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미 오래전에 연애 세포를 잃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휴대폰을 켰는데,
첫 화면이 나를 평가하고 있었다.
내 검색 기록이 아주 대놓고 말하고 있었다.
"너.. 연애 세포 바닥났어."
검색창엔 이런 검색어들이 줄줄이 박혀 있었다.
"첫눈 오는 날 고백"
"남자 심쿵 멘트"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하는 행동."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민망한데,
유튜브 시청 기록엔 어젯밤 자정 즈음의 은밀한 흔적이 등장했다.
"웹소설 재질 남자 아이돌."
"남자 아이돌 심쿵."
.... 맞다.
정말 순수하게 소설 리서치용이었다.
하지만 검색 기록만 보면 누가 봐도
연애 호르몬 충전하러 밤마다 아이돌 찾아보는 연애 세포 고갈자 그 자체였다.
(사실 나도 헷갈린다. 리서치인가.. 아니면.. 취향인가.)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이건 전부 소설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반쯤 잠든 아침 정신에는 딱 한 문장이 먼저 떠올랐다.
"나.. 연애 감각이 완전히 죽었구나."
정확히 확인해 보려고 손가락을 움직이자마자
알고리즘이 갑자기 '이 사람은 연애에 굶주렸다' 모드로 폭주하고 있었다.
-고백 멘트 추천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의 행동
-연애 심리학
그리고..
-남자 아이돌 설레는 행동 모음
휴대폰은 나를
외로운 사람, 연애 심리 마니아, 남돌 팬
이렇게 오해하고 있었다.
억울했다.
난 연애 감각이 없는 게 아니라 안 쓰고 있었던 것뿐인데.
(결혼했는데 막 쓰면 안 되는 거잖아!!)
물 한 잔을 들이켜고 나서야 불편한 감정의 정체를 알았다.
내가 화난 이유는 단 하나.
내 검색창이 너무 적나라하게 나를 폭로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세세하게.
부끄러워 잠깐 움찔했지만,
다시 보니 그게 또 내 감정의 블랙박스였다.
생각보다 어제의 나는 꽤 성실하게 고민 중이었다.
그제야 조금 마음이 풀려
기록 속에 담긴 나의 하루와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저건 부끄러운 흔적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움직이게 하는 엔진의 불씨였다.
현실의 감정은 조용해졌지만
소설 속 감정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연애세포는 조금 약해졌지만
로맨스를 쓰는 세포는 매일 머리카락처럼 자란다.
생각해 보면,
연애 감각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그냥 잠시 먼지가 쌓여 있었던 것뿐이다.
한 번 털어주면 또 살아난다.
털어주기 위해서 검색도 해보고,
대사가 막히면 아이돌 쇼츠도 슬쩍 보고,
그러다 마음이 조금 풀리면 다시 앉아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 느린 움직임들이
조용히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러니 검색 기록 따위로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는 연애를 해서 설레고,
나는 연애를 쓰려고 설렌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제의 검색 기록처럼 어설프고 우스워 보이는 것들이
결국 내 이야기를 살찌우고 있었다.
그러니 괜찮다.
아마 내일 아침에도 나는 또 눈을 비비며 휴대폰을 켜겠지.
그리고 또 다른 흔적들을 보며 생각할 것이다.
"야...연애세포 아직 죽지 않았네. 살아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