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작품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주의해 주세요.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 에 등장하는 주인공, 그레이스 박사가 우주로 떠난 이유는 단순하지만 그만큼 절박하다.
태양의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스트로파지가 태양의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지구에 도달하는 빛과 열은 점점 감소하고, 그 결과 지구는 서서히 식어가는 위기에 놓인다. 이대로라면 인류는 수십 년 안에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다.
과학자들은 그 원인을 추적하던 끝에, 태양과는 달리 다른 별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차이를 밝혀내고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인류는 결국 직접 답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헤일메리 프로젝트’.
지구를 구할 단서를 찾고,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주인공은 그 막막한 우주로 향한다.
지구도 아닌, 우주에 인류가 단 한 명뿐이라면 그 외로움은 얼마나 클까. 그리고 그 순간, 전혀 다른 별에서 온 존재를 만난다면 우리는 무엇을 먼저 할까. 경계일까, 공격일까, 아니면 질문일까.
앤디 위어의 <마션>이 고립된 인간의 생존기였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고립된 인간과 외계 존재의 ‘관계’에 더 가깝다.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해 온 외계인의 이미지는 대개 공포에 가깝다. 영화 속 외계인은 침략자이거나, 이해 불가능한 존재이거나, 결국 인간이 물리쳐야 할 대상이었다. 낯섦은 곧 위협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의 만남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낯선 존재를 향해 총을 겨누는 대신 말을 걸고, 관찰하고, 배우려 한다. 두려움 대신 호기심이 먼저 작동한다. 서로의 과학을 설명하고, 먹는 것과 사는 방식, 환경을 묻는다. 다름은 갈등의 씨앗이 아니라 이해의 출발점이 된다.
(221p) “외계인이다. 진짜 외계인. 40에리다니에서 온 외계인들.”
우주에서 마주한 존재를 두려움으로 규정하지 않고 이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먼저 드러나는 순간이다. 공포가 앞섰을 법한 장면에서 주인공은 경계 대신 관찰을, 위협 대신 분석을 선택한다. 이 태도는 이 소설이 결국 ‘대결’이 아닌 ‘관계’의 이야기임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253p) “사고력이 있는 존재를 ‘그것’이라고 부르는 건 무례한 일 같으니까.”
외계인을 어떻게 호칭할 것인지 고민하는 장면은 사소해 보이지만, 작품의 핵심을 담고 있다. 낯선 존재를 대상화하지 않겠다는 의지, 이해하기 전이라도 존중하겠다는 태도. 그것은 단순한 언어 선택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방식에 대한 선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는 이름을 붙인다. ‘로키’.
그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정체불명의 외계 생물체가 아니다. 이름을 가진 존재, 대화할 수 있는 상대,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인격체가 된다.
마침내 로키가 처음 말을 건넨다.
(258p) "(음표)“
발음도 억양도 없다. 음정만 있다. 고래의 화음처럼 겹쳐지는 소리. 그런데 놀랍게도 서로 들을 수 있다. 완전히 다른 행성에서 진화했는데도 가청 범위를 공유한다는 사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게 된다. 이해의 시작은 언어가 아니라 ‘들림’이었다.
이후의 장면들도 인상 깊다. 두 존재는 서로의 과학을 설명하고, 먹는 것과 사는 방식, 자는 환경을 묻는다. 로키의 세계에서는 암모니아가 자연스럽지만 인간에게는 치명적이다. 중력도, 대기 조성도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는 갈등이 아니라 배움의 계기가 된다. 더 발전된 체계를 배우려는 태도와 자신들의 기술을 아낌없이 공유하는 모습. 이 소설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택한다.
(324p) “좋음. 같음. 너랑 내가 에리다니와 태양 구함.”
각자의 별을 구해야 하는 존재들. 목적은 다르지만 위기는 같다. 그래서 ‘같음’이라는 단어가 더욱 크게 울린다. 후반부로 갈수록 이 이야기는 단순한 과학 SF를 넘어 우정을 다룬다.
(612p) “나를 그리워할 것임, 질문? 나는 너를 그리워할 것임. 너는 친구임.”
“응. 나도 널 그리워할 거야.”
각자의 행성을 구하기 위해 결국 헤어져야 하는 순간. 그레이스는 지구로 돌아가야 하고, 로키는 에리다니를 살려야 한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고 상황은 다시 뒤집힌다. 그레이스는 지구 귀환을 포기하고 로키를 구하러 간다. 영웅적 결단이라기보다 친구를 두고 갈 수 없다는 선택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로키 역시 그레이스를 끝까지 살리려 한다.
