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무 특성이 먼저
오늘은 성과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기업의 경영진, 인사담당자, 현업 관리자, 일반 실무자 등
각자의 관점에서 본인 회사를 떠올려보시고, 얻어가시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근래 성과관리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소기업의 경영진은 OKR을 가장 많이 언급하고,
규모가 좀 있는 기업의 임원은 KPI를 요구한다. 이 두 개념은 평가 방식의 차이가 아니다.
흔히 알고 있는 OKR, MBO, BSC는 '평가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접근이고,
KPI는 '우리는 무엇이 성과이고,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에 대한 조직의 답안이다.
평가 프로세스는 결국 성과지표의 특성에 따라 달리 결정되는 것이므로
전체 성과관리체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KPI 설계는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고
직무분석에 후행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현업에서 KPI는 종종 이렇게 받아들여진다.
- 현실과 맞지 않는 수치
- 평가를 위한 형식적 평가
- 일이 아니라 KPI 측정, 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 비효율 절차
이러한 이유로 많은 조직이 KPI를 도입함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KPI는 관리 부담이 되고, 구성원에게는
불신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KPI 그 자체가 아니라, KPI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떠한 철학으로 설계했는가에
달려 있다.
이 글은 특정 이론이나 유행하는 제도를 소개하기보다, 실제 기업 현장에서 '덜 싸우고, 덜 왜곡되며, 관리가 가능한 KPI'를 만들기 위한 실무형 방법론을 정리한 내용이다.
대기업 인사담당자로 재직하던 주니어 시절, 사수에게 공부 자료로 받았던 KPI표가 있다.
'KPI 모음집'이란 이름의 자료였는데 인사팀의 KPI 중 하나로 채용 응시인원 중 채용된 인원의 비율을
%로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었다. 평가를 처음 맡았던 당시에도 의아했던 것이 이 비율이 높아야 좋은
성과라면 분모인 '응시인원'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 될테고, 그러면 회사 입장에서 의도적으로 더 많은
인재풀을 포기한다는 것인데, 앞뒤가 안맞는 것 아닌가? 생각을 했었다. 실제 직무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수치화를 위한 지표에 불과했다.
위의 예시와 같은 성과지표 설계 오류는 사실 '수치화의 함정'에 빠진 많은 조직이 겪는 이슈이다.
'인사 또는 경영임원이 시키니까', '샘플에 맞춰서 수치를 만들어오라고 하니까' 취합을 위해 현업에서
지표를 만들지만, 해당 지표가 정말 소속 부서와 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지는 갸우뚱하다.
성과지표 검토의 출발점은 조직도가 아니라 일의 성격이다.
업종과 규모, 영리/비영리를 불문하고 나는 국내 직무의 95% 이상은 다음 네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1) 성과정량형 : 성과가 숫자로 바로 드러나는 직무 (영업 / 생산 / 퍼포먼스 마케팅 등)
2) 프로젝트형 : 기간과 산출물이 정해져 있고, 산출물의 성패 또는 품질이 성과인 직무
(R&D, 컨설팅, 신사업, 신상품, 자산운용 등)
3) 고객중심형 : 외부 고객 대응과 만족이 성과인 직무 (CS, 품질관리 등)
4) 내부체계형 : 내부 프로세스 기획과 운영 중심의 직무 (재무, 회계, 인사, 총무, 구매, 자금 등)
실적이 수치로 보이는 성과정량형은 KPI 설계가 외부환경, 시장규모, 경쟁상황, 전년도 실적, 조직역량의
5개 요소를 고려해 정량 목표를 설정하고, 기간별 누적 경과를 관리하면 된다. 지표의 측정과 관리가 용이하고,
보상 연계도 명확한 편이다. 다만 결과 수치만을 볼 것이 아니라, 목표 초과달성이나 미달시 원인을 해석할 수 있는 보조지표 1~2개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외부 환경의 변화인지, 경쟁사의 이슈에 따른 반사이익인지 등)
프로젝트형 직무는 다시 두 개의 세부 유형으로 구분된다.
- 운영형 프로젝트 : 정해진 과업을 정해진 방식으로 수행하며 요구되는 창의성이 혁신형에 비해 낮음
(공정설계 변경, 고객사 요청에 따른 기존 제품 스펙 변경 및 양산화, IT유지보수, 시장조사)
- 혁신형 프로젝트 : (품질, 상품화) 실패 가능성을 전제로 한 시도 중심 과업
- 선행기술, 신사업, 신규 서비스, 신제품 개발
* 깊게 들어가면 운영형과 혁신형이 혼합된 직무도 있다. 컨설팅, 자산운용이 대표적이다.
