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피트니스 센터

회원 탈퇴 없는 무한 운동 프로그램

by 오로라

작가는 체력이 필요하다. 그건 지망생이라고 다르지 않다.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다.

"글은 머리로 쓰는 거지, 체력이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했는데, 하루 중 여러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있으면 허리는 뻐근하고, 손목은 시큰거리고, 눈은 뻑뻑하다. 결국 체력이 바닥나면 문장도 같이 주저앉는다.


그래서 결심했다. 체력 단련을 길러야 한다.

문제는 헬스장에 갈 체력조차 없다는 것.


사실 나는 나만의 '집안일 피트니스 센터'를 운영 중이었다.

빨래를 널며 팔을 번쩍 드는 건 어깨 운동.

걸레질을 하면 온몸이 들썩이는 전신 유산소 운동.

쓰레기를 버리면서 이곳저곳을 오르내리면 하체 근력 강화 운동.


심지어 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올 때는 자연스레 데드리프트 자세가 되고, 냄비를 들고 카레를 저을 때는 전완근과 삼두근이 타오른다. 방을 청소할 때는 스트레칭과 런지가 번갈아 등장하며, 김치통 뚜껑을 열 때는 악력까지 단련된다.


집안일은 무료이자, 종합 운동 프로그램이다.

차이가 있다면, 헬스장과 달리 여기는 '회원탈퇴'가 불가능하다는 점.


문제는 프로그램 알람이 예고도 없이 울린다는 것이다. 글이 막 풀리려는 순간, 세탁기가 풍악을 울린다.

남주가 여주에게 고백하려는 찰나, 저녁 준비 알람이 떨어진다.

바로 강제 체력 단련 시작이다.


덕분에 내 원고 속 남주도 자꾸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인다.

"그는 그녀를 향해.. 헉헉헉.... 헉..."

이쯤 되면 내 남주는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라 체육관에서 러닝머신 위에 올라 탄 운동선수 같다.

머릿속에서는 여주가 손수건으로 남주의 땀을 닦아주며 불평한다.

"작가님. 저 고백 좀 하게 놔두시죠? 땀 닦아주기도 지쳐요."

나는 모니터 앞에서 또다시 고개를 숙인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집안일을 성실히 마치고 돌아오면문장이 오히려 더 잘 풀린다는 것이다.

빨래를 털며 떠올린 대사가 노트북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오고, 걸레질을 하며 땀을 뻘뻘 흘리다 보면 소설 속 주인공들의 숨결이 더 생생해진다.

싱크대 앞에서 국자를 돌리다 번뜩 떠오른 장면이 소설속에서 효자 노릇을 하기도 한다.


운동이 뇌에 산소를 공급하듯, 집안일은 내 글에 아이디어를 공급한다.


하루 일과를 돌아보면, 아침엔 빨래로 어깨를 달구고, 점심엔 설거지로 손목을 단련한다.

저녁엔 장보기로 전신의 근육을 혹사한 뒤, 밤에는 모니터 앞에서 남은 지구력을 쏟아붓는다.


밤이 되면 몸은 천근만근이다.

허리는 늘어지고, 팔은 맥이 풀리지만,

모니터 속에 한 장면이라도 완성돼 있으면 묘한 성취감이 찾아온다.


빨래, 설거지, 청소, 장보기, 그리고 원고까지 끝낸 날은 하루 종일 헬스장을 뛴 것보다 더 보람차다.

헬스장에서 얻는 건 근육이지만, 내 일상의 운동은 한 문장, 한 장면으로 남는다.


생각해 보면 집안일은 근력 운동, 글쓰기는 지구력 운동인것 같다. 근육은 생활 속에서, 지구력은 모니터 앞에서 길러진다. 둘이 동시에 단련되어야 결국 완주할 힘이 생긴다.


오늘도 나는 집안일이라는 근력 훈련과 원고라는 지구력 훈련을 번갈아 하며 산다.

내 글이 언젠가 결승선에 닿는 날이 온다면 그건 일상의 작은 훈련 덕분일 것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꾸준히, 그렇게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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