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불제 감사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우리 가족은 시동을 건다.
두 집 사이에 걸린 내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일종의 품위 유지세 같은 여정이다.
잔고가 비어 가는 것보다, 내가 사랑했던 공간이 주인 없이 폐가처럼 취급받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 달에 한두 번은 기어코 옛집의 우편함을 비우러 간다.
아직도 공사 중인 도로 위에는 덤프트럭이 돌아다니고, 아스팔트가 덜 깔린 길을 달릴 때면,
옛집의 길들이 더 다정하고 매끄럽게 닦여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완성된 과거를 버리고 미완성의 미래로 이사 온 대가는 이토록 울퉁불퉁하다.
빌라 입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우편함이다.
입구에 삐죽 튀어나온 눅눅하게 찌그러진 종이 뭉치를 보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우편물이 쌓여 있다는 건 그 집이 이미 매력을 잃은 매물이라는 선언 같았다.
더 이상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집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는 누가 볼 새라 우편물을 낚아채 가방 속에 쑤셔 넣고, 빠른 걸음으로 공동현관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낯선 냉기가 느껴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내뿜던 온기로 가득했던 집이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렇게 빨리 생기를 잃을 수 있다니.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거실 한복판에 가만히 서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집이 밉지 않다.
돈을 갉아먹는 유령이라고 말은 했지만, 이곳은 내 인생의 가장 찬란한 기적들이 일어난 요람이었다.
5년 동안 소식이 없던 아이가 비로소 우리에게 찾아와 준 곳.
아이가 처음 뒤집기를 하고, 서툰 걸음마를 떼며 깔깔거리던 햇살 속 오후들이 텅 빈 거실을 채웠다.
가구는 모두 빠져나갔지만, 벽지의 미세한 얼룩마다 우리 가족의 시간이 박혀 있었다.
오후 세 시쯤이면 거실 깊숙이 들어와 아이의 발등을 비추던 따스한 햇살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좁은 빌라였지만, 우리 가족에겐 세상에서 가장 넓은 우주였다. 그 안에서 우리는 미래를 꿈꿨고,
아이의 숨소리에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했다.
그런데 이사를 오고 나니 그 따뜻했던 품이 차가운 족쇄로 변해버렸다.
내가 사랑했던 집의 구석구석은 이제 관리비와 무의미한 기본 세금의 이름으로 나를 할퀸다.
더 이상 온기가 돌지 않는 집은 급격히 노화하며 자신의 존재를 고지서에 담아 나에게 보내고 있었다.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왔다. 차에 올라타자 남편과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우리 집 괜찮아? 안 아프대?"
그 순수한 물음에 잠시 말을 잃었다.
아이에게 이 집은 팔아야 할 애물단지나 관리비를 뜯어가는 유령이 아니라, 자신을 키워준
다정한 품이었다. 안부를 물어야 할 친구 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눈에 비친 빈집은 아마도 주인을 기다리며 혼자 추위를 견디고 있는 외로운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방 속 눅눅한 우편물들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지금 내가 내는 관리비와 기름값, 그리고 길 위에서 흘려보내는 주말의 시간은,
어쩌면 그곳에서 보냈던 행복한 날들에 대한 뒤늦은 후불제 감사료일지도 모른다.
아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이 집의 안녕을 지켜주기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일지도.
내 아이가 태어난 곳, 우리 부부의 젊은 날이 담긴 이 집이 누군가에게 그저 낡은 매물로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이 애절한 마음은 주인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였다.
공사가 덜 끝나 덜컹거리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며 나는 생각한다.
이 집이 다시 누군가의 온기로 채워지는 날, 그날이 오면 비로소 나의 진짜 이사가 완성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