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와 함께 하는 봄의 잔치

- 광대나물

by 나우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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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1985년 ‘일러스트레니이티드 런던 뉴스’라는 영국잡지사에서 전업 화가, 갤러리스트, 평론가, 미술 기자 등 미술 전문가들을 상대로 대규모 설문 조사를 한 결과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으로 선택되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벨라스케스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 그림이 가진 매력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던 그림이기도 합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의 행복했던 만남을 떠올려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워낙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그림에 대한 상세하고도 다양한 분석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그림 오른쪽 구석의 사람들입니다. 궁정 광대...

궁정 광대라는 직위가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광대’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많은 그림 속에서 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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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의 '시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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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 bufón don Sebastián de Morra>


남들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하고 있으나 정작 자기 자신은 한없이 우울하고 슬픈 모습이어서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짠하게 만듭니다. 굉장히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존재...그런데 서양의 광대라면 이런 식으로나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광대에 대해서는 좀처럼 또렷한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적여 봅니다.


1. 『민속』 가면극, 인형극, 줄타기, 땅재주, 판소리 따위를 하던 직업적 예능인을 통틀어 이르던 말. 한자를 빌려 ‘廣大’로 적기도 한다. ≒배우, 배창, 창우, 화척.

2. 『연기』 연극을 하거나 춤을 추려고 얼굴에 물감을 칠하던 일.

3. 『민속』 탈춤을 출 때 얼굴에 쓰는 탈.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바로 ‘광대나물’ 때문입니다. 사실 이 꽃을 보며 곧바로 ‘광대’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정설은 없다고 합니다.


‘광대’와 ‘나물’의 합성어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봄에 돋아나는 다른 식물들처럼 광대나물의 새순 역시 나물로 먹었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렇다면 ‘광대’라는 단어는 왜 쓰였을까요? 일설에 따르면 연기를 위해 울긋불긋하게 분장한 광대의 모습이 꽃에 투영되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확인을 위해 자료를 조금 더 조사해 봅니다.


광대나물은 엄연히 우리의 이름이기에, 우리나라 광대의 모습을 기본으로 찾아보았습니다.


김홍도의 그림 ‘삼일유가(三日遊街)’를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과거에 급제한 이가 사흘간 스승과 선배, 친척을 찾아뵙던 이 행렬에서, 어사화를 꽂고 말 위에 올라탄 선비의 앞뒤로 화려한 의상과 모자를 갖춘 광대들이 보입니다. 수수한 차림의 일반인들과 비교하면 눈이 부실 정도로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모습입니다.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처용무’는 광대들이 추었던 춤이지요. 이 처용무에 쓰인 처용탈은 또 어떤가요. 팥죽색 얼굴에 커다란 귀걸이를 하고, 검은 모자 위에는 귀신을 쫓는 복숭아 일곱 개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두 송이가 달려 있습니다. 이 역시 무척 화려합니다.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은 이처럼 화려한 광대의 차림새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네 전통 광대의 모습은 서양의 광대와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서양의 궁정 광대가 품은 특유의 우울함이나, 현대판 광대라고 할 수 있는 ‘조커’가 보여주는 매혹적인 사악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대신 함께 즐기는 잔치 마당의 흥겨움과 에너지가 가득합니다.


긴 겨울을 지나 새봄에 피어나는 알록달록한 꽃잎에서 우리 광대들의 화려한 복색을 읽어냈던 것일까요.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광대나물이 틔워낸 화려한 꽃망울을 보며, 봄을 기다리던 옛사람들의 가슴도 몹시 설레었을 것 같습니다.


