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은 꽝, 원고는 당첨

쓰레기통엔 은박지 조각, 모니터엔 매일의 기록

by 오로라

편의점 옆 복권가게에서 즉석복권을 샀다.

복권을 받으며 괜히 기대가 부풀었다.

"이번에는 되겠지. 적어도 1000원쯤은."


주섬주섬 복권을 가방에 넣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도착하자마자 동전을 들고 와 복권을 긁었다.

긁는 소리가 사각사각 경쾌했다. 손가락 끝은 이미 당첨금을 쓰고 있었다. 십 년 넘은 냉장고를 새로 사고 남은 돈으로는 대출금 이자를 갚아야겠다는 상상까지 마쳤다. 하지만 결과는 늘 그렇듯이 꽝.

작은 은박지 조각만 쓰레기통 한구석을 조그맣게 차지했다.


"남들은 1000원이라도 되던데, 왜 나만 꽝인 거야?"

허무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직 하루가 끝난 건 아니었다.


거실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오늘도 남주와 여주는 티격태격하며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원고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몇 줄만 움직여도, 문장은 바로 쌓여 갔다.

방금까지 쓰레기통 앞에서 고개를 떨구던 내가, 이제는 모니터 앞에서 괜히 뿌듯해지고 있었다.


복권은 매번 꽝인데, 원고는 매일 당첨이었다.

물론 돈은 안 주지만, 확실한 보상을 주었다.

"오늘도 썼다."라는 은근한 성취감.

그 성취감이야말로 매일의 작은 상금이었다.


로맨스 소설 속 남주들은 늘 대박만 터뜨린다.

고백하면 성공, 사업하면 대박, 시험은 한 번에 합격, 심지어 길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더라도 누군가가 꼭

찾아서 돌려준다. 우연히 마주친 타이밍조차 기막히다.


현실의 나는 꽝 복권을 들고 있지만, 글 속 주인공은 늘 승리자다.


"야. 남주. 너 대박 치는 거 다 나 때문인 거 알고 있지?"

괜히 생색을 잔뜩 내 봤지만,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남주는 모니터 속 여주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나를 무시했다. 그 순간 알았다.


글 속에서만큼은 나도 누군가를 승리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니, 꽝 난 복권도 완전히 무쓸모는 아니었다. 은박지를 긁는 그 짧은 순간의 두근거림은, 마치 원고 저장 버튼을 누르기 전의 설렘과 비슷했다. 결과가 꽝이든, 문장이 어색하든 상관없다. 적어도 한 번 시도했다는 사실이 있으니까.


저녁 무렵, 남편이 다가와 묻는다.

"오늘도 부자가 돼 보려고 시도를 했었나 봐?"

"으응?"

"왜 계속해봐. 언젠간 당첨이 될 수도 있잖아?"

"그럴까?"

"엉. 근데 당첨되면 나한테 꼭 알려야 된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하는 거 봐서."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 짧은 농담이 나에게 던지는 숨겨진 응원 같았다.


쓰레기통에는 꽝 난 복권이 쌓여 있지만, 모니터 속엔 매일의 기록이 차곡차곡 쌓여 간다. 그리고 몰래 숨어 있던 가족의 응원도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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