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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line Aug 21. 2020

때로는 무계획이 계획이다.

우리 사회 속 많은 J들에게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어로 쓰이는 MBTI 성격 유형 검사는 카를 융(C.G.Jung)의 심리 유형론을 근거로 해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하도록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유형 지표이다. MBTI의 각 레터가 의미하는 바는 외향성과 내향성을 나누는 E(Extraversion)와 I(Introversion), 감각형과 직관형을 나누는 S(Sensing)와 N(iNtuition), 사고형과 감정형을 나누는 T(Thinking)와 F(Feeling), 판단형과 인식형을 나누는 J(Judging)와 P(perceiving)이다. - 출처: 문화뉴스(http://www.mhns.co.kr)

요새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대중 사이에 인기 있는 심리 유형 검사로 MBTI 가 각광받고 있다. 각 성격 유형 지표에 따라 생활양식이 달라진다고 하는 MBTI의 끝 자리는 판단-인식 지표로  J 유형과 P유형이 있다. 


J 유형은 "계획적인 사람" 들로 철저한 계획에 따라 움직인다. 반면, P의 경우 인식과 감성에 중시해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J와 P를 한 번에 설명해주는 짤

MBTI를 믿는 편은 아니지만 ENTJ 중에서도 극강의 J 유형인 나는 23살인 지금까지도 철저히 플랜에 움직이는 타입으로, 주변 친구들에게 MBTI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시이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의 권유로 작성하게 된 스터디 플래너는 어느새 16권이 되었다.

친구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J인 나의 평소 생활 습관으로는 


지하철 타 전에 미리 네이버 지도를 통해 지하철 승차 시간, 탑승 승강장 번호 찾기 

이동 시간과 휴식 시간은 철저히 고려해 데일리 플랜 짜기 

팀 프로젝트 진행 시 기가 막히는 역할 분담과 일정 공유

특히, 여행에 있어서 PLAN A, B, C, D, E까지 짜오는 철저함 

뷔페에 가서 먹는 순서까지, 카페나 식당에 가서 먹는 순서까지 짜버리는 철저함, 극강의 가성 비걸

등을 꼽아주었다. 

대학원 준비 일정 플랜

그리고, 최근 해외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혼자 셀프로 엑셀에 짠 일정표를 보니 내가 "극강의 J"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J와 P가 여행을 같이 가면 안된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반증하는 예로, 몇 가지 일화가 나에게도 있다. 


처음으로 대학교에 진학한 뒤, 친구와 가는 해외여행은 처음이었던 나에게 P 유형의 친구는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여행 내내 계획을 혼자 짜고, 무조건 ok사인만 보내던 친구가 대만 여행 중간에 몹시 아팠다. PLAN B 카드로 근처 스타벅스 쉬기를 선택한 나는 친구가 회복할 때까지 3~4시간 정도 카페에서 기다렸고, 어느 정도 괜찮아지자,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친구는 친구의 상태보다는 내 계획만 앞세운다고 느꼈는지 토라져서 3일째 되는 날은 따로 여행을 다녔다. 여행 다음 날 잘 화해해서 남은 일정을 잘 소화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내 마음이 너무 좁았던 느낌이 들어 친구에게 두고두고 미안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대만이어서 그랬는지, 해외여행은 다음번에 오기도 힘들고, 내가 짠 계획이 무너지는 게 무서웠는 건지, 모든 일에 아쉬움이 남는 게 싫어서 그랬는지 당시 극강 J인 나에게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었다. 


두 번째, 북경 유학 시절 상해에서 만난 친구가 놀러 온 적이 있다. 이 친구는 P가 되고 싶은 J 유형이지만 여행에 있어서는 뚝심 있게 P를 지키는 타입이다. 친구에게 짧은 시간 동안 여행의 뽕을 뽑을 수 있게 하고 싶어서 친구와 함께 3박 4일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때려 박은 여행 계획표를 들이밀었고, 이번에도 ok사인을 받았다. 일정을 잘 따르던 친구가 두 번째 날 중간에 살짝 아팠다. 대만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던 나로서는 빠르게 숙소로 일정을 옮겼고, 다행히 친구 역시 상태가 호전되어 다시 일정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생긴 약간의 트러블은 "사진 찍기, 영상 찍기"에서 비롯되었다. 


