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아이_수지
나의 생일은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러니 학교에 다닐 때는 여름방학, 직장에서는 여름휴가와 늘 겹쳤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퍽 어려워했던 나는, 그마저도 허울뿐인 소속과 관계에서 벗어나는 이 시기가 하필 생일이라는 사실이 때때로 외롭다고 여겼다.
내 생일이 두 달만 더 빨랐더라면, 혹은 두 달만 더 느렸더라면. N월생들을 삼삼오오 모아 함께 축하하는 생일파티에 자연스럽게 섞여 불특정 다수에게나마 축하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것이 오롯이 나만을 위한 축하는 아니겠으나, 매년 생일이면 비싸기만 하고 맛도 없다며 애써 좋아하지 않는 척해야 했던, 달콤한 과일이 얹힌 하얗고 예쁜 생크림 케이크 쇼케이스 앞에 멈춰 섰을 때. 혹은 불쌍해 죽겠다는 듯 바라보는 시선 끝에 그렁그렁 매달린 눈물을 모른 척하며 울컥 차오르는 마음을 미역국으로 밀어 삼켜야 했던 순간이 그랬다.
내 생일에는 따뜻한 미역국 한 그릇만큼의 마음이 늘 존재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마음이 쥐여주는 슬픔이 서글퍼서, 나를 바라보는 애달픈 시선에서 못내 도망치고 싶었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슬플 거잖아. 다시 외로울 거잖아. 나는 늘 욕심으로 그득해 그따위 미역국 한 그릇이 사무치게 서러웠던 것이니, 나의 생일이 슬픔보단 기쁨에 더 가까웠으면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안 주고 안 받기가 삶의 태도로 굳어진 것이. 기브 앤 테이크. 그렇지만 이왕이면 조금 덜 받고, 나도 덜 주자고. 그것은 선물의 가치를 따져 묻는 마음은 아니었다.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는 마음에 대한 두려움, 혹여 그렇더라도 상처받고 싶지 않았던 서럽고 부끄러운 마음이 세운 방어선이었다.
그 노래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은 열일곱 무렵이었다. 젖살도 빠지지 않았던 그녀는 연기마저 어설펐지만, 화면 속의 그를 향해 온 마음을 담아 부르던 순간만큼은 그 눈빛에 사랑이 담겨있다고 믿게 했다. 무한한 신뢰. 애정. 기쁨. 행복 같은 것들. 나는 그 노래에 내 생일이 적당히 묻어가길 바랐다. 그래서였다. 그 가사에서 겨울 대신 여름을 빗대어 부르기 시작한 것은.
여름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
나는 이제 조금은 더 커버린 몸에 그렇지 못한 마음을 가진 채, 여전히 미역국 한 그릇만큼의 슬픔은 피하고 싶다. 언제나 그 생일은 얼마쯤 슬프고 애석하다.
다만 이제는 그날이 충만한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 차길 바란다. 날 생(生)에 날 일(日). 태어난 날. 찬란하고 반짝이는 그날이 축제 같기를 소망한다. 이왕이면 전야제처럼 그것을 기다리는 마음도, 그 이후의 들뜬 마음을 아쉬워하며 다독일 후일담마저도.
그리하여 나는 부끄럽지만 네 생일도 그렇길 소망하게 되었다. 길었던 이 서툰 마음을 지나, 결국 그 탄생을 사랑하고 싶어졌으니 딱 그만큼 너의 축복과 안녕도 바라게 되었다.
이 소망이 너에게 닿아 어느 고단한 날에는 작은 행운이 되기를, 충만한 날에는 환희가 되길 바라며.
생일 축하합니다. 당신의 생일을
happy birthday to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