(674p) “너는 죽을 수 없음. 나 너 죽게 두지 않음. 우리는 너 집으로 보냄. 에리드는 감사할 것임. 너 모두를 구함. 우리는 너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함.”
우주 한가운데에서 서로 다른 종이 서로의 생존을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그 장엄함보다도 따뜻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결국 그레이스는 지구로 돌아가지 못한다. 대신 로키가 사는 행성에 남는다. 처음에는 낯선 세계였지만, 이제는 친구가 있는 세계다. 인류의 영웅이 되는 대신 한 존재의 친구로 남는 선택은 했지만,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완성처럼 보인다. “행복! 행복, 행복, 행복!”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라일랜드 그레이스는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겁이 많고, 살고 싶어 하고, 가능하다면 책임을 피하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결단은 더 크게 다가온다.
이 소설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는 외계인을 ‘공포’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주에서 단 한 명뿐인 인간이 만난 존재는 괴물이 아니라 친구였다. 다름은 위협이 아니라 확장이다.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고, 배우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결국 두 세계를 구한다.
곧, 영화가 개봉하면 꼭 보러 가야겠다.
책 속에서 상상했던 장면들인 태양을 먹는 아스트로파지의 움직임, 음정으로 대화하는 로키의 소리,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는 두 존재의 모습을 과연 어떻게 시각화했을지 궁금해졌다. 활자 속에서 내가 그려낸 우주와 스크린 위에 구현될 우주가 얼마나 닮았을지 비교해 보고 싶다.
아마 영화는 스펙터클을 더 강조하겠지만, 그 안에 담긴 관계의 온도까지 잘 담아주기를 기대하게 된다.
<책 속의 용어들>
- 헤일메리 뜻은?
(70p) 나는 헤일메리(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주 낮은 성공률을 바라보고 적진 깊숙이 내지르는 롱 패스를 뜻하는 미식축구 용어, 버저가 울리는 순간에 득점할 것을 노리고 먼 거리에서 던지는 슛을 뜻하는 농구 용어이기도 하다-옮긴이) 호에 타고 있다.
- 아스트로파지 뜻은?
(80p) "박사님이라면 별을 먹고 사는 생명체를 뭐라고 부르시겠어요?" 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어원을 애써 떠올렸다. 아스트로파지[별을 뜻하는 아스트로(astro)와 세균을 숙주세포로 하는 바이러스를 의미하는 박테리 오파지(bacteriophage)의 합성어-옮긴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네요.”
** 아스트로파지 특징
- 엄청난 에너지 저장 능력
태양 에너지를 흡수해 거의 100%에 가깝게 저장하는 생물로, 사실상 ‘자연이 만든 초고효율 배터리’ 같은 존재이다.
- 우주 공간에서 생존
진공 상태에서도 살아가며, 별(특히 태양) 주변에서 번식한다.
- 지구 위기의 원인
태양의 에너지를 빼앗아 지구로 오는 빛이 줄어들게 만들고, 이로 인해 지구는 점점 냉각되는 위기에 처한다.
- 동시에 해결의 열쇠
엄청난 에너지를 저장하는 특성 덕분에, 우주선 연료로 활용되며 인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 에리디언이란?
(221p) 외계인이다. 진짜 외계인. 40에리다니에서 온 외계인들. 그럼 저들이 '에리다니언'이 되는 건가? 발음도 어렵고, 기억하기는 더 어렵다. '에리단'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에리디언'은 어떨까? ‘이리듐'과 다소 비슷하게 들린다. 주기율 표상의 원소 중에서 발음이 괜찮은 축에 드는 원소다. 그래, 에리디언 이라고 불러야겠다.
- 왜 로키인가?
(253p) 우리말에는 적당한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 다른 대명사를 써야 할지도 모르 겠다. 나야 저들에게 열일곱 가지 생물학적 성별이 있는지 어떤지 모르니까. 아니면 성별이 없을 수도 있다. 지적인 외계 생명체와의 첫 만남에서 정말로 어려운 부분인데, 논의된 적이 없다. 문제는 대명사다. 당장은 ‘그’로 가기로 한다. 사고력이 있는 존재를 '그것'이라고 부르는 건 무례한 일 같으니까. 그리고 다른 설명을 듣기 전까지 그의 이름은 바위투성이 '로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