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쓰는 로맨스, 낮에는 숨기는 숙제
나는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지만, 우리 가족은 모른다.
남편은 내가 뭔가 글을 쓰는 건 아는 눈치지만, 정확히 무슨 글인지는 모른다.
그는 종종 떠보듯 “또 일기 써?” 하고 묻곤 한다. 나는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는 더 모른다. 아이 눈에 나는 늘 숙제 검사할 때 펜을 들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사실 그 손으로 밤마다 남주와 여주의 대사를 고치느라 바쁘다는 건 꿈에도 모른다.
문제는 글쓰기가 생활 속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빨래를 개다가도 문장이 툭 튀어나온다. 쓸 때와 들을 때 문장의 맛이 다르기 때문에 종종 혼잣말을 하곤 하는데, 문제는 아이의 질문이 언제 날아올지 모른다는 것. 발각 위기는 늘 갑자기 찾아온다.
어느 날 저녁, 빨래를 개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중얼거렸다.
“갑자기 좋아지는 것들이 있다. 느닷없이, 마치 마법처럼 찾아오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 순간 아이가 뒤에서 물었다.
“엄마! 뭐가 마법처럼 찾아와?”
나는 며칠 전 짝을 잃어버려 신지 못했던 양말을 들어 올리며 “이거”라고 둘러댔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우와! 진짜 마법처럼 나타났네. 내 양말!”
그리고는 바로 그 양말을 장갑처럼 손에 끼고 거실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나는 그 모습에 웃음이 터졌지만, 손에 들린 빨래 더미가 들킬 뻔한 순간의 증거처럼 남아 있었다.
또 다른 날에는 아이가 내 옆에 앉아 공부를 하겠다며 문제집을 펼쳤다. 나는 황급히 노트북을 닫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화면 위에는 막 완성한 장면이 떠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지만, 다행히 아이는 화면 대신 수학 문제의 고통을 호소하느라 바빴다.
"엄마, 이 문제 왜 답이 안 나와! 수학 싫어."
"차근차근 풀어 봐."
"아니야. 숫자들이 일부러 날 괴롭히는 것 같아."
나는 속으로 '넌 숫자니? 엄만 남주가 괴롭힌다.'라고 중얼거리며, 노트북 화면을 가리려 애썼다.
그날 나는 결국 ‘사생활 보호 필름’을 주문했다. 먼지가 껴서 두 번이나 다시 붙였지만, 어쨌든 효과는 있는 것 같았다.
요즘 아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숙제는 진짜 귀찮아.”
“그래도 해야지.”
“칫. 엄마는 숙제도 없으면서.”
나는 멈칫했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엄마도 숙제가 있어. 집안일하는 것도, 일기 쓰는 것도 다 엄마 숙제야.”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엄마 숙제 다 하면 내가 상 줄게. 우리 열심히 숙제하자.”
그리고는 내 노트북 위에 하트 스티커 하나를 척 붙였다.
"학교에서도 숙제 검사하면 선생님이 칭찬 스티커 주잖아. 엄마도 받아."
그 하트는 작은 보상이면서, 아직 세상에 제출하지 못한 내 숙제에 붙은 임시 성적표 같았다. 시간이 흘러도 그 스티커는 떨어지지 않고, 노트북을 열 때마다 은근히 마음을 간질인다.
들키는 게 두려웠던 건, 책이 되지 못한 원고는 미완성의 숙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감추고 싶었고 부끄러웠다. 그런데 아이의 하트 스티커는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엄마, 숙제 잘하고 있네.”
언젠가 아이가 내 글을 읽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얼굴을 찡그리든, 깔깔 웃든 상관없다. 결국 내 생활에서 나온 문장들이라는 걸 알 테니까. 아슬아슬했던 순간들이 언젠가는 함께 웃을 추억이 될 거라 믿는다. 그리고 아이가 그날 웃으며 말해주면 좋겠다.
"엄마. 숙제 참 열심히 했네."
그때 나는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독자에게 합격 도장을 받은 기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