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취미생활

기초 편

by 고무줄

1. 디지털피아노

"아빠는 취미가 뭐야?"

딸의 질문에 머쓱해하며 내가 취미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음.. 독서"

사실은 아니다. 책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이지, 책을 들면 책의 무게가 나의 팔 근육을 아프게 하였고, 가장 힘들다고 하는 눈꺼풀 근육에 힘을 풀어버려 혼수상태에 진입하기 직전 상황이 된다.

주말에 책을 들려고 하는 나에게 딸은..

" 엄마, 아빠 또 자려고 해~"

일단 그럼 독서는 나의 취미를 가장한 일종의 수면 보조도구인 셈이다.


"다른 거"

딸의 요청에 머뭇거리면서

"영화감상?"

"영화를 보는 것은 좋아하는 것 같은데, 껌껌한 방에 하루 종일 들어가서 말도 안 하고 퀭한 눈으로 스크린만 보는 모든 가족이 싫어하는..."

바로 한방을 먹인다. 사실 영화는 나의 최고의 시간 때우기 방법이겠지만, 그렇다고 그 영화보기가 모든 가족들 (내가 33%를 차지하는 가족, 여자 둘, 남자 하나) 구성 비율 중에서 지속적으로 오래 했다가는 나머지 66%의 원성과 비난을 감내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내 집에서 나는 취미가 없는 혹은 취미가 희박한 사람이 되어서 한동안 딸아이의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나중에 아빠 혼자 살게 될 때 무슨 낙으로 살아갈 것인가? 혼자서 영화만 보고 술이나 마시는 (음주는 비공식으로 가장 큰 취미이나, 이제 체력이 더 이상 예전처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참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하는 한동안의 딸아이의 잔소리를 달고 살아야 했다.


시간이 잠시 흘러 취미생활을 해보아야겠고, 딸의 우려와 같이 나중에 혼자서도 심심하지 않은 취미를 만들어 봐야겠구나 하고 고민을 하던 때였다.


그러던 중 제보가 들어왔다.


딸이 아빠도 드물게 가지고 있는 거액의 자금으로 자신의 디지털피아노를 구매하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말이다. 한편으로는 열심히 용돈을 모아서 (사실여부는 확인이 필요하나..) 스스로 장만한 디지털피아노가 대견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집에서 가장 돈이 많은 친구는 딸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지나갈 무렵


"우리 딸, 그럼 그전에 있던 디지털피아노는 어떻게 할 거야?"

"폐기물 쓰레기로 버려야지."

잠시의 고민... 실로 짧은 고민이었다.

"아빠가 쓸게"

"금방 다시 버릴걸?"

"아니야"

잠시 침묵..........


그리하여, 나를 제외한 모든 집안 구성원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래된 디지털피아노가 생기는 날이 나에게도 왔다. 물론 나는 피아노 건반을 그냥 눌러볼 줄 아는 사람이고, 악보라는 것이 악기 연주에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정도의 음악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다.


예전 학창 시절에 풍금으로 연주하는 국민학교 동요를 열심히 따라 불렀고, 양희은 누님이 부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 통기타 연주에 대한 로망이 있었으며, 급기야 최근 생일에 딸이 아빠의 취미생활 도구로 구매해 준 칼림바도 있지만, 나름 안방에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한 구형 디지털피아노가 그래도 한편 내 맘에 썩 들었던 이유도 있다.

'그래, 나도 이제 멋지게 피아노를 쳐서 뮤지션이 되어야겠다.'


하지만 이러한 결정이 우리 삶에 있어서 늘 마주하는 고난의 시작이 됨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한동안 바이엘의 같은 페이지가 펴져 있다. '돌아라 돌아라'

https://www.youtube.com/watch?v=3VXXF_bolus

손가락은 여전히 마비 증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도대체 머리에서 읽어내는 음표의 위치가 손가락까지 전달되는 속도는 4/4박자 시간 내에서 삐뚤삐뚤 구현되어 바이엘 교본에서 의도하는 음악과 전혀 다른 음악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아빠는 박자를 완전히 무시하고 피아노를 쳐"

우리 딸의 매서운 혹평이 나름 공감이 되지만, 나의 머리와 손가락의 반응속도, 연습량은 늘 회피 거리를 찾고 있다.

