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현재 전 세계의 여권 파워 2위(미국보다 높다!)로, 부담 없이 많은 해외를 보다 잘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은, 자유주의 민주 국가를 이룩한 거에 있다고 생각한다.이거야말로 국가와 외교의 힘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기반을 남한에서 잡아가는 때는 625(육이오) 한국전쟁 이후로 시작된다. 625전쟁이 한창일 때, 당시 해병대 1기로서고인은 1951년 6월 양구 도솔산 전투에 참가했다. 당시 인민군이 점령 중이던 24개 고지를 되찾는 승리를 거뒀다. 이승만(1875∼1965) 대통령으로부터 '무적해병' 친필을 받았다.
인천상륙작전(해병대는 928서울수복에도 참여) 전에 1950년 8월 해병대 단독 작전이었던 통영상륙작전에도 참전했다. 이때 퓰리처상을 받은 종군 기자인 마거릿 히긴스(1920∼1966)가 '해병대는 귀신도 잡을 수 있는 군대(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라고 표현한 것이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말의 어원이라고.
사실 나도 훈련받았을 때나 귀가 따갑게 듣곤 하고 이따금 잊고 있었는데, 지금은 국내외 역사를 알고 이 소식을 접하니 더 와닿고 선배님께 참 감사하고 죄송스럽다.
90세에 인터뷰하신 건데도 정정하셨다. 더 돋보였던 건, 한참 조카뻘인 두 연예인에게도 존대하셨으며 덤덤히 그때의 업적을 말씀하셨지만 한국 역사에 비춰서도 크게 빛날 일들이었다는 거. 난 이런 분을 본받고 싶어 해병대에 지원했었다.
살아있던 전설 해병 선배님, 편히 가십시오. 필승!
이 글을 쓰고, 얼마 후 어느 날 밤 한잔하여 취했다는 후임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전역할 때, 생활반에서 막내였던 친구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랑 1살 차이 동생이었으니 거의 또래보다 5~6년 정도 늦게 온 셈(내가 4년 정도 늦었으니...). 잊힐만하면 이렇게 종종 연락이 오는 동생이다. 그런데 이 동생에게 오늘은, 내가 선임이고 형으로서 군에서 '삼강오륜'같은 사람이었다는 소릴 들었다.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새삼 내가 그래도 후임들에게 '악습 혹은 불필요한 꼰대 같지 않게 대하고 전역한 건가?' 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던 이날 밤이 종종 기억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