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자연스럽게 회사, 일중독, 직장인의 피로 같은 키워드가 떠올랐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갈등이나 인간관계를 다룬 이야기일 거라고, 어쩌면 조금은 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도입부 역시 그런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독할 정도로 정해진 루틴에 집착하는 인물,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같은 시간에 점심을 먹고 퇴근하는 삶. 웃기기도 하지만, 회사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묘사다.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만들어버린 ‘나만의 규칙’이 있고, 그게 누군가의 눈에는 충분히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이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회사 동료 이야기로 무슨 재미가 있겠어?”라는 생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 지루할 것만 같던 회사라는 공간을 살인 사건이라는 장치로 단숨에 뒤집어버린다. 이야기는 빠르게 속도를 올리고, 인물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기 시작하면서 독자는 점점 더 깊은 이야기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특히 이 소설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단순히 반전이나 사건 때문이 아니라,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내면을 끝까지 따라가게 만든다는 점이다.
거북이에 자신을 빗대는 독백들, 판단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사회적 관계 앞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고립감은 섬뜩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인간적이다.
책 속의 문장들
(13p) 그녀 일과만 보고도 시간을 맞출 수 있을 정도다. 오전 8시 45분 자기 자리로 출근, 오전 10시 15분 화장실 이용, 오전 11시 45분 휴게실에서 점심 식사, 오후 2시 30분 또 화장실 이용, 오후 5시 정각 컴퓨터 끄고 퇴근.
>> 웃기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문장이다. 회사라는 공간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규칙적인 존재로 만든다. 나 역시 비슷한 루틴을 떠올리며, 이게 과연 정상인지 이상인지 경계가 흐려졌다.
(31p) 대부분 거북이는 자신만의 환경에 머무르는 것을 좋아해. 누군가가 만지며 장난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어떠한 위협을 마주했을 때, 거북이가 보이는 첫 반응은 공격이 아니야. 등딱지 안으로 들어가 숨어버리지.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 아니니? 나한테도 거북이처럼 등딱지가 있으면 삶이 편할 것 같아.
>> 공격하지 않는다는 건 약함이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일 수도 있다.
(62p) 오늘 내 점심은 흰색이었어. 맞아, 나 여전히 단색 식사를 좋아해. 이유는 모르겠어. 만약 대부분 흰색인 샌드위치를 먹는데 그 사이에 초록색 양상추 덩어리가 있으면 그냥 불편해. 그렇다고 안 먹겠다는 건 아니지만, 샌드위치가 전부 한 가지 색인 게 더 좋아. 이걸로 나에 대해 함부로 단정 짓지 않았던 사람은 이 세상에서 네가 유일해.
>> 이해받지 못하는 취향보다 더 외로운 건,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받지 못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84p) 가끔 너무 답답해. 나는 친구를 사귀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쉬운 일이던데. 내가 이유도 없이 누군가에게서 미움을 받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건 너도 알 거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겪었어.
>> 이 문장은 조금 안쓰러웠다.
(228p) 내가 거북이었다면 내 삶이 훨씬 더 수월했을 거야. 내 동생이라면 회사에서 마주치는 못된 여직원에 대해 걱정할 필요도 없잖아. 항상 혼자 있을 수도 있고 원할 때마다 껍데기 안에 숨을 수도 있고 말이야.
>>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피로한 일인지, 이 문장은 너무 솔직하다.
(410p) 인간의 평균 수명은 80년 미만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거북이 종들은 그보다 오래 산다… 400년을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고작 30년을 살았는데도, 너무 힘들었다.
>> 오래 사는 게 축복일지, 견뎌야 할 시간일지는 결국 삶의 질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