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보다 무서운 빈집 구독 서비스
내 통장의 숫자들이 1시간 남짓 거리의 빌라 지하 정화조로 매달 조용히 송금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랜만의 평온을 만끽하려는 찰나, 반장님의 비장한 선전포고 문자가 도착했다.
"이번 달 관리비가 입금되지 않았어요. 확인 부탁드립니다."
그 순간, 내 경제적 혈관의 한 줄기가 여전히 옛 집 밑바닥에 연결되어 있다는 지독한 현실이 내 뒤통수를 가격했다. 공동 전기료와 정화조 청소비. 실소가 터져 나왔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관리비가 0원이어야 마땅하다는 내 상식은
'공동관리'라는 집단주의적이고도 무자비한 시스템 앞에 처참히 박살 났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내가 살고 있지 않아도 건물은 늙어가고, 누군가는 그 건물을 관리하며,
그 비용은 집주인이 분담하는 것이 공동체의 당연한 규칙이라는 것을.
내가 빠졌다고 해서 복도 불을 끌 수도, 정화조를 비우지 않을 수도 없다는 상식적인 결론 앞에서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차갑고 이성적인 이해와, 한 푼이 아쉬운 지금의 내 사정 사이에는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다.
비어 있는 집 현관문 앞으로 누가 지나가든, 복도 센서들이 수 천 번을 깜박이든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반장님의 논리는 단호했다.
"공평해야 해요."
공평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폭력적으로 들릴 줄이야. 나는 내 배설물이 단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정화조의
안부를 걱정해야 하고, 내가 밟지 않는 계단의 청결 상태를 위해 기꺼이 관리비를 내야만 했다.
통장은 현재와 과거, 두 곳으로 갈라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억울함의 정점은 가스비와 수도세 고지서에 찍혔다. 사용량 '0'임에도 불구하고 기본료 숫자들을 보고 있자니, 마치 내가 거대한 공공기관의 정기 구독 서비스를 강제로 신청당한 기분이 들었다.
넷플릭스는 즐거움이라도 주지, 이 구독 서비스는 나에게 오직 결제 문자의 진동과 스트레스만을 선사할 뿐이다.
언제 집을 보러 올지 모르는 손님을 위해 나는 이 원치 않는 구독을 기꺼이 유지해야만 한다.
집을 내놓은 이상, 나는 그 상품의 전원을 24시간 켜두어야 하는 주인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토록 허망한 구독 서비스가 또 있을까....
결국 내가 지불하는 이 비용은, 집이 다시 누군가의 온기로 채워지기 전까지 치러야 하는 무거운 인내일지도
모른다. 해지 버튼이 사라진 구독 서비스에 갇힌 채, 나는 오늘도 원치 않는 회비를 결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