운영형 프로젝트는 과거 사례에 대비해 처리 건수, 소요 시간, 정형화된 품질 지표 등으로 관리가 가능하다.
문제는 혁신형 프로젝트다. 이 영역에서 KPI를 잘못 설계하면 구성원은 안전한 선택만 하게 되고, 조직은 점점 보수적으로 변한다. 혁신형 프로젝트의 전제는 명확하다.
실패도 성과일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혁신형 프로젝트 직무의 KPI는 결과 성공 여부보다 다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 얼마나 적은 비용으로 여러 차례 유의미한 시도를 했는가?
- 프로젝트 중단 또는 피벗에 대한 판단 근거는 명확한가?
- 재사용 또는 조직학습이 가능한 산출물을 남겨두었는가?
이상의 기준이 충족된 실패는 성과로 인정될 수 있게끔 지표설계시 경영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무작정 실패'가 아니라 '학습 가능한 실패'를 성과로 인정하는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시도 자체가 과업인 직무에서 실패가 두려워 시도를 꺼린다면,
그 조직은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그 꺼림을 개인의 탓만으로 돌릴 수 있을까? 결국 제도의 문제이다.
고객중심형 직무는 외부 고객과의 접점이 핵심이다.
문의 유형별 대응 시간, 고객만족도, 재문의/불만 발생률, 대응 노하우의 명문화, 지식공유 등이
지표화될 수 있는 요인이고, 해당 요인들은 비교적 정형화가 용이하다.
이 유형에서 주의할 점은 개인KPI의 과도한 강화다. 가령 CS 담당자에게 '응대 건수 1일 60건 이상' 등으로 KPI를 설정하면 해당 담당자는 건수에 집중해 '하나의 통화를 빨리 끝내려 할 것이고, 고객 설명을 주의 깊게 듣지 않을 것'이다. 이는 곧 '고객이 경험하는 통화 시간이 충분하지 않고, 재문의와 고객 불만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의미한다. 개인KPI는 달성되었음에도 고객 경험은 악화될 수 있는 사례다.
따라서 고객중심형 직무는 조직KPI에 중심을 두고, 개인KPI는 고객 대응 역량과 최소 성과기준 미달 중심으로 설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재무회계, 인사총무와 같은 직무는 내부의 체계를 만들고 유지하며, 조직이 마찰 없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 직무의 성과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가 없을 때는 존재감이 없고, 문제가 생겼을 때만 주목 받는다. 바로 이 특성 때문에 내부체계형 직무는 KPI 설계가 가장 까다롭다.
이 유형에서 정량 KPI를 억지로 만들수록 갈등은 커진다. 업무의 본질과 무관한 숫자를 세기 시작하면, 구성원은 ‘일을 잘하는 것’보다 ‘지표를 맞추는 것’에 에너지를 쓰게 된다. 따라서 관점은 명확히 전환되어야 한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가 아니라 “사업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조직을 안정화했는가?”
내부체계형 KPI는 성과를 ‘증명’하는 지표가 아니라, 조직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신호등에 가깝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방식이 효과적이다.
- 사고·이슈 발생 건수 : 급여 오류, 정산 지연, 규정 미준수, 감사 지적 등
- 반복 문제 재발률 : 같은 유형의 이슈가 다시 발생하는 빈도
- 의사결정 리드타임 : 결재·승인·판단까지 걸리는 평균 시간 (리드타임은 반드시 조직KPI로 두어야 한다.)
- Before / After 비교 : 제도·프로세스 개선 전후의 차이
- 내부 고객 만족도 : 간단한 설문, 연 1회 또는 반기 1회면 충분
(같은 항목을 두고 정기 조직진단의 형태로 반영하기도 함)
이 지표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잘 돌아가면 티가 나지 않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드러난다. 내부체계형 KPI는 바로 이 특성을 활용해야 한다.
내부체계형 KPI는 직무 특성만 보고 설계하면 불완전하다.
