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한국인의 미국 브랜드 Deep 들여다보기
미국에서 살아가는 동안, 이곳 사람들의 브랜드 소비 속에 담긴 문화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 카테고리는 사회학적인 시선과 토종 한국인의 감각을 바탕으로, 미국 문화와 브랜드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탐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에, 미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브랜드를 제3의 시각에서 '어떻게 당연함 속에 자리 잡게 되었는가?' 를 질문해보고자 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브랜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미국 소비주의의 출발점'이라 불릴 만한 브랜드, 바로 캠벨 수프(Campbell's Soup)로 그 도화선을 끊어본다.
미국의 대표적인 슈퍼마켓, Ralphs에서 캠벨 수프를 처음 마주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눈에 띄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마치 한 폭의 이국적인 그림처럼 느껴졌다.
멀리서도 선명한 빨간색 통조림들. 자연스럽게 떠오른 건 앤디 워홀의 팝아트였다.
나는 마트를 구경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마트는 한 사회의 축소판 같다.
어떤 물건이, 어떤 자리에, 어떤 브랜드로 놓여있는 지 사소한 차이에 따라 그 사회의 사소한 생활 양식과 소비 패턴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캠벨 수프는 1869년 탄생한 세계 최초의 ready-to-eat 통조림 수프로 시작해, 150년 넘게 미국 가정식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브랜드이다. 실제로 미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고, 홈스테이와 서브리스로 두번째 얹혀살이를 경험하며, 정말로 내가 머문 주방마다 캠벨 수프가 당연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캠벨 수프는 왜 미국인의 주방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잡았을까?
우리나라로 치면 어떤 브랜드가 이를 대체할 수 있을까?
캠벨 수프는 단순한 수프를 넘어, 미국인의 삶 속에서 무엇을 상징하는가?
첫번째 상징, 따뜻한 기억의 맛.
따뜻한 수프 한 그릇 뒤에는 엄마가 집에서 직접 끓여준 것 같은 정성과 보살핌의 맛이 숨겨져 있다.
화목한 가정, 친숙한 가족, 그리고 포근한 식탁. 캠벨 수프는 그 모든 정서를 압축하여 미국인들의 노스텔지어를 일으키는 아이콘이다. 특히, 아플 때나 집밥이 그리울 때 가장 익숙하게 찾게 되는 간편식으로, 맛이 아닌 마음으로 먹는 따뜻한 기억 그 자체이다.
두번째 상징,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캠벨 수프는 1895년 물을 제거한 '농축 수프'(condensed soup) 통조림을 개발했다. 이는 단지 제품 하나의 기술적 진보가 아닌, 미국 대량생산과 소비주의의 선구적인 아이콘이 되었다.
앤디 워홀이 <Campbell’s Soup Cans>를 통해 보여준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일상적 소비가 예술이 될 만큼, 캠벨 수프는 미국인들 모두가 공유하는 문화가 되었다.
세번째 상징, 미국 식품 소비의 평등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경제적 효율성을 넘어, 캠벨 수프는 곧 식품으로 소비 평등화를 가져온 매개체이다. 누구나 같은 맛을, 같은 가격에, 같은 경험으로 즐길 수 있는 음식. 사회적 지위, 나이, 직업, 경제적 위치에 상관없이 누구나 같은 맛으로 경험하게 되는 음식, 바로 캠벨 수프이다. 신선하고 재료가 다채로운 음식은 부유층의 특권이라는 전통적 인식에서 벗어나, 모두가 같은 가격으로 언제나 같은 맛을 누릴 수 있게 된 변곡점이라 볼 수 있다.
미국 간편식 소비문화의 시작부터 함께해 이제는 미국 주방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캠벨 수프.
그렇다면, 한국으로 치면 어떤 브랜드가 '캠벨 수프'의 역할로 자리 잡아 있을까?
앞서 분석한 캠벨 수프의 속성에 맞게 각각 국내 브랜드로 치환해 보았다.
미국살이를 처음 시작하고 물갈이로 고생할 때, 한인마트에 가서 가장 먼저 찾았던 것은 본죽이었다.
미국인들에게 캠벨 수프가 있다면, 한국인인 나에겐 적어도 본죽이다.
엄마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지만, 마치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따뜻한 기억의 간편식 - 본죽.
나의 고3 수능날,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 대신 본죽을 도시락에 담아갔다. 그날의 본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엄마의 걱정, 위로, 따뜻한 마음을 대신 전해주는 한 끼였다.
실제로 본죽은 매년 수능 시즌마다 예약 마케팅과 카카오 선물하기 프로모션을 통해 ‘정성과 마음을 담은 한 끼’ 이미지를 강화해왔다. 다만 캠벨 수프와는 포지셔닝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다. 캠벨 수프가 가족과 함께 집에서 데워먹는 '따뜻한 기억'을 내세워 상대적으로 넓은 타깃에게 다가간다면, 본죽은 '따뜻한 손맛'이 필요한 수험생 타깃을 중심으로 '속 편하고 든든한 한 끼' 기억을 정밀하게 불러일으킨다.
한국의 거의 모든 가정집 주방 찬장 속에 하나쯤은 들어 있는 통조림 브랜드 - 동원참치.
나는 이 브랜드가 한국에서 캠벨 수프만큼의 대중성과 보편성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두 브랜드 모두 익숙함을 소재로, 전 국민을 타깃으로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연령이나 세대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스며들어 있는 브랜드라는 점에서 닮아있다.
미국 디즈니 100주년을 기념해 디즈니 공주들이 캔 라벨에 그려진 한정판 수프였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동원참치와 펭수 콜라보가 떠올랐다. 이처럼 두 브랜드는 국민 브랜드라는 아이콘 뿐만 아니라, 전국민 캐릭터와의 콜라보를 통해 소비자들과 감성적으로 연결되려는 전략까지도 유사하게 펼치고 있다.
캠벨의 상징적인 카피, M'm M'm Good!
우리에게도 비슷한 단어가 있다. 바로, "맘마"
엄마의 따뜻한 밥, 정성, 그리고 그 마음을 떠오르게 하는 단어.
지난 홈스테이에서, 감기에 걸린 멕시코계 할아버지 호스트에게 닭죽을 끓여드리며 마음을 나눈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페루 홈메이트에게 미역국을 나눠주며 처음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순간도 잊을 수 없다.
그때 느꼈다. 따뜻한 수프 한 끼는 단순한 브랜드가 아니다.
그 속엔 마음을 전하고, 관계를 이어주는 정서와 라이프스타일이 녹아 있다.
캠벨의 '수프'는 그 상징적인 시작이었다. 이제는 '수프'를 사명에서 떼어내고, 더 넓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실제로 Goldfish, Pepperidge Farm 등 미국인의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낵 브랜드들도 캠벨의 식구가 되었다. 따뜻한 수프에서 시작된 브랜드는 이제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 전체를 담아내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결국, 브랜드란 삶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M'm M'm Good!에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따뜻한 "맘마"의 정서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