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J) 엿보기

미로 악몽

by 고무줄

붉은 호박색의 불빛 속에서 축축한 통로를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다. 숨이 막히게 뛰어 보아도 늘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느낌이다. 점점 더 다가오는 알 수 없는 형체의 동물인지도 모르는 거대한 추격자에게 제발 벗어나고픈 상황이다.

버둥거리다, 미로의 모퉁이에서 알 수 없는 존재의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순간 제이(J)는 땀으로 흠뻑 젖은 채로 정신을 차린다.

매번 똑같은 꿈이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냐고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신다. 또 꿈을 꾸었냐고


제이는 힘없이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나, 그런 꿈에 관심을 기울여 줄 사람이 없다.

지극히 평범한 유년시절을 보내고 있다. 풍요롭지 않으나, 그리 궁핍하다고도 할 수 없는 다 같은 사람들이 사는 지방 중소도시의 삶이다. 제이는 동네 친구들과 뛰어다녀며 놀았다.

큰 달력을 접어 만든 딱지, 어머니에게 불쌍한 눈을 하고 얻은 잔푼으로 구멍가게에서 모은 구슬, 남들보다 열심히 바닥을 보며 주어 모은 돌멩이 -제이와 친구들에게는 훌륭한 돌치기 도구였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조악한 장난감 등

어른들이 바라보기에는 한없이 비루하고, 의미 없는 잡동사니 도구들이 제이와 친구들의 중요한 놀이도구였다.


아버지는 공무원이다.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이라, 가족은 나라와 공익 다음이다. 늘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고 사명을 다해야 한다. 반체제적인 발언은 제이의 집에서는 금기사항이었다. 아버지는 가끔 당시 불온서적을 가지고 오셔서 그 볼온서적과 행간에 있는 의미들을 분석하셨다. 나라에 누가 되는 세력과 그 서적에서 쓰인 사회에 해악이 되는 문구들을 해석하고 비통해하였다.


어머니는 친구 집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가족들과 자식들을 돌보신다. 아주 가끔 젊은 시절의 직장생활을 얘기해 주신다. 법원에서 속기사로 일하시면서 타자기로 법정 속기를 하셨다고 한다. 그때 직업의 여파로 양손의 검지가 살짝 휘어있다고 말씀해 주신다.


제이는 매우 평범한 중소도시의 평범한 친구들과 평범한 놀이를 하는 아주 평범한 소년이다. 정기적으로 호박으로 추정되는 아주 큰 미로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어느 날 제이는 친구들과 모여서 골목을 떠들썩하게 돌아다니며 구슬치기, 딱지치기, 오징어 가생 등 한바탕 재미나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들과 모여서 이번에는 무엇을 할까 하다가 갑자기 외곽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래간만에 새로운 제안에 또래들의 눈동자는 반짝거린다.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하다가 목적지와 이동 방법이 결정이 된다.

제이와 친구들은 무작정 동네 자전거포로 뛰어간다. 무모한 협상이지만, 선뜻 자전거포 아저씨 (사장님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와 자전거 대여를 약정한다.


"저녁 6시까지는 와라"

"예, 예, 예"


다들 씩씩하게 대답하고 자전거를 타고 서쪽으로 달려 나간다. 집에서 뛰어나온 제이와 친구들은 말 그대로 아무런 기약 없이 자전거를 타고 서쪽으로 달려간다.

개구리

어디에 있을지도 목적도 없는 개구리를 잡으러 가는 여정이다. 한동안을 달려가다고 보니, 이제 길은 비포장도로가 나오고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도 낮은 건물들 조차 사라지고 좌우에는 여름 즈음 여물어 가는 논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동안의 자전거 타기에 머리와 얼굴 등 온몸에는 땀이 범벅이 되고, 개구리가 있을지도 모르는 웅덩이 등을 향해서 정처 없이 자전거를 달려 나가고 있었다.


제이는 왜 친구들과 의미가 없는 개구리를 잡으러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뭔지 모르지만 벗어나고 싶은 갈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건 아닐까?

다시 친구들과 무작정 자전거 페달을 밝고 달려가다가 아뿔싸 하는 순간에 제이의 몸이 붕하고 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앗, 위험해"

"조심해"

외마디 외침이 있었으나 제이는 이미 자전거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제이는 하늘을 난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고, 친구들은 쿡쿡쿡, 깔깔깔 하며 바닥에 떨어진 제이를 보고 웃고 있었다.


논길에서 가속을 하다가 마침 물을 대어놓은 질퍽한 논바닥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제이가 얼른 몸을 일으켜 자전거와 논바닥의 진흙탕 범범에 땀으로 절은 몸으로 물끄러미 낙하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그때의 논바닥에 쓰러진 벼와 자전거와 한 몸으로 쓰러진 제이의 형상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제이와 친구들은 어슴프레 퍼지는 노을의 길이를 잘 알고 있다. 그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시계가 없었으나 제이와 친구들은 그 시간 즈음이면 어머니들의 고성에 가까운 구호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밥 먹어라"

"밥 먹으러 와라"

단지 살짝의 표현이 달랐을 뿐 그 당시 어머니들은 모두 일갈의 포효로 자식들을 품 안에 불러들이는 시간이 다가왔음을 기억하고, 제이와 친구들은 다시 동쪽으로 자전거를 달리기 시작한다.


그 시절 방향감각도 없는 어린 친구들이 단지 방향을 믿고 자전거를 달릴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 보면 도로가 단순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현실의 세계에서 도저히 방향을 못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과는 달리, 마치 꿀벌들이 미세먼지와 오염된 환경으로 꽃과 벌집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늘어나는 현상처럼, 지금과 달리, 그 당시 제이와 친구들은 자연과 감각이 주는 좌표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해는 기울어서 저녁시간을 넘기고 있었으나, 방도가 없는 제이와 친구들은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복귀를 하고 있다. 마침내 오전에 활보했던 골목에서 제이가 익숙한 철제 대문을 열어젖히며

"엄마, 나 돈 좀 줘"

어머니는 제이의 몰골을 보면서 말없이 꼬깃꼬깃 접어진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주신다.


제이와 친구들은 다시 열심히 달려 자전거 아저씨에게 자전거를 반납한다. 아저씨는 시간보다 조금 늦은 반납이었으나,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고 자전거를 받아주신다.

집에 터덜터덜 돌아온 제이는 흙투성이 옷을 갈아입고, 늘 먹던 어머니의 된장찌개를 말없이 퍼 먹고 있다.


그때의 친구들이 누구였는지, 그때 개구리를 얼마나 잡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제이는 동네의 또래 친구들과 집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서, 다른 풍경을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날 밤도 제이는 지독한 미로에서 엄청난 존재에 쫓기며 밤새도록 미로를 내달리는 악몽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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