이름의 유래에 대한 다른 설에 따르면, 꽃줄기를 둘러싸며 꽃을 받치고 있는 잎의 모양이 마치 어릿광대가 입는 옷의 목둘레 장식과 닮아 ‘광대나물’이라 불리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들어보면 제법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가설은 서양의 어릿광대(피에로) 복장을 염두에 둔 설명인 듯하여 못내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 광대들의 전통 의상을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와 유사한 형태의 특별한 목둘레 장식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름의 유래를 우리 문화 안에서 찾고자 했던 저에게는 여전히 미진한 구석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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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shop의 이미지 생성을 통해 얻은 이미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가설들이 주목하는 바는, 이 꽃의 이름이 서양의 피에로든 우리나라의 전통 광대든 그들이 입었던 강렬하고 독특한 의상의 이미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꽃 없는 긴 겨울을 보낸 뒤, 누구나 새 꽃 소식을 목마르게 기다리는 이 계절. ‘과연 어떤 야생화가 가장 먼저 피어날까’ 초조하게 점쳐볼 때, 가장 화사하고 강렬한 빛깔로 응답하는 꽃이 바로 이 광대나물입니다. 사실 광대나물은 봄이 오기도 전, 겨울철에도 볕이 따사로운 날이면 햇살 바른 풀밭이나 길가에서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곤 합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분홍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 무더기로 피어난 모습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눈부시게 알록달록한 풍경입니다. 포근해진 날씨 속에 파릇파릇 움터 나오는 여린 나물들, 그 위로 펼쳐지는 행복한 봄날의 잔치, 그리고 그 잔치의 주인공이 되어 흥을 돋우는 광대들의 모습까지... 이제야 비로소 완벽한 봄의 풍경이 완성됩니다.



이제 광대나물의 생김새를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광대나물은 ‘꿀풀과’에 속하는 식물입니다. 꿀풀과 식물들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줄기가 네모졌다는 점인데 광대나물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 긴 줄기 중간 중간에는 마치 큰 턱받이를 두른 듯 잎이 반원형으로 줄기를 감싸고 있습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애기들의 턱받이 같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 두르는 목도리 같기도 한 이 모습이 매우 특이하기에 꽃 이름의 유래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특이한 것은 꽃의 모양입니다. 잎겨드랑이에서 여러 송이가 돌려나듯 모여 나오는데, 꽃부리 중 윗입술은 앞쪽으로 약간 굽어 있고, 아랫입술은 3갈래로 갈라진 모양입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윗입술의 머리 부분에는 진한 분홍색의 잔털이 빼곡하게 나있다는 것입니다.


식물들 중에는 털이 있는 것이 많습니다. 털의 용도는 다양한데 대체로 추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초식동물들이나 곤충들에게 먹히는 것을 막아주는 등 보호 기능을 담당합니다. 더 나아가 잎의 털은 수분의 증발을 막고 이슬이 맺히게 하는 등 수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광대나물의 털은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이른 봄 늦추위로부터 꽃을 보호하고 동시에 꽃 안쪽의 암술과 수술을 보호하는 역할을 좀 더 잘 하기 위한 장치일 것이라고 추측해 봅니다.


광대나물의 수술 중 2개는 길고 2개는 짧습니다. 냉이의 꽃도 그랬지만 이처럼 수술의 길이가 다른 식물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수술 길이가 다른 이유는 서로 다른 종류의 수분 매개 곤충에게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덩치가 큰 곤충에게도, 또 작은 곤충에게도 맞춤으로 꽃가루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성공적인 꽃가루받이를 위한 식물들의 구조는 놀라울 만큼 섬세하고 빈틈이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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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부리의 아랫입술에는 분홍색 반점이 또렷합니다.

맛있는 꿀이 이곳에 있다는 광고판이지요. 곤충들이 이 광고판을 보고 다가옵니다.

아랫입술에는 반점도 새겨져있지만 무엇보다 넓적한 발판과 같이 생긴 탓에 곤충들이 편안하게 내려앉습니다. 그리고 꽃의 안쪽을 향해 그려진 황홀한 라인을 따라 꿀을 찾아 들어가려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꿀을 숨겨둔 그곳까지의 길은 좁고 깁니다. 이 길고도 험난한 길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곤충만이 꿀을 쟁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애초 꽃이 의도했던 꽃가루받이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겠지요.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봅시다.


