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박 9일의 마지막 날, 나는 정신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숙소로 향했다. 예정되어 있던 북 바인딩을 하며 호스트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녀는 내 손놀림을 한참 바라보더니 단박에 물어왔다.
“혹시 손으로 하는 일을 하세요?”
“아… 실은 핸드메이드 소품을 조금 만들어요.”
“어쩐지 꼼꼼함이 남다르더라~”
“… 제가요?”
그녀는 한 점 거짓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어차피 돈 주고 하는 건데, 다들 꼼꼼히 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라고 얼버무렸지만, 안 그런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했다.
실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나는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사주나 운세 같은 것에서 으레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는 편이고, 실로 그런 삶을 살아오긴 했다. 늘 무언가를 만들거나 쓰는 삶을 살아왔으니.
그러나 그것으로 성공했느냐 하면 그렇지는 못했다. 지지부진한 성과는 언제나 족쇄처럼 따라붙었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미련은 두터운 모래주머니 같았다. 이것저것 시도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늘 “대단하다”거나 “멋있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것이 얼마나 무용하고 요란한 빈 수레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안정적인 수입’에 욕심을 냈다. 그것이 없는 한, 이 모든 것은 결국 그가 제공한 안온한 삶 속에서만 가능한 고상한 취미생활에 불과할 테니까.
그의 의도가 어떠했든, 그것이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을 때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수많은 이들에게 인정받더라도, 가장 가까운 이에게서 받은 단 하나의 부정이 실로 가장 뼈아팠다. 나는 습관처럼 들이차는 자기혐오를 잠시 밀어 두고, 그저 종이를 접고 또 접었다. 매끈한 종이의 감촉에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예쁘게 완성된 노트 제일 앞면에 필명을 새겨 넣은 연필로 다시 한번 이름을 흘려 적었다. 모처럼 글씨도 마음에 들었다. 나는 볼펜보다는 샤프가, 샤프보다는 연필이 좋다. 연필의 필기감이 내 글씨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준다.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총 여덟의 인원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같은 자리에 앉았지만 이 특별한 자리를 기획한 사람, 바쁜 일정 속에서 일만 하는 것 같아 한 달이나 휴가를 내고 떠나온 사람, 당장 다음 주에 국제기구로 이직하게 되어 제주로 '도망'왔다는 사람, 스스로의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고 싶어 왔다는 사람까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삶, 사랑, 나’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다.
Q. 예전에는 생각이 너무 많아 걱정이었는데, 요즘에는 큰 고민 없이 단순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이 조금 불안한 것 같아요. 괜찮을까요?
여러 사람의 답변이 이어졌지만,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들어온 말은 이것이었다.
“고민과 불안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지만, 고민하는 삶보다 고민하지 않는 삶으로 채우는 시간을 더 오래 보내야 한다.”
나는 다소 부지깽이 같은 몸뚱이를 가졌다. 어차피 해결하지 못할 고민으로 걱정과 불안을 사서 껴안고 있으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편이다. 무릇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몸에서 오는 것이라, 그쯤 되면 마음도 함께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나는 걱정 없이 단순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잘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다만, 걱정과 불안 속에 사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으로 채워지는 날들이 더 길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어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Q. 연인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은 사치가 아닐까요? - 단순한 열정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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