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면허가 빛을 보던 날
닭 한 마리가 우리 집 현관문에 도착하기 위해 시와 시를 건너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곳이 화려한 유배지라는 걸 알아차렸다.
모든 것이 도보로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야식은 손가락 몇 번 까딱하면, 거짓말 조금 보태 15분 만에 현관 앞에 도착했다. 그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래서 나는 별 의심 없이 배달 앱을 켰다. 그런데 화면에 뜬 숫자가 내 뒤통수를 때렸다.
예상 소요 시간 70분에서 90분.
순간 눈을 의심했다. 예전 동네에서는 몇 걸음만 옮기면 보이던 프랜차이즈들이 이곳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배달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내게 더 긴 기다림과 더 비싼 배달료를 요구했다.
남편이 말하던 곧 좋아질 인프라의 실체는 사실 닭 한 마리도 장거리 출장 끝에 도착하는 동네라는 뜻이었나 보다.
15분의 행복에 익숙했던 도보 생활자에게 한 시간이 넘는 기다림은 꽤 충격적이었다.
여기서는 뭐 하나 먹는 일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나는 장롱 면허를 꺼내 들었다.
식은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내가 직접 장을 봐서 만들어 먹겠다는 오기였다.
하지만 그 오기는 운전석에 앉자마자 금세 한숨으로 바뀌었다. 튼튼한 두 다리를 자부심처럼 여기며
살던 시대는 이렇게 끝났구나 싶었다.
이곳에서 차는 선택이 아니라 생활을 굴리기 위한 기본 장비였다.
핸들을 잡자 심장이 조심스럽게 속도를 올렸다.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짧은 구간조차 내게는 쉽지 않았다.
자유롭게 걷던 내가 이제는 고작 2km 떨어진 마트에 가기 위해 기력을 도로 위에 쏟아야 한다니.
길가에는 아직 이름도 붙지 않은 상가 건물들이 서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는 건 사람보다 먼지와 바람, 덤프트럭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보다 큰 차가 더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나는 자꾸만 이 동네의 리듬 속에서 한 발 비켜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곳에서 치러야 하는 비용은 대출 이자만이 아니었다.
움직이기 위해 드는 에너지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나 초보 운전자가 도로 위에서 태워버리는 긴장감은 돈으로도 환산하기 어려웠다.
장을 보러 가는 일조차 작은 결심이 필요했다. 이자만 오른 게 아니라 일상의 난이도도 함께 올라 있었다.
마트 주차장에 겨우 차를 세우고 내렸을 때, 나는 잠시 차 문을 붙들고 서 있었다. 고작 장을 보러 왔을 뿐인데 이미 하루치 용기를 다 써버린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 앞에 섰다. 그 안을 채울 음식을 구하러 가는 길이 이렇게 멀고 험할 줄은 몰랐다.
나는 조용히 핸들을 잡았던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무섭고 서툴렀지만 어쨌든 해냈다. 그 사실이 조금은 대견했고, 또 조금은 서글펐다.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슬리퍼를 끌고 나가 먹고 싶은 걸 3분 안에 사 올 수 있었던 시절이 남아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가까운 거리라는 게 얼마나 위로였는지.
화려한 유배지에서의 첫 마트 나들이는 그렇게 끝났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어쩌면 거창한 결심으로 버티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원정을 하루하루 해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