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바깥은 여름 / 김애란

by 크랜베리


어떤 슬픔은 울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울음이 지나간 뒤에도, 사람 안에 오래 남아 계절처럼 쌓인다. <바깥은 여름>은 바로 그 ‘이후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으로 읽었다. 김태리 배우가 낭독한 버전이었고, 단순히 소설을 읽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작품 사이사이 배우가 직접 전하는 짧은 느낀 점들이 더해져 마치 조용한 북토크에 초대된 기분으로 책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읽었다’기보다 누군가의 삶 이야기를 오래 듣고 나온 느낌에 더 가까웠다.


이 소설집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이야기들은 모두 무언가를 잃은 이후의 사람들을 그리고 있지만, 그 상실을 설명하거나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상실 이후에도 계속 흘러가 버리는 시간 앞에서 어떻게 하루를 살아내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입동>

우리 부부는 등받이가 없는 벤치형 의자에, 영우는 유아용 접이식 식탁 의자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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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제와 같은 하루, 아주 긴 하루, 아내 말대로라면 ‘다 엉망이 되어버린’ 하루를. 가끔은 사람들이 ‘시간’이라 부르는 뭔가가 ‘빨리 감기’ 한 필름마냥 스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 우리 가족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이유도, 눈이 녹고 새순이 돋는 까닭도 모두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시간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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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떠오르는 건 어둠. 퇴근 후 딸각, 스위치를 켜면 부엌 한쪽에서 흐느끼던 아내의 얼굴과 다시 딸각, 불을 켰을 때 거실 구석에서 어깨를 들썩이던 아내의 윤곽뿐이다.


>> 이 문장을 읽고 나면, ‘사소한 하루’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아무 일 없던 하루가 사실은 가장 많이 견뎌낸 하루일 수도 있다는 걸, 이 문장들은 아주 조용히 알려준다.




<노찬성과 에반>

그 시절 찬성은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몇 가지 깨달았는데, 돈을 벌기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것과 그 인내가 무언가를 꼭 보상해주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있잖아, 에반. 나는 늘 궁금했어.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아픈 건 도대체 얼마나 아픈 걸까?

—……

—에반, 많이 아프니? 내가 잘 몰라서 미안해.

—……

—있잖아, 에반. 만약에 못 참겠으면…… 나중에 정말 너무너무 힘들면 형한테 꼭 말해. 알았지?

에반이 끙 소리를 냈다.


손바닥 위 반짝이던 얼음과 부드럽고 차가운 듯 뜨뜻미지근하며 간질거리던 무엇인가가. 그렇지만 이제 다시는 만질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옥죄었다. 하지만 당장 그것의 이름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라 찬성은 어둠 속 갓길을 마냥 걸었다


>> 이 이야기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잘 몰라서 미안해”라는 문장이 얼마나 깊은 감정을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읽고 나면, 괜히 누군가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고 싶어진다.




<건너편>

직접 연락하지 않아도 그런 소문은 귀에 잘 들어왔다. 이수는 자기 근황도 그런 식으로 돌았을지 모른다고 짐작했다.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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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는 노량진이라는 낱말을 발음한 순간 목울대에 묵직한 게 올라오는 걸 느꼈다. 단어 하나에 여러 기억이 섞여 뒤엉키는 걸 알았다.


>> 누군가의 실패는 언제부터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릴까. 이 문장은, 우리가 너무 쉽게 타인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돌아보게 만든다.




<침묵의 미래>

누구든 세상에 홀로 남겨질 수 있고 마지막 화자가 될 수 있지만 그게 하필 ‘나’라는 걸,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테며, 그 사실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거란 걸 납득해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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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사람들은 ‘혼자’라는 단어를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만지고 또 만졌다. 몸에 좋은 독이라도 먹듯 날마다 조금씩 비관을 맛봤다. 고통과 인내 속에서, 고립과 두려움 속에서, 희망과 의심 속에서 소금처럼 하얗게, 하얗게 결정화된 고독…… 너무 쓰고 짠 고독. 그 결정結晶이 하도 고유해 이제는 누구에게도 설명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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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


>> 말이 없어서 더 깊어지는 고독. 이 이야기는 ‘혼자’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풍경의 쓸모>

눈이 오면 아 입을 벌려 겨울을 맛보고, 비가 오면 명상에 잠긴 대지가 허밍하는 소리를 엿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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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 이 문장을 읽고 나면 지금의 내가, 그동안 지나온 시간들의 합이라는 사실이 조금 더 또렷하게 느껴진다.




<가리는 손>

아직까진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모바일 게임을 하고,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즐겨 보는 정도 같지만, 가끔 아이 몸에 너무 많은 ‘소셜social’이 꽂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온갖 평판과 해명, 친밀과 초조, 시기와 미소가 공존하는 ‘사회’와 이십사 시간 내내 연결돼 있는 듯해. 아이보다 먼저 사회에 나가 그 억압과 피로를 경험해 본 터라 걱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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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한 개에 한 살, 모두 열다섯 개다. 부드러운 카스텔라 안에 깊숙이 초를 꽂는다. 해마다 아이 생일 초를 밝힐 때면 기쁘고 엄숙한 마음이 든다. 긴 하루가 모인 한 해, 한 해가 쌓인 인생이 얼마나 고되고 귀한 건지 알아서.


>> 아이의 하루, 아이의 한 해, 그리고 인생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이 문장은 조용히 다시 알려준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물론 그중 가장 큰 건 내 ‘말소리’ 그리고 ‘생각의 소리’였다. 상대가 없어, 상대를 향해 뻗어나가지 못한 시시하고 일상적인 말들이 입가에 어색하게 맴돌았다.


>> 이 짧은 문장은 혼자 남겨진 사람의 하루가 얼마나 조용한지, 얼마나 긴지 보여준다.






<바깥은 여름>은 슬픔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슬픔 이후에도 계속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하루를 아주 낮은 목소리로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울기보다, 오래 머무르게 만든다. 당신의 계절이 아직 겨울일 때, 바깥이 이미 여름처럼 보일 때, 이 책은 조용히 말해준다. 괜찮다고.. 당신의 시간이 틀린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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