주로, 여행을 할 때 풍경만 간단하게 찍고, 프레임에 별로 담지 않는 나와 달리 친구는 나, 친구, 배경 사진을 여러 장 찍으면서 추억여행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일정을 다 소화하지 못해도 순간과 경치를 즐기는 낭만파였다. 처음에는 나도 친구의 사진 찍기 캠페인에 동참을 했지만, 친구가 혹여나 북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 봐 조급해졌다, 친구도 이를 눈치챘는지 약간은 서먹서먹한 채로 그 날을 보냈다. 그리고, 셋째 날 저녁 연어 덮밥을 먹다가 조심스럽게 서로의 입장과 이야기를 꺼내면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았고 여행을 잘 마무리했다. 


여행이란 게 친구와 서로의 스타일을 맞춰가면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건은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친구는 3박 4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북경에서 볼 수 있는 것,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누렸다고 만족해했다. 

당시 북경에서 보고 듣고 즐겼던 것들

비정상 회담을 보다가 또 극강의 J유형에게 공감을 했던 순간이 있다. 해당 회차의 안건이 "패키지여행 VS 자유여행"이었을 때였다. 왕심린과 몇 명의 패널이 함께 제주도를 갔는데 극강 J 인 왕심린의 계획에 나머지 P유형인 패널들이 ok사인만 보내다가 여행 내내 일정을 따르기보다는 즉흥적으로 쉬거나 놀고 싶다는 의사를 보내서 J 유형인 왕심린이 엄청 섭섭했다(?)는 일화였다. 같은 J 로서는 엄청 공감되고, 같이 분노할 수 있던 사건이었다.   

이런  J유형인 내가 P유형인 사람 덕분에 깨달은 순간이 있는데 상해 주가각 자유여행을 갔을 때였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친한 언니와 함께 7월의 어느 무더운 날 낮 1시 주가각으로 떠나게 되었다. 주가각은 상해에서는 조금 떨어진 수향 마을로 풍경이 굉장히 아름답고, 볼거리도 엄청 많은 곳이다. 이 날도 미리 이동 경로, 사진 스폿, 맛집들을 미리 준비해서 언니와 여행을 갔는데 정말 7월의 상해는 찜통더위이기 때문에 힘이 쭉쭉 빠져나갔다. 뒤의 일정이 밀릴까 봐 무더위 속에서도 일정을 강행하는 나에게 P의 언니는 

" 잠시 쉬어가면 어때? 커피 한 잔 먹고 가자"
주가각에서 만난 아름다운 경치들

라며 주변의 카페로 걸음을 돌리게 했다. 처음에는 엄청 불안하고, 시간이 너무 지체돼서 많은 것을 못 보면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고, 조급해졌다. 그러나, 시원한 바람을 맞고 언니와 도란도란 얘기를 하고 상태를 좀 추스른 뒤에 주가각을 바라보니 풍경이 조금 더 여유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처음으로 "때로는 쉬어가도, 무계획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제대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지 못할까 봐, 아쉬움이 남는 것이 두려워서 계획에 집착했다면, 언니와의 여행을 통해서 나를 조금 더 놓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J인 내가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였던 여행은 이번 겨울 스페인 여행에서였다. 


좌: 몬세라토 해변, 우: 벙커에서 야경보기

처음으로 길 가다 마주한 해변에서 누워서 잠도 자보고, 준비되지 않은 옷차림으로 물놀이도 하고, 벙커에 올라가서 3시간 동안 친구들과 떠들면서 지는 석양을 바라보기도 했다. J 유형의 나로서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고,  중국보다 스페인이 더 자주 오기 힘든 곳이지만 다음번의 나에게 "다시 오면 또 새로운 곳을 가볼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아쉬움이 남는 것이 나쁜 게 아니라,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 순간임을 느끼면서, 때로는 무계획이, 즉흥적인 것이 계획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던 순간이었다. 


J가 맞고, P는 틀리다 혹은 그 반대가 맞다는 것이 아닌, J지만 사회와 조화롭게 어울리기 위해, 그리고 내가 너무 조급해지거나 완벽해져야 한다는 틀에 갖치지 않기 위해 때로는 P를 내 인생에 집어넣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J 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마지막은 해변에서 여유를 찾은 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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