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잘 해내셨습니다! 또 함께 떠날 날을 고대하며

9~10일 차_ 카트만두/방콕, 귀국(에필로그 - 다시 여행을 꿈꾸며

9~10일 차
카트만두-> 방콕공항-> 인천공항

9박 10일 여행 중 사실상 마지막 날인 9일 차. 이 행복했던 네팔에서의 여정도 다시 올 날을 벌써 또 기약하지만, 당분간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다. 오전 11시 비행기라 공항에 늦어도 8시 반까지 도착해야 했으니, 여기서 조식을 먹고 출발하려면 7시 정도에 일어나면 되었다. 하지만 항상 한국에서도 4시 반~5시에 일어나시는 아버지는 습관이 있어서인지 6시쯤 일찍 일어나셔서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신 듯했다. 나도 6시 반 즈음 일어나 옥상, 주변으로 산책하면서 네팔의 심장인 카트만두에서 하나라도 더 보고 느끼고 싶었다. 카트만두 근교의 유적, 관광을 하면 더 좋았겠지만 '아버지와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건강하게 별 탈 없이 달성하고 있는 것만 해도 뿌듯했고 다행이었다. 이제 떠나기 전 필요 없는 짐들의 정리와 빼먹고 가는 것은 없는지 등을 신경 쓸 때였다. 곧, 짐 정리를 다 마친 우리 부자는 7시가 좀 넘어 식사를 하러 내려갔다.

깔끔한 인포메이션. 그리고 친절했던 네팔인 직원

우리 부자가 떠날 때인 9일 당일까지도 다샤인 기간이어서 호텔 지배인은 주방의 직원분들도 평소에 비해 적다고 했다. 그래서 평소처럼 조식을 많이 미리 준비해두지 않고, 요 며칠은 손님에게 주문을 받아 소량 음식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했다.

조식 메뉴를 체크하니, 그 순서대로 늦지 않게 준비해주었다
머물었던 호텔에서의 조식

이곳은 음식이 깔끔하고 괜찮게 나온다고 추천해주셨었는데, 그렇게 잘 나왔다. 서양식의 Continental 스타일 조식. 과일과 음료/ 빵과 소시지, 삶은 달걀/ 후식은 커피. 맛도 깔끔해서 좋았고 부족하면 더 달라고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참 훌륭했다. 식사 때 보통 삶은 달걀만 나와도 든든하게 먹을 수 있고, 그럼 기본은 되는 거 같다. 값만 비싸게 받고 실속이 없는 타 호텔 조식보다 내가 선호하는 타입이었다. 뭐든 잘 드시는 아버지 역시 잘 드셨고, 나도 잘 먹고 네팔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하고 가기에 꽤 괜찮았던 식사.

다음에 또 만나자. 히말라야! 덕분에 행복했다.

호텔에선 콜택시도 500R 만 받는다고 해서, 밖으로 나가 따로 흥정을 하지 않고 미리 불렀었다. 우리 부자가 올 때부터 갈 때까지 친절했던 지배인에게 고맙고 잘 있으라는 인사를 하면서, 곧 도착한 콜택시에 탑승해 카트만두 공항 국제선으로 향했다.

흔한 네팔리의 패션.jpg
타멜 거리에서 20분 만에 공항 국제선에 도착
산을 참 좋아하시고, 산과 잘 어울리시는 아부지

한국인들은 세계인 중에서도 유난히 산을 좋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서울만 해도 여러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전국 어디를 가도 가까이 산을 마주하고 함께할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산과 함께하며 자연 속에서 희로애락을 공유하곤 한다. 네팔 곳곳 역시 히말라야 산맥으로 덮여있기에 많은 네팔인이 산과 친숙하며, 이런 동질감이 한국인과 공통으로 갖는 특질일 것으로 생각한다.

11시 10분 방콕행 네팔 에어라인이 보인다. 체크인을 하며 보낼 짐을 방콕 공항으로 보냈다


짐을 바로 인천공항으로 보내려 하다가, 방콕 공항에서 직접 받아 한 번 더 정리하기로 했다. 종종 분실사고도 가끔 난다는 나라 이기도해서 짐을 직접 챙기기로 한 것. 보통 검열이 좀 세다고 하는 나라 및 도시로 들어가고 나갈 때, 짐을 직접 챙겨야 할 필요가 있다. 나라에서 허가가 안 난다느니, 뭐 때문에 불법이라느니... 갖가지 이유를 대고 물건에 손을 대고 반입을 불허하는 곳도 있으니 그런 내용은 입국, 출국 시에 미리 잘 알아봐야 한다. 짐을 잃어버리면 결국 재수가 없는 것이고, 다시 찾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네팔공항 국제선에서는 특별할 건 없었다. 그나마 와이파이가 생각보다 잘 터졌던 게 놀라웠고, 여기선 인터넷을 하거나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듯하다. 항공사 라운지 시설도 있으나, 그저 그렇다고 들었었다.

서울까지 3,960Km! 다음엔 아버지와 어디로 갈까...

