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읽는 내내 실제로 존재한다면 한 번쯤은 꼭 찾아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소설이었다.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하룻밤 머물 수 있는 북 스테이 ‘소양리 북스 키친’이라는 공간에서 시작된다.
책을 매개로 사람들이 잠시 머물고 쉬어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장소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있고, 그 사연들은 과장되지 않아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회사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동시에 지쳐버린 마음, 크게 불만은 없지만 더 이상 열정을 쏟고 싶지 않은 상태. 이직이 답인 것 같다가도 그마저 귀찮게 느껴지는 무기력함..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낯설지 않아서 읽는 동안 여러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소설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중간중간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책’들이다. 어떤 책은 줄거리와 함께 소개되고, 어떤 책은 문장 하나로 스쳐 지나간다. 이미 읽었던 책이 다시 등장하면 반가웠고, 처음 만난 책들은 읽고 싶은 목록에 추가하고 바로 찾아 읽은 책도 있었다.
책 속의 문장들
(9p) 소양리 북스 키친은 책을 팔고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 북 카페와 책을 읽을 수도,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북 스테이를 결합한 복합 공간으로 총 4개의 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 단순한 공간 설명이지만, 이런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꼭 가보고 싶어졌다.
(13p) 책마다 감도는 문장의 맛이 있고 그 맛 또한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이 생각났다. 각각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추천해 주듯 책을 추천해 주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힐링이 되듯 책을 읽으며 마음을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북스 키친’이라고 이름 붙이게 되었다.
>> 책과 음식을 연결한 비유가 이 소설의 분위기와 제목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59p) 쳇바퀴 같은 회사 생활에 점점 익숙해짐과 동시에 질려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회사에 크게 문제는 없었다. 나윤이 다니는 회사는 좋은 프로그램과 복지 제도가 많은 IT 회사이다. 하지만 나윤은 요즘 들어 매사에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이 회사에서 자신의 역량을 모두 발휘하고 온 마음을 바치고 싶지가 않았다. 다들 얘기하는 슬럼프가 온 것 같았다.
>> 특별히 불행하지 않아도 지칠 수 있다는 걸 정확히 짚어낸 문장이라 깊이 공감됐다.
(59p) 이직이 필요할까 싶기도 한데 사실 그것도 귀찮았다. 회사에서 나윤을 괴롭히는 이상한 상사도 없고 하는 일이 딱히 싫은 것도 아니었다. 이직한다고 회사가 천국 같은 곳으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 현실적인 체념이 담긴 문장이라 읽으며 씁쓸한 웃음이 났다.
(113p) 햇빛 찬란한 한여름의 낮에는 침묵을 지키던 어떤 감정이 비가 퍼붓는 밤에는 모습을 드러냈다. 뭘 얘기해도 빗물에 씻겨 내려가 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뭘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마음속 우물이 가득 채워져서였다.
>> 감정이 넘쳐 말을 해야만 하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인상 깊었다.
(115p) 삶에서 완벽한 순간이란 오지 않는 거였어요. 불완전한 상태로 살아가다, 어느 순간이 오면 암전되듯 끝이 오겠죠.
>> 위로보다는 담담한 사실처럼 다가와서 오히려 오래 남는 문장이었다.
(147p)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카야에게서 누구나 자신과 닮은 구석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 이 책 속에서 추천하는 책이었는데, 바로 찾아서 읽어보았고 왜 이 인물을 좋아했는지 한 문장으로 이해하게 됐다.
(182p) 인생의 절벽에 서 있어도 시간은 어김없이 가고 있었다. 아무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거려도,
>> 멈춰 있는 건 나뿐이고, 시간은 계속 흐른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책들의 부엌>은 삶을 단번에 바꿔주는 기적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않는다. 대신, 불완전한 상태 그대로 살아가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번아웃이 온 줄도 모른 채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누군가에게는 카페였고,
누군가에게는 숙소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아무 말 없이 쉬어갈 수 있었던 장소.
언젠가는 ‘소양리 북스 키친’ 같은 친구집처럼 편하게 찾아가서 쉴 수 있는 공간이 꼭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