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은 때로 가장 낯선 이야기 속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조예은의 소설집 <치즈이야기>를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대부분 기묘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부모를 치즈에 비유하는 이야기, 물건의 기억을 읽는 아이, 죽은 딸을 복원하는 기술, 그리고 외계인이 만든 죽음의 섬까지.
겉으로 보면 기괴하고 낯선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몇 편을 읽다 보면 이 낯선 이야기들이 결국은 아주 익숙한 감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과 결핍, 기억과 집착, 그리고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복잡한 마음들. 비현실적인 설정 속에서 오히려 인간의 감정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치즈이야기>
표제작인 <치즈이야기>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방치되었던 아이의 기억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려진 채 어둡고 좁은 방에 갇혀 몇 주를 버텨야 했다. 굶주림과 악취 속에서 겨우 살아남은 그 기억은 성인이 된 뒤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 주인공은 전신마비가 된 어머니를 다시 돌보게 된다. 그리고 그 돌봄의 장소는 과거 자신을 가둬 두었던 바로 그 방이다. 어린 시절 견뎌야 했던 시간이 같은 공간에서 다시 이어지는 순간, 오래 묻혀 있던 감정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 이야기의 흐름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치즈의 숙성 과정에 대한 비유다.
“블루치즈를 만들 때 중요한 과정 중 하나는 숙성입니다.” (16p)
블루치즈는 오랜 시간 동안 곰팡이가 퍼지며 특유의 풍미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은 주인공의 기억과도 닮아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며 단순한 고통으로만 남지 않는다. 원망과 애증,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뒤섞인 채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야기의 어조다.
“그 맛이 어땠을까요? 아주 환상적이었답니다.” (11p)
내용은 분명 잔혹하지만, 화자의 말투는 놀라울 만큼 차분하고 때로는 달콤하게 들린다. 마치 치즈의 풍미를 설명하듯 이어지는 서술은 오히려 이야기의 섬뜩함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복수극이라기보다, 시간 속에서 천천히 숙성된 감정의 이야기처럼 읽혔다.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
이 단편은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다. 엄마는 늘 두 사람을 공평하게 키우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공평함은 조금 기묘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엄마에게는 한 사람 몫의 사랑만 있었고, 그 사랑을 둘이 나눠 가져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는 딱 한 명분의 사랑만이 준비되어 있었다.” (88p)
그래서 자매는 늘 선택해야 했다.
칭찬을 받을 것인가, 선물을 받을 것인가.
사랑을 받을 것인가, 다른 것을 얻을 것인가.
언니는 대부분 양보하는 선택을 했고, 동생은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엄마가 말하는 공평함은 칭찬과 선물처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뉘어 주어지는 형태였다. 그 선택의 결과에는 언제나 기쁨과 고통이 함께 따라왔다. 그래서 언니는 두려움 속에서 양보를 선택하게 되고, 동생은 그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욕망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희생과 욕심의 구도로만 설명되지는 않는다.
“언니를 보고 있으면 나를 보는 것 같아.” (126p)
쌍둥이라는 관계는 원래 서로 닮은 존재로 여겨지지만,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을 강하게 묶고 있는 것은 단순한 혈연이나 쌍둥이라는 사실만은 아니다. 오히려 엄마의 기묘한 양육 방식이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복잡하게 얽어 놓는다.
사랑을 나누어 가져야 했던 반복된 선택 속에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어진 자매의 유대라기보다, 한 사람의 사랑을 나누어 가져야 했던 환경이 만들어낸 뒤틀린 연결 속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결국 쌍둥이라는 관계 자체보다, 왜곡된 사랑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소라는 영원히>
이 단편의 주인공 소라는 물건을 만지면 그 물건에 남아 있는 기억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 그 능력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소라를 한순간에 유명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물건의 기억을 찾기 위해, 혹은 사건의 단서를 얻기 위해 소라를 찾아온다.
하지만 그녀가 보는 기억들은 대부분 폭력과 죽음, 사고와 같은 어두운 순간들이다. 사람들에게는 잠깐의 호기심이었을지 몰라도, 소라에게는 계속해서 타인의 고통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능력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점점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된다.
“사람은 죽어도 물건은 죽지 않는다.” (223p)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을 잊거나 덮어 두지만, 물건에는 그 순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소라는 그 기억들을 계속해서 마주해야 하는 존재다. 결국 그 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몸을 훼손하고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지만, 세상은 점점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는 기술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남겨지는 기계 장치들, 그리고 그 안에 남아 있는 기억들. 소라는 다시 그 기억들을 마주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기억을 끝없이 떠안고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이 작품은 겉으로 보면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억의 무게와 그 기억을 감당해야 하는 한 인간의 고독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잊어버린 시간과 감정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현재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낸다.
<두 번째 해연>
이 단편은 죽은 딸을 복원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딸을 잃은 어머니는 그녀를 다시 살리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는 복원된 존재가 진짜 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끝까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국 딸은 복원되지만, 아버지는 그녀를 딸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거리를 둔다. 외모도 같고 기억도 같지만, 아버지에게 그녀는 여전히 ‘진짜 해연’이 아닌 또 다른 존재일 뿐이다.
“저는 저로 남아 있을 거예요. 제가 모든 걸 기억하니까요.” (266p)
복원된 해연은 생전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부모와 함께했던 시간, 가족의 기억, 자신이 살아 있었던 삶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그 기억은 부모에게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기억이 흐릿해질수록 복원된 해연을 자신의 딸로 받아들이게 된다.
“전 계속 당신의 딸이었고, 당신의 이야기는 여전히 제 안에 있어요.” (280p)
아이러니하게도 기억을 잃어가는 것은 아버지이고, 모든 기억을 지키고 있는 것은 복원된 딸이다. 결국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기억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몸일까, 기억일까.
혹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일까.
<안락의 섬>
이 단편은 외계인이 만든 섬에서 시작된다. 외계 종족은 인간을 연구하기 위해 지구에 왔다. 하지만 흔히 상상하는 침략이나 폭력은 없다. 대신 그들은 죽고 싶은 사람들의 자발적인 지원을 받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실험과 연구에 쓰일 당신들의 신체입니다.” (290p)
섬에 온 사람들은 편안한 환경 속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고, 그 대가로 자신의 신체는 연구 표본이 된다. 죽고 싶지만 스스로 죽기는 두려운 사람들, 삶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이 섬을 찾는다.
그래서 이곳은 죽음을 위한 장소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평온한 공간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안식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것은 죽음 자체보다 인간의 감정이다.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은 삶의 고통만이 아니라, 남겨진 기억과 관계다.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사랑의 기억들.” (324p)
삶을 버티게 만드는 것도 사랑이지만, 동시에 가장 큰 고통이 되는 것도 사랑의 기억이다. 이 작품은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인간을 끝까지 붙잡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치즈이야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낯설고 기묘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드러나는 감정들은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다.
버려진 아이의 기억,
사랑을 나눠 가져야 했던 자매의 관계,
지워지지 않는 기억,
죽은 딸을 붙잡으려는 부모의 마음.
겉으로 보면 기묘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은 단순히 낯선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쉽게 말하지 못했던 인간의 마음을 조금 더 솔직하게 드러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 이야기들이 정말 기괴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우리가 외면해 온 인간의 마음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