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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일어난 것은 인간에 의한 연쇄 작용 "오펜하이머"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by CRANKWITHME

영화 “오펜하이머”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로스 앨러모스에서 “맨해튼 프로젝트”를 수행한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크게 3부로 나눌 수 있는데, 먼저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를 맡기 전까지의 행적을 담은 1부와 원자력 핵폭탄을 만드는 내용의 2부, “스트로스” 제독과 본격적으로 마찰을 빚는 내용의 3부로 볼 수 있다. 이 3부 동안 영화 오펜하이머는 각자 다른 관람 포인트를 준다.

1부에서는 오펜하이머가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과 함께 공산주의와 연루될 수 있는 이유를 가족과 지인을 통해 보여준다. 2부에서는 오펜하이머의 야망 있는 모습과 더불어 프로젝트에 대해 싹트는 의구심을 보여주며 과연 핵폭탄이 전쟁 억제력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관객들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준다. 그리고 3부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3부는 1부와 2부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등장했던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의 청문회로 컬러와 흑백을 사용해 표현한 시간대를 포괄하고 있다. 여기서 오펜하이머가 겪는 시련을 처음에 관객은 적은 정보를 가지고 보는데 한국에서도 익숙한 내용이라 받아들이는 것에 크게 어려움이 없다. 그러면서 점점 시간이 갈수록 동위원소와 수소 폭탄 등으로 인해 스트로스 제독과 사이가 틀어지는 오펜하이머를 보여주며 3부에 대한 힌트를 계속해서 던져주는데, 그렇게 마침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3부가 시작된다.

3부에서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 제독의 마찰과 갈등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여기서 “놀란”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 다루는 소재인 시간을 사용한다. 분명 둘의 대립이 중요한 소재인데 이 둘은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대립하지 않는다. 3부의 주된 내용인 오펜하이머의 보안 인가 청문회와 스트로스 제독의 상무 장관 청문회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의 이야기이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놀란 감독은 아주 적절히 섞어서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 제독이 직접 싸우고 있는 것처럼 표현했다. 서로 다른 시간대가 서로 같은 주제끼리 각자 쪼개졌다 합쳐지면서 스토리가 원자폭탄처럼 굉장히 큰 파괴력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에 영화 “테넷”부터 같이 작업한 “루드비히 고란손” 음악 감독의 색깔이 강하게 드러났고, 영화의 긴박감을 증폭시켜 준다.

그리고 오펜하이머와 스트로스 제독을 연기한 “킬리언 머피”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가 그걸 뒷받침했다. 킬리언 머피는 오펜하이머가 겪는 시련과 함께 본인 스스로의 고뇌와 절망감,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잘 보여줬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야심가이자 전략가인 스트로스 제독의 서로 다른 면모와 오펜하이머에 대한 분노, 자격지심을 관객에게 훌륭하게 전달해 줬다.

또한 1부와 2부의 인물 간 이야기를 보여주며 만들어간 (CG를 사용하지 않고 표현해 낸) 2부의 트리니티 실험은 기억에 오래 남을 만큼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던 장면을 화면 가득히 채운 폭발 장면으로 보여주면서 폭발음은 들려주지 않았다가 모두가 방심할 타이밍에 들려주는 방식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영화의 러닝타임에 계속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히로시마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결국 맨해튼 프로젝트를 수행한 것은 오펜하이머와 수많은 과학자들이었지만 전쟁을 하고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정치인이라는 메시지 전달도 아주 잘 되었다. 이 메시지는 스트로스 제독이 계속 궁금해했던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대화로 한번 더 전달하는데, 이를 통해서 과학의 순수성과 이를 활용하는 인간의 잔혹함, 오만함 등을 재차 비추면서 영화는 마무리된다.

결국 발견이나 발명의 취지와는 별개로 과학은 늘 서로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왔다는 걸 놀란 감독은 고차원적으로 풀어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장기를 십분 활용했다. 거기에 인류애가 포함된 메시지를 담으면서 많은 곳에서 사랑받는 영화를 만들었고, 이는 오스카 수상이라는 명예로 나타났다.

P.S.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주인공은 당신이 아니라 그들이요.” “시작된 것 같아서요.” “네가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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