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의 무한 루프 속에서 건져 올린 한 줄
글을 쓰는 것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건 고치는 일이다. 퇴고에는 끝이 없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문장을 붙잡고 씨름한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짧고 간단해서 좋지만, 왠지 밋밋하다.
그래서 바꿔 본다.
"그는 조심스레 그녀의 손끝을 감쌌다."
그러다 다시 쓴다.
"그는 망설이다, 결국 그녀의 손을 잡고 말았다."
한참을 고치다가, 결국은 첫 문장으로 돌아온다. 무한 루프의 시작이다.
가끔은 남주와 여주가 내 퇴고에 질려 버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대사를 열 번 바꿔주고, 표정을 세 번 바꿔주고, 결국 처음 쓴 걸로 되돌린다.
남주가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하... 손 잡는 일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작가님, 저도 지쳤어요. 그냥 손만 잡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여주도 더 이상 참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외친다.
"이제 손.. 그만 잡히고 싶어요!"
둘이 나를 향해 단체 항의를 하는 듯해서, 모니터 앞에서 조용히 사과의 미소를 짓는다.
퇴고가 길어질수록 내 책상 위에도 흔적이 쌓인다. 미지근해진 커피잔, 반쯤 남은 과자 부스러기,
지나간 시간 속엔 삭제된 문장들의 흔적이. 밤이 깊어질수록 집 안은 조용해지고, 내 모니터만 빛이 난다.
손가락은 마치 제자리걸음을 하는 러닝머신 위에 올라탄 것처럼 헛바퀴만 도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문장은 점점 더 이상하게 굴러간다.
"그는 얼떨결에 그녀의 손가락을 스쳤다."
"그는 손을 잡으려다 물컵을 엎질렀다."
"그는 용기를 냈지만, 대신 그녀의 가방끈을 붙잡았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우유부단해서 무슨 결정을 하겠어!" 라며 문장이 나를 꾸짖는 것 같아 괜히 주눅이 든다.
그럴 때면 커피를 다시 데우러 부엌에 다녀오기도 하고, 괜히 휴대폰의 시간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잠깐의 딴짓으로 도망가지만, 결국 다시 모니터 앞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같은 문장을 붙잡고 흔들어 댄다.
퇴고는 마치 인생 같다. 돌아가서 고치고 싶지만,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오고야 만다. 더 나은 선택이 있을까 고민하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의 선택뿐이다.
하지만 그 반복이 헛되지 않은 건, 지워진 흔적 속에서 가장 단단한 문장이 남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이 남듯, 수십 번 고쳐진 문장도 결국엔 살아남는다.
내가 남긴 실수들은 어쩌면 퇴고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잘못을 돌아보며 후회하더라도, 그 길을 걸어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앞으로의 문장처럼, 나의 내일을 써 내려갈 것이다.
오늘도 나는 문장을 지웠다 다시 쓴다. 무한 루프 속에서 끙끙대다가, 결국 가장 단순한 문장으로 돌아온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마 앞으로도 수십 번 지워졌다가 다시 살아날 문장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이 한 줄은 더 단단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