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라플라스의 마녀>는 제목만 보면 판타지 소설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워낙 유명한 베스트셀러라, 큰 정보 없이 읽었다.
하지만 책을 펼치자마자 마주하는 전개는 꽤 낯설다. 아직 인물도 상황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는 바람에 대한 대화로 시작된다.
책 속의 문장들
(6p)
“바람,” 이라고 미나가 대답했다.
“오늘 바람이 꽤 세게 불어.”
“맞아, 아까 비행기도 막 흔들렸지?”
“응, 요즘 같은 철에는 이 부근의 대기가 불안정해지는 일이 많거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바람은 곧바로 재난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12p)
“토네이도예요!”
미나가 소리치면서 마도카의 팔을 잡아 옆의 책상 밑에 몸을 밀어 넣었다.
이어지는 장면은 토네이도의 등장으로 강렬해진다. 이 소설이 단순한 미스터리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14p)
“안 돼! 엄마, 죽지 마! 안 돼, 안 돼!”
마도카는 미나의 몸에 매달려 계속 부르짖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줄거리를 거의 알지 못한 상태로 읽다 보니, 읽는 내내 머릿속에는 같은 질문이 맴돌았다. 이 모든 전개와 사건들은 도대체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시간이 흐르며 이야기는 온천지 황화수소 사고로 이어진다. 사고로 보였던 사건은 점점 특정 인물들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218p)
온천지의 황화수소 사고로 사망한 피해자 두 사람은 모두 영화감독 아마카스 사이세이와 인연이 있다.
그 아마카스 사이세이의 아내와 딸은 다름 아닌 황화수소에 의해 사망했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아들은 우하라 젠타로라는 천재 의사가 살려냈다.
그리고 그 의사의 딸인 우하라 마도카는 황화수소 사고가 있었던 온천지에서 한 청년을 찾아다니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의 행동은 독자를 자연스럽게 추리로 이끈다. 왜 이 사고가 특정 인물과 연결된다고 생각했는지, 그 연결의 실마리를 독자가 함께 고민하게 만든다.
(267p)
아카쿠마 온천 사고를 신문 기사를 통해 알게 된 마도카가 겐토 군을 찾기 위해 행방을 감춘 것이라고 칩시다.
그런데 왜 그 사고가 겐토 군과 연결된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만일 정말로 연결이 되는 거라면 겐토 군은 그 사고에 어떻게 관여했을까.
다만 이 지점까지 오는 동안 독서가 마냥 순탄하지는 않다. 초반의 느닷없는 토네이도와 급작스러운 전개, 갑자기 등장한 미스터리한 소녀는 흡입력보다는 낯섦을 먼저 안겨준다. 중반부까지는 책을 덮을까 고민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리거 이야기의 중심에는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387p)
“수학자 라플라스를 아십니까? 풀네임은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 프랑스인이에요.”
“만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현재 위치와 운동량을 파악해내는 지성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는 물리학을 활용해 그러한 원자의 시간적 변화를 계산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고 미래까지 완전하게 예지가 가능하다…….”
“라플라스는 그런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 존재에는 나중에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그 개념은 결국 한 소녀의 삶으로 이어진다.
(360p)
“나는 라플라스의 마녀가 되고 싶다, 라고 했어요.”
“라플라스?”
“마도카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토네이도입니다.”
이 문장은 멋있기보다는 씁쓸하게 남는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 이야기는 미스터리를 넘어, 알고 산다는 것의 무게와 선택의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391p)
“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되는 길을 선택했어요.
마도카를, 내 딸아이를, 인체 실험에 사용한 겁니다.
병에 걸린 것도 아닌 딸아이의 머리를 가르고 유전자 조작 암세포를 심고 전극과 기계를 넣었어요.
아버지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다고,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합니다.”
(515p)
“이 세상의 미래 말이야.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그건요, 모르는 게 더 행복할걸요?”
모든 진실이 드러난 뒤에도, 이 소설은 명확한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이 책의 내용은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강하게 좋지도, 그렇다고 실망스럽지도 않은 중립적인 인상에 가까웠다.
첫 도입부는 꽤 낯설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토네이도와 그 직후 이어지는 사건들은 전개를 따라가기보다는 상황을 받아들이느라 잠시 멈칫하게 만든다. 이후 등장하는 미스터리한 소녀 역시 서서히 스며들기보다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느낌이 강해 초반에는 물음표가 더 많이 남는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그때 느꼈던 어색함과 낯섦이 이야기의 구조 안에 있었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처음에는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사건과 인물들이 뒤늦게 의미를 갖기 시작하면서 ‘그래서 이런 방식이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라플라스의 마녀>는 처음부터 독자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소설이라기보다, 의문을 쌓아 두었다가 천천히 설명해 나가는 이야기다. 그래서 초반의 당황스러움까지 포함해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소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읽히게 된다.
모두에게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읽는 동안 계속 질문을 던지고, 다 읽고 나서야 처음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힘은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