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늘 상위 랭킹에 있던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반짝이는 표지의 색감과 포장지 같은 느낌, 그리고 <여름은 고작 계절>이라는 제목이 은근 궁금증이 생겼다.
이번에도 줄거리를 모른 채 읽기 시작했는데, 이야기는 한 가족의 이민으로 시작된다. 한국에서의 삶을 급하게 정리하고, 아버지를 따라 떠난 낯선 나라. 가난, 불안정한 생활, 말이 통하지 않는 세계.
그리고 책의 첫 문장에 “나의 반성문이자 회고록이다.” 이라는 문장을 보고 ‘무슨 내용일까?’ 더 호기심이 생겼다. 작가의 말에서 실제 이민 경험이 담겼다는 걸 알고 나니, 이야기의 밀도가 다르게 느껴졌다. 이 기억의 결은, 분명 작가가 실제로 통과해 온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사건보다 감정의 잔상이 오래 남는다. 무엇을 겪었는가 보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어떤 마음이 남았는지를 집요하게 붙잡는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가볍지 않았고, 자주 멈춰 서게 되었다.
책 속의 문장들
(8p) 과거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매번 다른 모습이 된다. 기억들은 계속 변화한다.
>>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매번 새로 덧칠되는 감정이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11p) 무엇이든 밀도가 너무 높으면 다른 것이 끼어들 수 없게 된다. 엄마는 어느새 온몸이 슬픔으로 이루어진 금속이 되었고,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쉬지 않았다.
>> 슬픔이 굳어버리면 오히려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표현이 오래 남았다.
(30p) 어른들은 어린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꼭 머리통 너머의 미래를 보려고 한다.
>> 아이를 본다기보다, 아이의 ‘가능성’만 보는 시선에 대한 날카로운 문장이었다.
(50p) 남들이 보기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너무 애를 쓰는 것이 티가 났을까? 어쩌면 우울해 보였을까.
>> 타인의 시선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126p)
“사람들은 언어를 발명한 순간부터 언어 밖으로는 못 나가게 된 것 같아.”
“딱 맞는 말이 없으니까.”
>> 말이 우리를 돕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두기도 한다는 대화라고 생각했다.
이 책의 인물들은 대부분 잘 버티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넘기고, 계절을 건너간다. 그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라, 읽는 동안 자꾸 내 여름을 떠올리게 된다.
여름은 뜨겁고, 쉽게 지치고, 지나가면 흔적만 남는다. 그래서 제목처럼 정말 고작 계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고작’인 여름이 인생의 방향을 조금 틀어 놓기도 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감정을 남기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