은 "멘붕 그 자체"였다. 


내게 대학교 첫 1학년 1학기는 20년 간 살아온 삶에 대한 회의감과 IT 분야에는 정말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학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그 흔한 스마트 폰 한번, 데스크 탑 한 번 사용해 본 적 없는 학생이었다.(고등학교 교과 과정으로 농사를 짓던 학생이었다.)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와 같은 SNS도 대학에 와서 알게 되었고, 디지털 리터러시라고는 제로인 학생이었다. 이런 나에게 주어진 게임 개발, 막대한 양의 알고리즘 과제는 청천벽력 같은 존재였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수업에 흥미를 붙일 수 없었고, 이미 선행학습이 잘 된 친구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게 되고, 보이지 않는 오류를 잡는데 일주일 넘게 시간을 쏟고, 반복되는 팀플에서 큰 기여를 하지 못해 좌절을 하게 되고..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하는 벽이 있음을 처음으로 깨닫게 됨과 동시에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집중도 잘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박스에서 탈출"해야겠다고 말이다. 남들이 뭐라 하던 그때그때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도전해보기로 말이다. 매 학기마다 "졸업해서 S전자에서 취업하는 삶, 이 세상의 전부는 기술로 움직인다, 고등학교 때 선택만 할 수 있다면 쓸데없이 국어나 사회는 안 배웠을 거라고" 말하는 친구들, "문과애들과는 친해지지 말고, 놀지 말고 프로그래밍 공부만 해"라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이 정해놓은 박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박스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20살 


첫 번째 박스 탈출기 : 교지 편집부 기자 활동 


 첫 번째 도전은 학교 교지 편집부 기자 활동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학보사에서 활동하는 건 꿈이었던 나에게 2학기 초 학교 페이스북에 수습기자를 모집한다는 공지는 박스를 탈출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였다. 하지만 과 특성상 프로젝트도 많고, 공부량도 많았기 때문에 학업과 글쓰기를 병행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고,  지원서를 작성하는 나를 보며 친구들은 "스펙에 도움되지도 않는 것을 뭣하려 하냐"는 반응을 보였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남의 판단, 부모님의 의견에 기대 내 미래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전공 한 과목을 포기하고, 교지 편집부에 지원을 해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나의 모습을 보고 주위 친구들은 혀를 찼고, 나 역시 내 꿈을 지지해주지 않는 친구들과는 서서히 멀어졌다. 하고 싶은 일을 용기 있게 도전하는 삶, 주체적으로 선택한 순간은 20년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회의를 하면서 나보다 식견이 넓은 팀원들에게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좋은 글을 읽으면서 성장해나갈 수 있었다. 


 이 도전은 내 결심과 다르게 오래갈 수 없었다. 전공을 드롭하고 동아리 활동을 한다는 사실이 부모님께 발각되고 말았고, 한 달간 냉전 상태였다. 편집 회의 때문에 늦어서 막차를 타고 올 때면, 혼나는 건 당연지사였고, 뒤풀이나 엠티 등과 같은 친목 모임은 당연히 못 가게 막으셨다.취업과 스펙을 운운하시면서, 편집 기자로 활동하는 내내 한 소리를 들었었고, 결국은 내 손으로 그만두게끔 만드셨다. 


 첫 번째 박스 탈출은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대학 생활 내에서 내가 가장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이 모든 사정을 얘기하지 못한 채 편집부 활동을 그만둬서 팀원들에게는 지금까지도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무나도 큰 도전이었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다는 용기와 밑거름이 되었다. 

좌: 내가 참여했던 64호 그리고, 우: 출판 기념회


두 번째 박스 탈출기 : 학교 밖으로 한 걸음


 두 번째 도전은 여러 대외 활동과 연합 동아리의 일원이 되어 활동한 것이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내가 속한 과는 인간관계가 무척이나 좁다. 한 학기 내내 프로젝트에 시간을 쏟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 주변에 다른 학교가 없기 때문에 만나던 사람만 계속 만나게 되는 사회였다. 그리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ENT 성향을 가진 나로서는 이 세계가 너무 답답했었다. 


 어떻게 하면 다른 학교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여러 연합동아리와 대외 활동에 참가했다. 당시 20살이던 나는 활동했던 모든 동아리에서 다 막내였다. 덕분에 취준, 진학 등에 이미 도를 튼 언니 오빠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나보다 더 사회생활 경험이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경청하면서 나를 키워갈 수 있었다. 3D 프린터를 공부하는 연합동아리, 기업 마케팅을 경험할 수 있었던 대외 활동, 번역 봉사 등에 참여를 하면서 새로운 사람, 새로운 학문을 경험할 수 있었고 내가 공부해보고 싶은 학문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키워갔다.

좌: 밤 새면서 쓰리디 펜을 만들었던 경험 우: 대외 활동에서 당당하게 발표한 내 모습 호호


세 번째 박스 탈출기 : 좋아하는 학문 공부하기


 두 번째 탈출 덕분인지 세 번째 도전은 순조로웠고 해보고 싶은 공부를 하자는 결심 하에 부전공을 신청하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같은 단대 안에 ICT 융합학부라는 과가 있다. 융합학문을 배우는 학과로서 디자인, 방송, HCI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할 수 있고, '인간과 기술의 조화로운 공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여러 활동을 하면서 나는 단순히 신 기술만을 연구하는 것보다, 기술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인간 삶의 도구로서 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고 개발하고 싶어 남들에게는 생소하지만 '융합'이라는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네 번째 도전은 어학공부였다. 노년기에 혼자 남미를 일주하신 할머니와 스튜어디스셨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나는 예전부터 내가 몸담고 있는 문화 외의 다른 세계에 관해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어학공부라 생각했다. 그렇게 대학 진학한 후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총 3개 국어를 독학했다. 

직접 참가했던 상해 교통대학교 인턴십 프로그램


 평소 우리나라와 사회 체제가 다른 나라에 관심이 많았고, 그중 중국과 중남미 문화가 가장 궁금했다. 전 세계에서 인구가 많은 문화권이기도 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선입견(치안, 범죄, 독재 등)이 정말 사실인지 궁금했다.

좌: 코넬대학교 건축과 교수님 강연 우: 자랑스러운 우리 팀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한 중국어 공부는 한국어 강사, 상하이 인턴십, 유럽 현장연구 등으로 이어져 21살이 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박스를 탈출하자'의 진정한 의미  

박스를 벗어나면 남들에게 " You are so weird" 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남들이 가는 평탄한 길을 가지 않고, 오직 자신 내면에 숨어있는 욕망과 호기심만을 따르기 때문에 조직화된 사회, 정형화된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소위 "튀는 사람" 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자체로 매력적(Attractive) 이며 힙한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정형화된 삶을 따르는 것이 목표인 사람을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무언가, 도전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으나 그 소리를 무시하고 사회가 정해 놓은 삶에 집착해 자신의 내면을 썩게 하는 사람들에게 도전의식을 심어주고자 하는 글이다. 혹시 20샬의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사회가 정해놓은 박스를 탈출해보라는 말을 건네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때로는 무계획이 계획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