같은 재무 또는 인사 직무라도, 경영환경과 조직의 조건에 따라 ‘잘하는 기준’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세 가지 축을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 경영환경 : 상장 준비 여부, 자산 규모의 변동, 인력 규모의 변동 등
. 가령 상장 준비 기업은 내부통제, 문서화 등이 핵심 성과가 될 수 있으나, 소규모 비상장 기업은
속도와 유연성, 최소한의 체계유지와 건별 이슈의 대응이 성과일 수 있음
- 전산화의 정도 : ERP, 그룹웨어, 구축형/외주형 SaaS 등
. 전산화 정도가 낮다면 수작업 오류 최소화, 기준 정립 자체가 성과이나 이미 전산화가 갖추어진 조직은
데이터 정확도, 운영 안정성 등이 내부체계형 직무의 성과표준이 될 수 있음
- 외주화의 정도 : 내부 프로세스 운영의 상당 부분이 외주화로 운영되는 경우에는 외주업체의 관리/통제와
용역 품질의 관리가 성과표준으로 적용되어야 함
결국 내부체계형 KPI는 무언가를 '많이' 해냈다는 증거보다, 조직이 흔들리지 않고 사업운영에
도움이 되었다는 결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의사결정의 주체인 경영진과 내부고객(종업원)의 정성판단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으나, 설계자는 그 가운데서 지표의 객관성을 제고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여담이지만 전문경영인은 내부체계형 직무의 특성과 중요성을 잘 이해하는 반면,
소규모 기업의 오너 창업자는 이 '티나지 않는 직무'의 중요성을 이해시키기가 참 어렵다.
'안살림을 책임지는 직무, 조직'으로만 이해해도 식견 있는 경영자라고 생각한다.
범용적으로 가장 실패 확률이 낮은 구조는 다음과 같다.
조직 KPI를 먼저 정의하고, 개인 KPI는 이에 연동해 설계한다.
개인 KPI만으로 성과를 관리하면 책임이 쪼개지고, 협업이 약화된다. 특히 프로젝트형·내부체계형 직무에서는 개인 KPI 단독 설계가 거의 항상 실패한다. (물론 조직이 작고, 직무별 담당자가 1~2명일 경우 구분의 실익이 없을 때도 있다.)
개인 KPI는 많을수록 관리가 어렵다.
실무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구조는 다음이다.
- 조직 KPI 연동 지표 2~3개
- 개인이 제안하는 성장·혁신 KPI 1개(관리자 합의)
이때 개인 제안 KPI는 성과 압박이 아니라 시도와 성장 관점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실패 자체로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전제가 없으면, 이 KPI는 형식적으로 변한다. Bottom-Up 방식의 개인KPI를 고안했던 이유는
소조직의 경우 성과평가와 별개로 역량평가를 위해 내부에서 역량모델링을 실시하고 관리하는 것이 관리부담이 된다. (아울러 수시 경력채용 중심으로 채용시장이 많이 변화된 시점에 역량평가를 별도 관리하는 실익이 큰지는 사실 모르겠다. 관리자 리더십 역량 정도는 육성, 진단으로 풀어내는 것이 평가보다 낫지 않을까?)
KPI의 목적은 구성원을 줄 세우는 것이 아니다.
또한 완벽한 숫자를 만드는 것도 아니다.
관리자가 판단하기 쉬운 구조를 만들고, 조직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는 것.
이 목적에 충실할 때 KPI는 비로소 실무에서 작동한다.
성과지표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다. 잘 정의된 몇 개의 지표가, 조직을 훨씬 더 건강하게 만든다.
KPI는 제도가 아니라, 조직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성과로 인정할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분명해질 때, KPI는 부담이 아니라 도구가 된다.
항상 주지하는 것이지만 평가체계의 본질은 '중간 80%의 구성원을 줄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정말 잘하는 10%와 정말 안하는 10%를 구분하고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 조직 전체를 움직이게 하기 위함'이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직무 유형별 실제KPI 도출 및 측정,관리,평가연동 사례에 대해 논해보려 한다.
(업무가 바빠 포스팅 주기가 늦어졌습니다, 실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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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HR컨설팅펌 베러컴퍼니 대표로서 필자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한 HR 제도 설계 또는 조직운영 철학에 대한 고찰입니다. 독자께서 속한 조직의 제도설계에 참고가 된다면 기쁜 일이며, 글에 소개된(될) 제도 중 직접 창안한 개념은 본문에 명시합니다. 이 경우, 창안자의 지위를 이용한 상업적 활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혹 동일한 선행 연구 자료가 있다면 공유 부탁드리며, 검토 후 필요한 부분은 겸허히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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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Lee / 문의처 : Contact@bettercompany.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