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다는 건, 정말 평범할까
아이를 키우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어떻게 해야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특별한 걸 바라지 않으면서도, 막상 마음속 깊이에는 ‘평범하게만 자라다오’라는 소망이 자리한다. 그런데 손원평 작가는 육아 속에서 이런 질문을 확장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의 이야기 <아몬드>를 탄생시켰다. 같은 육아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일상을 이렇게 이야기로 풀어낼 수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 컸다.
감정의 결핍과 평범함의 무게
소설 속 주인공 윤재는 분노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감정을 경험하지 못하는 아이.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평범하다’는 말이 결코 가볍지 않다.
90p에서 박사가 전하는 말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부모가 자녀에게 바라는 것 중 가장 흔한 말이 ‘평범하게만 자라주면 좋겠다’ 일 것이다. 나 역시 아이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린 적이 많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쉽게 내뱉던 ‘평범’이 사실은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삶의 목표일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171p의 구절은 부모로서 마음이 덜컥 내려앉게 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나 역시 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다. 가끔은 아이가 귀찮다며 손을 뿌리치지만, 나는 “잡아, 놓치면 위험해”라고 말한다. 언젠가 아이가 자라서 이 기억을 떠올릴 때, 그 손의 온기를 통해 자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지막으로 259p에서 윤재가 말한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오히려 더 진하게 다가왔다. 삶은 때로 달고, 때로 쓰고, 때로는 밍밍하게 흘러가지만 결국 우리가 받아들이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아이와 나, 손을 맞잡고 걷는 길
<아몬드>는 감정의 결핍을 가진 한 소년의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우리가 얼마나 감정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손원평 작가가 육아 속에서 영감을 얻었듯, 나 역시 아이와 함께 걷는 매일의 순간에서 평범함의 특별함을 깨닫는다.
평범하다는 것, 감정을 느낀다는 것. 이 두 가지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애써 지켜내야 할 가치일지도 모른다. 아이와 나,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걷는 그 길.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평범함일 것이다.
책 속의 문장들
90p
부모는 자식에게 많은 걸 바란단다. 그러다 안되면 평범함을 바라지.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평범하다는 건 사실 가장 이루기 어려운 가치란다.
박사의 말대로 평범하다는 건 까다로운 단어다. 모두들 '평범'이라는 말을 하찮게 여기고 쉽게 입에 올리지만 거기에 담긴 평탄함을 충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132p
책방은 수천수만 명의 작가가 산 사람, 죽은 사람 구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 높은 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 전까진 죽어 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 낸다. 조곤조곤, 딱 내가 원하는 만큼만.
171p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 진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259p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