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는 ‘능력’이라는 소재만으로도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대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중심이 되어 세상을 구하거나, 혹은 악인이 되어 힘을 휘두르는 이야기들이 많다. 하지만 <시프트>는 그 익숙한 기대를 단숨에 벗어난다.
이 소설에서 능력은 화려한 도구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고통을 옮길 수 있다는 무겁고 슬픈 감각에 가깝다. 그리고 그 능력을 가장 잔인하게 이용당하는 사람은 바로 그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능력 때문에 늘 타인의 고통 한가운데 서게 되고, 그를 통해 누군가가 조금 가벼워질 때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고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옮기는 일뿐이기 때문이다.
“이 능력의 정체는 뭘까. 단순히 옮기기만 하는 능력이 무슨 소용일까. 죽음과 고통의 대상자를 바꾸는 일밖에 하지 못한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모든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마찬가지다. 고통 역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삶의 밑바닥에서 질퍽하게 그 크기를 넓힐 뿐이다. 능력은 분명 악용된다.” (141p)
능력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문장이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대상이 바뀔 뿐, 더욱 약한 사람에게 더 큰 무게로 내려앉는다.
능력의 윤리와 무게가 동시에 밀려오는 대목이다.
“다들 왜 이 거추장스러운 재주 가지고 난린데! 내가 지난 세월 동안 얼마나 부담감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알아? 당신은 몰라. 할 수만 있다면 손을 잘라버리고 싶었다고!” (199p)
타인에게는 ‘특별한 능력’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평생을 짓누르는 짐이 된다. 감탄의 대상이 아니라, 죄책감과 두려움, 부담으로 얼룩진 채 손목에 묶여 있는 사슬 같은 것.
이 절규는 오랫동안 홀로 짊어진 고통의 깊이를 드러낸다.
“힘겹게 기적을 찾아 헤맸는데 그게 기적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목숨, 아마도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만 겨우 이룰 수 있는 거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자신이 찾아다니던 게 바로 이런 거였군. 나풀거리기만 하고 잡으면 보이지 않는 먼지.” (213p)
주인공이 끝없이 찾아 헤맨 해답은 결국 기적이 아니었다. 구원의 조건이 누군가의 삶을 담보로 삼는 것이라면 그것은 희망도 생존도 아니다.
손을 뻗으면 흩어져 사라지는 먼지 같은 진실.
이 문장을 읽고 오래도록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시프트>는 능력을 소재로 하지만, 결국 고통을 어떻게 다루고, 누구의 몫으로 남겨두는가를 묻는 소설이다.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면 그 과정에서 과연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
이 소설은 신선한 소재와 묵직한 감정이 함께 흐르며
읽는 내내 마음 한켠을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