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가재가 노래하는 곳 / 델리아 오언스

by 크랜베리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바로 전에 읽었던 김지혜 작가의 <책들의 부엌>에 언급된 책이라 자연스럽게 궁금해져 찾아 읽게 된 소설이다.


제목부터 묘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니,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걸까. 큰 기대 없이 책을 펼쳤는데,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이야기는 빠르게 나를 끌어당겼다.


이 소설은 흔하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모든 장면이 놀라울 만큼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습지의 냄새, 물의 깊이, 공기의 온도까지. 문장 하나하나가 또렷해서 읽는 내내 장면을 상상하며 따라가게 된다.


책 앞부분에 실린 습지 지도 덕분에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 더욱 분명하게 그려졌고, ‘아, 바로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이구나’ 하며 실제 장소를 걷는 기분으로 읽게 되었다.


도입부는 솔직히 견디기 힘들 만큼 아팠다.

버려짐과 방치, 그리고 외면당한 아이의 시간이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지며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밀려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 카야가 보여주는 삶에 대한 의지와 나이답지 않은 침착한 행동과 말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자꾸 중얼거리게 된다. ‘그래, 잘하고 있어. 정말 잘 버티고 있어.‘


이 책은 주인공 카야의 어린 시절부터 삶의 마지막까지를 차분하게 따라간다. 이야기는 요란하지 않지만 잔잔한 물결 아래 묵직한 무게를 품고 흘러간다. 사람에게 외면당한 존재가 자연에게 길러지고 배우며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끝까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장까지 집중력을 놓지 않고 읽게 되었고, 왜 이 책이 추천되었는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 이야기가 카야 개인의 삶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르다는 이유로 소외된 한 사람을 통해 우리는 묻게 된다.


우리가 외면했기 때문에 달라진 것인지, 달랐기 때문에 외면한 것인지 소설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조용히 독자의 마음에 남는다.


책 속의 문장들


(13p) 삶이 부패하고 악취를 풍기며 썩은 분토로 변한다. 죽음이 쓰라리게 뒹구는 자리에 또 삶의 씨앗이 싹튼다.

>> 가장 처절한 순간에도 삶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는 사실이 냉정하게 다가왔다.



(26p) 어둠은 달콤한 향내를 간직하고 있었다. 더럽게 뜨거운 낮을 하루 더 견뎌낸 개구리와 도마뱀들의 텁텁한 숨결, 습지가 낮게 깔린 안개로 바짝 다가왔고 카야는 그 품에서 잠이 들었다.

>> 카야에게 자연은 단순한 자연이아니라, 가족과 같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27p) 며칠 동안 카야는 언니 오빠들의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아버지와 사는 법을 익혔다. 아니 오히려 올챙이들한테서 배운 교훈이 더 쓸모 있었다. 앞길을 막지 말아야 해, 눈에 띄지 않아야 해, 양지에서 그늘로 화드득 도망쳐 숨어야 해.

>> 아이가 세상을 배우는 방식이 너무도 슬프게 느껴졌다.



(49p)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때가 오자 심장의 아픔이 모래에 스며드는 바닷물처럼 스르르 스며들었다. 그러자 습지가 카야의 어머니가 되었다.

>> 어린 카야의 아픈 외로움이 느껴졌다.



(140p)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 저 멀리까지 느껴지는 외로움과 쓸쓸함..



(421p)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캐서린 클라크를 소외시켰던 건가요, 아니면 우리가 소외시켰기 때문에 그녀가 우리와 달라진 건가요?

>> 이 소설이 독자에게 남기는 가장 날카로운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448p)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자연이 그녀를 기르고 가르치고 보호해주었다.

>> 카야의 삶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극적인 사건보다 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고 형성되는지를 끝까지 따라가는 이야기다.


누군가는 외면했고, 그 빈자리를 자연이 대신 채웠다. 그 결과 만들어진 삶을 우리는 과연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덮고 나면 습지의 공기와 바람, 그리고 카야의 침묵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읽고 난 뒤에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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