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짓다가 하루가 다 갔다

제목을 붙이는 고통

by 오로라

원고를 다 쓰고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으면, 잠시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런데 제목 칸에서 발이

멈추고 만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제목은 글의 첫인사다. 독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느냐 마느냐가 여기서 갈린다. 그래서 더 어렵다.

문은 하나뿐인데, 열쇠 후보는 수십 개다.


나는 제목 후보를 늘 네개의 바구니에 담아둔다.


1. 오글 버전 : 감정과다. 읽다 보면 내가 먼저 얼굴이 빨개진다.

2. 진지 버전: 학술대화 같아 보이는 위험.

3. 시적 버전: 예쁜데 무슨 말인지 나만 아는 경우.

4. 솔직 버전: '오늘도 망함' 같은 자기 고백형.


제목을 붙이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회의가 열린다.


오글 위원: "감정은 진실이다. 특히 새.벽.감.성. 직진 해!"

진지 위원: "근거를 제시하시오. 모호한건 집어치워!"

시적 위원: "바람과 구름이 제목을 쓰게 둡시다."

솔직 위원: "그냥 써. 있는 그대로."


나는 의장석에 앉아 고개만 끄덕인다. 결론은 늘 "보류"


제목이 초라해 보이면 부제를 길게 달아 균형을 맞춘다. 마치 작은 머핀 위에 크림을 산처럼 쌓아 올리는 기분. 먹음직해 보이지만,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엔 크림만 남는다.


가끔은 딸의 생각을 물어보기도 한다.

"일기에 제목을 붙인다면 어떤게 좋을까?"

"엄마! 오늘은 어때? 매일이 오늘이니까."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나는 크게 감동한다. 쉽게 정하는데 그 의미 또한 생각하게 만드니까.


여기서 문제는 로맨스 소설을 쓸 때도 똑같이 반복된다. 남주와 여주의 이야기를 몇 만자 쌓아올리고도,

그들의 세계를 단 한 줄의 제목으로 붙잡으려 하면 머리가 하얘진다. 너무 달콤하면 오글거리고, 너무 담백하면 밋밋하다. 제목을 정하는 일은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을 어떻게 불러낼 것인가의 문제다. 때로는 제목 하나 때문에 고백 장면의 온도까지 다시 점검하게 된다.


제목이 어려운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첫째, 요약이어야한다. 길게 쓴 마음을 한 줄로 접어야 한다.

둘째, 초대장이어야 한다. 들어오라고 열심히 손짓해야 한다.

셋째, 거울이어야 한다. 글의 얼굴을 비춰야 한다.

이 셋을 동시에 만족시키려다 보면, 한글자 한글자가 벽돌처럼 무거워진다.

그래서 나는 작은 요령을 만든다.

우선 가장 무난한 제목을 단다. 무색무취여도 괜찮다. 다음으로 부제에서 숨을 쉰다. 내용의 온도를 부제에

살짝 묻힌다. 마지막으로 첫 문단을 다시 읽는다. 첫 문단이 잘 걸리면, 제목이 뒤늦게 따라온다.

대단한 비결을 아니지만, 적어도 글을 '미정'으로 묶는 참사는 줄일 수 있다.


가끔은 장난처럼 제목을 정하기도 한다. "아무도 클릭하지 마시오." 그러면 반골 성향의 사람들은 무조건 클릭할테니까. 때로는 "제발 읽어주세요." 동정의 마음으로 클릭할 사람이 분명이 있을 것이다. 낄낄 웃으며 제목을 지워버린다. 혼자 웃긴 건 대체로 세상에 덜 웃기니까 말이다.


좋은 제목은 문을 열면 살며시 사라진다. 독자가 문을 무사히 통과하도록 돕고, 방안을 구경하기 시작하면 조용히 뒤로 물러나는 제목. 나도 그런 제목을 쓰고 싶다.


결국 나는 오늘도 타협한다. 너무 과장되지 않되, 너무 숨지도 말자. 제목은 문, 부제는 손잡이, 본문은 방.

나는 그렇게 되뇌며 업로드 버튼을 누른다.

완벽한 제목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문이 약간 삐걱거려도, 방이 따뜻하면 사람은 들어온다.

내가 할 일은 방을 꾸미고, 또 꾸미는 것. 제목은 손님이 길을 잃지 않게 문 앞에 달아두는 작은 표지판이면 된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한 줄을 고르고, 부제를 만지작 거리고, 결국 업로드를 누를 것이다. 조금 어설픈 제목으로도 누군가가 들어와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마지막 문장을 함께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제목을 달았다. 방은 준비됐다. 이제 문을 열어둔다. 누군가 들어와 살펴봐 준다면 그걸로 오늘의 제목은 충분하다.


이전 07화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를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