식물이 꿀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꽃가루받이를 시켜 줄 곤충들을 유혹하여 씨앗을 맺으려는 의도입니다. 그러나 꿀을 만들어내는 일은 쉽지 않고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중노동입니다. 문제는 이토록 어렵게 만든 꿀이 꽃가루받이에 쓰이지 않고 그저 염치없는 동물들의 먹이로만 사용된다면 너무도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꽃으로서는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을 터, 그 중 한 가지 장치가 아마도 길고 가는 구조였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식물은 ‘꽃뿔’이라고도 불리는 ‘거(距)’라는 독특한 꿀주머니를 발달시켰습니다. 가늘고 긴 주머니 깊숙이 숨겨진 꿀을 먹으려면, 곤충이나 새들에게도 적지 않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꿀을 얻기 위해 애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몸엔 어느덧 꽃가루가 듬뿍 묻게 됩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은 다른 꽃으로 이어져, 암술머리에 소중한 생명의 씨앗을 건네주는 아름다운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광대나물의 꽃은 몸체에 비해 상당히 긴 편입니다. 이 긴 통 자체가 일종의 ‘거’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한편 곤충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들도 처음부터 꽃 속 깊이 파고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꽃의 구조는 이런 능력을 가지는 곤충을 선호했고 그중 일부는 자신의 몸 구조를 변화시켜 꽃의 요구에 응답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꽃과 곤충의 아름다운 공진화가 진행되어 온 것이지요.


유명한 ‘다윈의 난초’(Angraecum sesquipedale Thouars)이야기가 생각납니다. 1798년 프랑스의 식물학자에 의해 발견된 이 난초는 긴 꿀샘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난초의 사진을 보고 다윈은 긴 주둥이를 가진 수분매개자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결국은 130년이 지난 후 ‘크산토판박가시나방’의 존재가 발견됨으로써 그 예언이 맞았음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광대나물의 번식 전략에서 한 가지 덧붙일 이야기가 있습니다.

광대나물은 이렇게 치밀한 꽃가루받이 전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폐쇄화’를 만들어 제꽃가루받이도 합니다. (이 폐쇄화 이야기는 '제비꽃'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 더 자세히 곁들여 볼 예정입니다.) 광대나물의 무시무시한 생존력과 번식력은 치밀한 전략(꽃의 구조)에다 보험(폐쇄화)까지 들어 놓는 빈틈없는 작전에 힘입은 것입니다. 알면 알수록 식물의 세계는 놀랍습니다.



길고 우울했던 겨울을 지내고 찾아 온 광대의 모습처럼 화사한 꽃, 광대나물이 봄의 세상을 환하게 밝히며 이제 정말 봄이 왔다고, 봄이라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자고 속삭입니다. 나도 또한 올해의 봄이 유난히 반갑고 따스한 봄이 될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P.S.

이 글을 쓰고 나서 천변으로 산책을 나가보니 몇 년 전부터 눈에 띄기 시작했던 ‘자주광대나물 (Lamium purpureum L.)’이 무리지어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크랙 정원에는 아직 그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광대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기에 소개해 봅니다.


자주광대나물은 유럽이 고향인 귀화식물입니다.

사진을 보면 꽃의 모양이 광대나물과 비슷하게 생긴 것을 확인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도감을 찾아보면 충청 이남지역에 분포한다고 씌여 있지만 지난 몇 년 사이 서울의 곳곳에서도 군락으로 피어나 그 세를 급속하게 불리고 있음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름의 유사함과는 별도로 광대나물과는 외관상 그 느낌이 매우 다릅니다.

뭔가 좀 우중충하고 으시시합니다. 밝고 즐거운 광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네요. 오히려 갑옷을 차려입은 병사들과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요? 어쩌면 날로 그 기세를 확장하고 있는 이 꽃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자주광대나물에게는 미안하지만 때로 착착착 발을 맞춰 진군하고 있는 군대를 떠올리게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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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크랙 정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또 모를 일입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천변 공터에서 뛰쳐나온 자주광대나물이 크랙 정원에 슬그머니 뿌리를 내리고, 그 당당한 자태를 드러낼 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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