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대한민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태어난 것만큼 축복이 없다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어쩌면 이 좁고 가난한,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아 늘 남의 나라에 빌빌거리는 나라가 유일하게 꺼드럭 댈 수 있는 지점이 그것뿐이겠거니, 냉소했던 것도 같다. 어린아이가 그토록 삭막한 마음을 품고 살아갈 만큼, 그 생애가 영 비루먹었던 탓이다. 물론, 이제는 그 유일한 자랑거리마저 희미해진 듯하지만….
나는 가을을 참 좋아했다. 기억도 나지 않은 시절부터 내 몸에는 늘 엄마가 직접 짠 모자와 목도리, 스웨터가 둘러 입혀져 있었으니, 어쩌면 털실을 엮어 뜨는 일은 내게 숨 쉬듯 당연한 일이었다. 폭닥이는 니트가 선선한 바람에 살갗을 스치는 그 계절을,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겨울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눈을 좋아했다. 어려서는 퍽 순수하고 하얀 마음으로, 자라서는 여전히 대가리가 꽃밭인 채로. ISTP(지독한 현실주의자)인 나는 말로는 늘 "예쁜 쓰레기…."라고 웅얼거리면서도, 눈이 온다는 소리에 꼭 한 번씩 창문을 열어 흩날리는 것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것들이 두텁게 쌓이면 아무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곳에 뽀드득, 첫 발자국을 남기며 배시시 웃었다.
여름은 싫었다. 아니, 끔찍이도 싫어했으나 끝내 애타게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고단한 마음을 이고 그 계절의 타는듯한 작열과 습도를 온몸으로 맞으며 달렸다. 사실은 자기 학대였다. 물 한 모금 머금지 않은 목구멍은 찢어질 듯 버석였고, 튀어 오르는 맥박을 감당하지 못하는 몸뚱이는 몇 번이고 시야가 점멸하며 고꾸라질 것처럼 굴었다.
아, 차라리 온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갔으면, 이대로 탈진해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으면.
그러나 그 계절에 내가 깨달은 것은 단 두 가지였다. 인간의 생명력은 생각보다 끈질기다는 것과 여름날의 저녁 하늘은 눈이 멀어버린 뒤에도 그 기억 하나만을 더듬으며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슬프고도 아름답다는 것.
속수무책으로 그 계절을 사랑하게 된 나는 떠나가는 여름을 찬미하고, 애도했다. 그 계절은 내게 애절과 애상을, 수선 떠는 미련을 쥐여주었다.
그런데 봄은 어땠더라.
좋든 싫든 다른 계절들에 대한 감정은 늘 또렷했으나, 봄에 대한 감회는 사실상 무(無)에 가까웠다.
새싹이 움트고 만물이 약동한다는 그 계절에 나는 뭘 하고 살았지.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특별할 것 없이 늘 바삐 흘러갔다는 뜻이다.
나는 늘 길가에 핀 들꽃과 개나리를 보며 봄이 왔음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러고 나면 곧 봄비가 내려 꽃잎이 떨어지고, 그것들이 아무렇게나 짓이겨진 거리를 걸으며 바삐 출근하고 또 퇴근했다.
마지막으로 꽃구경을 해본 것이 언제였느냐 하면, 아마 막 스무 살이 되던 무렵이니 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다. 꽃구경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꽃이 핀 것을 모를 수는 없다. 내가 아무리 바쁘고 팍팍하게 살든 간에, 언제나 내가 누릴 수 없는 여유를 누리고, 친절하게 감상평까지 늘어놓다 못해 SNS에 예쁜 사진을 올려 자랑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하니까.
그들 사이에 끼어있을 때면, 어쩐지 외로이 명절을 보내던 어린 날의 아이가 떠올랐다. 친척 집에 다녀와 세뱃돈을 받았다며 으스대던 친구들, 오색전을 정답게 부쳐 나눠 먹었다는 이야기를 조금의 미소를 띤 채, 잠자코 듣기만 하던 아이. 그저 알만하다는 표정으로, 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봄비를 기다렸던 건 아마 그래서였을 테다. 나는 여름은 싫지만 조금 쌀쌀한 가을도, 매섭게 추운 겨울도 좋아했다. 다만 포근한 봄은 끝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만 누리지 못하는 여유의 계절을, 화사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모르는 척 외면하고 싶어서. 나는 봄이 온 것을 알아차리자마자 곧바로 봄비가 내리길 바랐다.
어서 저 예쁘고 무용한 것들을 떨구어줘.
조금 이기적이고, 조금 사무치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겨울은 지나고, 또 봄이 온다. 어둑하던 출퇴근길이 밝아 오는 것으로 겨울이 지났음을 알아차린다.
곧 꽃이 피겠지. 습관처럼 개화 시기와 예정된 봄비를 검색하던 손이 잠시 멈칫인다.
“꽃이 예쁘게 피면 같이 꽃 보러 가고 싶어요. 시간 좀 내줄래요?”
이 어색하고 생경한 기분을 어째야 할지 알 수 없는 건, 아마도 좋아하는 계절이 몽땅 지나버린 탓일 테다. 나는 검색하던 기상예보를 느릿하게 닫고, 이번 봄에는 비가 조금 늦게 내리기를 바랐다.
무(無)의 계절이 유(有)의 계절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