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액스 /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by 히읗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 수가 없다〉의 원작 소설이라는 정보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표지 속 도끼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 도끼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고, 굳이 그런 소설을 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후기가 좋아서, 영화도 책도 어떤 줄거리인지 미리 찾아보지 않은 채 읽기 시작했다.


의외로 <액스>는 아주 조용하게 시작한다.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아니라, 한 남자의 담담한 생각과 나레이션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이 차분한 독백은 예상했던 결과는 전혀 달랐고, 오히려 그 점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사람을 쏜다는 것.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 하지만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16p)


이 문장은 이 소설의 핵심에 가깝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변호한다. 그의 논리는 지나치게 정연하고 차분해서, 어느 순간 그 말들을 따라가게 된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이곳의 빌어먹을 주민들만큼이나 나 역시 이런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18p)


안정적인 집, 평범한 일상, 이름이 새겨진 우편함. 그는 그것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에게서 빼앗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액스>는 불편하게 만든다. 그의 불행에는 공감이 가지만, 그의 결론에는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난 안 되는 거야? … 그의 이력서엔 있는데 내 이력서엔 없는 게 있나?” (29p)


이 소설은 범죄 이야기이면서도, 철저히 고용과 경쟁의 구조를 파고든다. 이력서 몇 장으로 인간의 가치를 가르고, 탈락한 사람은 이유조차 제대로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주인공은 밀려났고, 그 분노는 점점 왜곡된 방식으로 분출된다.


“우리는 상어와도 같다. 계속 헤엄치지 않으면 이대로 가라앉아버릴 테니까.” (50p)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사라지는 삶. 그는 시스템을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그 논리를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수행한다.






읽으며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반복적인 ‘행운’이다.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순간마다 상황은 그를 비켜가고, 그는 계속해서 살아남는다. 이 설정은 사회 비판으로 읽힐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힘을 갖는 이유는, 그 모든 상황을 담담한 문장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과장된 폭력 대신 사고방식의 균열을 보여주고, 독자는 그 균열을 따라가며 끝까지 읽게 된다.


“나는 킬러가 아니다”


“나는 킬러가 아니다. … 사건의 논리에 의해 강요된 것일 뿐이다.” (162p)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을 부정한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는 스스로의 무감각을 두려워한다.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이다.” (162p)


이 모순이 <액스>를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니라,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로 만든다. 도끼보다 무서운 것은 폭력이 아니라, 폭력을 너무도 쉽게 합리화하는 언어다.






<액스>는 분명 불쾌하다. 주인공의 논리는 지나치게 매끄럽고, 폭력은 쉽게 정당화되며, 정의는 끝내 개입하지 않는다. 그 불균형은 끝까지 해소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책을 덮기 전까지 페이지를 멈추기 어렵다. 차분한 문체와 냉정한 독백은 독자를 계속 끌고 가고, 잔혹함보다는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게 만든다. 그래서 <액스>는 잔인한 소설이라기보다, 불쾌하지만 이상하게 잘 읽히는 소설에 가깝다.


넷플릭스에도 올라와 있던데, 이 담담한 독백과 불편한 리듬이 영상에서는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책과 영화가 같은 이야기를 얼마나 다르게 말하고 있는지를 비교해 보며 감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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