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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적 없는 엄마의 얼굴을 찾아서 "얼굴"

눈 뜬 자는 본질을 바라보고, 눈 먼 자는 볼 수 없는 외형에 집착한다.

by CRANKWITHME


영화 “얼굴”은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40년간 사라진 얼굴도 모르는 엄마 “정영희”의 백골 사체를 찾게 된 “임동환”이 엄마의 이야기를 찾아 나가는 걸 그린 영화이다. 그러다 보니 영화는 전체적으로 꼬꼬무와 같은 스타일로 진행됐다. 평소에도 꼬꼬무나 심야괴담회와 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본인에게는 너무나도 적절한 스타일의 영화였다. 그렇게 개인의 취향으로 영화에 좀 더 쉽게 빠져들 수 있었지만, 그 외에 여러 포인트가 이 영화에 계속 몰입할 수 있게 했다.


그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로 뽑을 수 있다. 연출, 메시지, 연기. 이렇게 뽑은 세 가지는 실은 어떤 영화던 재밌기 위해 가져야 하는 요소다. 그만큼 이 영화는 정말 좋은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먼저 연출을 얘기해 보자면, 이 영화에는 특별한 연출이 있다. 바로 인터뷰다. 영화는 시작하면서 임동환의 아버지인 도장 명인 “임영규”를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 이후로도 엄마의 이야기를 찾는 과정은 당시 인터뷰를 진행한 PD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영화는 여러 인터뷰가 합쳐진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처럼 구성이 되었다. 첫 인터뷰는 엄마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연락이 끊긴 가족들로 시작되었고, 두 번째 인터뷰는 그녀와 함께 일한 직원들, 세 번째 인터뷰는 그녀의 지근거리에서 일한 그녀의 사수, 네 번째 인터뷰는 그녀의 사장, 마지막 인터뷰는 동환의 아버지 그리고 클로징 멘트는 임동환이 담당하였다. 그래서 영화는 진짜 꼬꼬무를 보는 것 같이 전개되었다. 그렇게 한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하나의 의문점을 던져주며 이를 해결할 실마리로 다음 인터뷰가 지목되는데, 이걸 연상호 감독은 과감하게 분리했고 또 의문점도 오래가지 않고 금방 해결될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이 영화만의 특별한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구성에서 영화 내내 어떤 특정한 의문점들을 가지고 있을 필요 없이 시원하게 전개된 점도 너무나도 좋았다. 의문점이 나오면 바로 다음 인터뷰에서 그 의문점을 해결했고, 그 해결의 과정도 나름 납득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다만 영화는 하나의 의문점만 끝까지 남겨둔 채 진행되었다.


그것은 바로 정영희의 외모이다. 이 영화는 영화 초반부터 외모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정영희의 외모를 거리낌 없이 비하하면서 “도대체 어떻게 생겼길래!”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 의문점은 영화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해소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두 번째 포인트인 “메시지”에 있다.


이 영화는 제목과 더불어 필터 없는 정영희의 외모에 대한 평가를 통해 외면과 내면의 아름다움과 관련된 메 시지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는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직설적이다. 연상호 감독은 수많은 작품 속에서 이처럼 단순한 주제를 직설적으로 던진 적이 없다. 여러 인물에게 다양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나오는 수많은 선택과 결과를 우리에게 보여주며 심오한 주제를 던진다. 그래서 이 영화도 끝까지 다 보고 나면 단순해 보이는 주제 안에 더 깊은 주제를 심어놓은 것을 알 수 있다. 그 주제는 마치 이스터에그처럼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다 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대상 중 대부분이 정영희의 성격이나 성질, 행동의 원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그녀의 외면이나 행동의 결과만 놓고 말한다는 것이다. 보통 그알이나 꼬꼬무를 보다 보면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말하면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주관적인 평가나 그 원인에 대한 나만의 생각 위주로 말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인터뷰 속에서 정영희의 외모만을 얘기한다. 못생겼다고. 그리고 똥걸레라고. 이것들은 모두 외면이나 결과에 해당하는 내용이지 정영희의 성격이나 원인에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


그러면서 연상호 감독은 그 당시 성폭행 피해자였던 두 번째 인터뷰 대상자인 “이진숙”을 통해 성격과 원인의 실마리를 준다. 그 실마리에 따르면 정영희는 단순히 내면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걸로 퉁 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영희는 그 시대에 넘쳐나는 비상식과 파렴치에 저항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조직의 올바른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외도를 말해야 했고, 융통성 없이 조직의 규율을 따랐으며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장의 범죄에 꿋꿋하게 잘못을 역설한 것이다.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그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좋게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자신이 무언가를 대하는 태도나 그걸 이루는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이는 아이러니하게 외형을 볼 수 없는 임영규에 의해 강조된다.


임영규에게 아름다움이란, 들어만 본 것이고 본인은 전혀 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자신의 도장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정영희를 만나면서 아름다움에 대해 알게 된다.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외형이 아니라 위에 언급한 태도와 성격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꾐에 빠져 임영규는 이를 외형으로 착각한다. 나중에 친구에 의해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상할 정도로 분노하는데, 여기에서 그 주제가 더욱 강조된다. 임영규는 태어났을 때부터 맹인인 인물로, 온갖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살았고 자신은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팔아야 하는 사람이다. 아름다움의 본질이나 성질은 모르지만 그 가치는 아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게 현재에는 여러 인터뷰와 방송을 통해 자신을 포장해 왔다. 그런 그였기에, 외형의 진실을 알게 된 순간 또다시 조롱을 당했다는 생각에 분노한 것이다. 마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시각을 얻은 것처럼 그도 자신의 아내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정, 존경심은 사라지고 창피함이 남아 분노로 변한 것이다. 결국 연상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제한적이고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며 부조리에는 또 얼마나 잘 순응하는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정영희를 통해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또한 보여준다. 그래서 인터뷰에 응한 인물은 대부분 그 비상식과 파렴치에 순응하고 잘 보이기 위해 외면을 가꾸던 사람들이었고, 정영희는 이에 맞서는 사람인 것이다. 여기에는 인터뷰를 진행한 임동환도 해당되었고, 그런 그를 보며 아빠를 닮았다는 말을 던진 “김수진” PD의 마지막 대사는 우리 중 다수에게 연상호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영화는 얼굴을 활용한 메시지와 주제를 내포하는데, 이를 배우들이 굉장히 잘 소화해 줬다. 특히 영화 도입부부터 범상치 않을 것 같다는 인상을 준 “권해효” 배우가 인상적이었으며 1인 2역의 서로 다른 연기를 보여준 “박정민” 배우 또한 지대한 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영희를 연기한 “신현빈” 배우는 목소리만으로 정영희의 특성과 성격을 잘 보여줬다. 연상호 감독이 다른 건 몰라도 연기 잘하는 배우는 꼭 사용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그러했고, 덕분에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를 한층 올려줬다. 특히 박정민 배우는 자신의 커리어에 남을만한 영화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영화 얼굴의 포인트를 살펴봤다. 어떻게 보면 이 포인트는 영화의 재미를 보장하는 것들인데, 이 영화는 이를 모자람 없이 잘 챙겼다고 볼 수 있다. 연상호 감독은 이를 통해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한층 진화했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또 그것을 본인이 꽤나 좋아하기 때문에 이를 좀 더 재밌게 풀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일단 이번 영화는 그걸 충분히 만족시켜 줬다. 다음에도 이번 영화

같으면 좋을 것 같다. “반도” 말고.


P.S. “아름다운 건 존경받고 추앙받고, 추한 건 멸시 당해.” “동환 씨랑 되게 닮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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