"응, 아빠는 재즈 피아니스트야. 나름의 그루브를 살려서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거지"

딸의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였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막걸리잔을 호기롭게 들었다.

딸은 방으로 뛰어가 스마트폰을 들고 나와서 '유**의 음악캠프'에 출연한 래퍼가 부른 노래 한곡을 들려주었다.

완전히 자기 감성에 취해서 원곡을 무시한 새로운 음악의 창작... 하하... 나랑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다시금 바이엘의 기본 손가락 위치부터 해야 하나, 재활용 쓰레기 비용을 지불하고 나의 피아노를 버려야 하나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를 제외한 집안 구성원이 강하게 먼지가 쌓이는 피아노를 슬슬 괄시하는 느낌을 받고 있다.



2. 영화보기

예전에 TV가 있을 시절에 케이블 티비 및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꽤 오래전 일처럼 생각되는 이유는 지금 사는 집에 이사를 하면서 약 7년 전 애물단지 오래된 거대한 바퀴가 달린 프로젝션 TV 같은 거실의 한쪽면을 차지하는 TV를 과감하게 버리고 이사를 진행한 것이다.

당시에는 거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주말을 제외하고 없었던 터라, 이사를 진행할 시 가족 구성원들이 나를 버리지 않고 이사를 갔다는 사실에 안도를 해야 하는 시절이었다.


지금은 코로나 시국 (2021년 더운 7월)이라, 집 회사를 다람쥐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으며, 이 코로나 덕분(?)에 가정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는 우리 집안 실세의 엄중한 경고를 생각하며 조신하게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다시 돌아가서, 케이블 TV 서비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 보내는 방법은

1) 소파에 앉는다.

2) TV를 켠다.

3) 영화 서비스에 들어간다.

4) 서비스되는 영화를 아주 한참 동안 검색한다.

5) 한참을 검색하다가 졸던가, TV를 끈다.


그러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영화감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고르고 뭘 시청할까 하는 재미에 한동안의 시간이 가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또한, 추가적으로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고른 영화는 수없이 재방송과 하이라이트 등을 보아온 마블의 '철인 인간'..ㅜㅜ

무한반복을 통해서 재생되는 로다주가 날아다니는 영화가 나의 취미생활 중 하나였던 것이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면 안 지겨워?"

우리 집 실권자의 날카로운 비평에 난 늘 답변을 비슷하게 하곤 했다.

"내용이 생각이 잘 안나"


영화감상은 나에게 매우 새롭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무서운, 활달한, 잔인한, 슬픈, 감동적인, 지루한, 시끄러운, 흥미진진한, 신기한, 징그러운, 끔찍한, 졸린, 손에 땀을 쥐는, 정신없는, 재미없는, 시간 아까운, 그리고 늘 잘 생각이 안나는 그런 취미이다.


최근에 감상한 '히트'라는 영화가 있었다.

1995년작 마이클 만 감독 /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발 킬머, 애슐리 쥬드, 어린 시절의 나탈리 포드만 출연한 액션 범죄영화의 진수라고 생각되는 영화를 다시 보았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며칠 전 본 영화가 '빅히트'라고 생각이 되어 녹색창에 '빅히트'를 검색하면서 왜 영화 정보가 안 나오지 하는 건.... 머리가 나빠서이구나...ㅜㅜ)


출연 당시 알 파치노 대략 54세, 로버트 드니로 50세 주연배우의 나이가 지금의 나의 나이와 비슷하다는 신기한 점을 발견하였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버린 인물들의 사진 검색으로 인해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구나 하며,

(25년 후면 나도 이리되겠구나.. 물론 이 배우들의 잘생김은 제외 ㅜㅜ)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발 킬머

한동안 내 방에 앉아서 시청을 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우리 집 실권자가 한 마디 한다.

"그거 대여섯 번은 보지 않았어??"

"새로워"

정말 신통방통한 나의 기억력과 그 능력으로 인해서 매우 가성비가 좋은 하나의 취미생활이 펼쳐지고 있다. 질리지 않는 무엇을 볼까 하는 검색 재미와 본 영화를 수차례 다시 봐도 되는 효율성 떨어지는 기억력과 새롭게 다가오는 매번의 다른 느낌이 나의 취미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더 나이가 들어서도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취미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