출국 수속을 하러 들어가는 길에 있는 상점들 중 한 곳에 들어갔다. 루피가 조금 남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께 맘에 드는 기념품을 고르시라고 했다. 그러니 저걸 고르셨는데, 루피가 아주 소액 부족했고 최소인 1달러도 없어 값을 지불하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난 정중히 사장님으로 보이는 점원 분에게 이런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그가 웃으며 흔쾌히 조금 할인해주신 덕에 저 히말라야 열쇠고리를 살 수 있었다. 마음 씀씀이가 참 감사했다. 난 이런 네팔 사람들이 좋았고 이로써 아버지의 '행복한 추억의 선물'이 하나 더 생겨 더불어 좋았다.


여긴 공항이지만, 대체로 내가 만났던 네팔인들은 너무 심하게 혹은 기분이 나쁘게 영업하지도 않아 괜찮았다. 이런 순간들이 쌓여 아버지와 나에게 네팔의 기억으로 오랫동안 각인되는 것이다. 사장님께 감사하다고 하고, 대화를 더 이어가면서 말씀을 들어보니 그는 공항 인근에 있는 호텔도 운영하신다고 했다. 그런데 듣고 보니 네팔여행 단톡방에서 몇 분이 가서 잘 머물렀다는 후기를 들었던, 공항에 너무 늦게 도착했을 때 쉬어가기 무난했다는 그 호텔이었다. 우리 부자는 번창하시라는 덕담을 드리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출국 심사를 마치면 나오는 이곳. 앉을 공간에 콘센트도 있어 충전하기 좋다
작은 국제선 출국장. 한편에 매점이 있고, 세 번째 사진 뒤편으로 많은 사람이 앉아있다
로열네팔항공 버스 탑승 대기장

연착을 한다고 가끔 말이 나오기도 했으나, 다행히 우리가 갈 땐 연착은 없었다.

첫날 방콕행 탑승 때완 다르게, 이젠 웃는 게 자연스러워지신 아버지. 표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무난했던 기내식
네팔에서 다소 비쌌던 맥주

잠자기 1시간 전에 맥주를 다 마신 후, 도착 20분 전까지 그 취기를 빌려 꿀잠을 잤다. 사실 이건 언제 어느 곳을 가든 내가 착륙하기 전에 하는, 꿀팁의 습관이다. 행동을 하기 전 체력을 최대한 비축해두는 방법.


4~5시간여의 비행은 어느덧 방콕 공항에 다다랐고

오후 4시 즈음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에 도착. 인천공항행 비행기는 오후 11시 30분, 7시간 반 뒤에나 있었다. 캐리어 수하물을 빠르게 챙긴 후, 출국 전후로 가서 쉴 라운지에 대해 다시 한번 체크해보았더니 인천행 비행기 수속을 마친 후 들어가야 했다. 그건 오후 8시 정도부터 가능했으니 아직도 3시간 이상이나 남았었다.


다소 고된 일정을 소화하고 계셨던 아버지. 슬슬 좀 피로를 느끼실 때도 되었다. 공항 내에서 최대한 긴 의자가 있는 곳을 찾아 아버지는 쉬게 해 드리고 난 태국과 방콕, 공항 라운지 등의 정보를 찾고 사진 정리도 하고, 책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 여행을 하면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거에 익숙해진 나는 할 일을 하면서 이렇게 보냈지만, 아버지는 이런 거에 익숙하지 않으셨던 거다. 어쨌거나 지루하실 텐데 별 불평을 하지 않으신 아버지께 오히려 난 고맙기도 했다.


그러다가, 찾아낸 정보를 통해 공항 내에서 마사지를 한 시간 반 정도 미리 받고 들어가면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 금세 8시까진 2시간밖에 안 남았었다. 마침 잠에서 깨신 아버지께, 조카와 영상통화(영통)를 시켜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누나에게 톡을 보낸 후 영통을 걸었다. 조카는 태어난 지 1년도 안 돼서 너무 귀여웠다. 조카바보 삼촌 인 나도 참 예뻐하는 우리 조카.


금세 밝아지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귀여운 조카 지원이(네가 이 글에 등장하게 될 줄이야)

조카의 얼굴을 보는 거 자체가 아버지께는 큰 에너지이고 활력소였다. 통화를 마치고 아버지가 기분 좋으신 상태에서 바로 찾아둔 마사지숍으로 갔다.

전신 90분에 1,300밧(한화 5만 정도). 시내보단 비싸지만, 그래도 한국보다 절반 이상 저렴

내가 혼자 왔다면 아마 공항에선 마사지를 받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왔기에 이 값으로 풀어드리는 아버지의 피로는 훨씬 큰 가치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관절이 굳어지는 속도가 그전보다 빠르며, 마사지가 종종 필요한 거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 근육을 늘 마사지를 해주고 잘 풀어줘야 한다. 특히 트래킹을 하고 오셨기에 뭉쳤던 근육들의 변화가 있어 관절들을 잘 풀어드려야 했다.


앞 여행기에 적었던 것처럼 갈 때 마사지를 받았을 때는 뼈가 아프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번에 받을 때는 뼈가 욱신욱신하는 게 심할 정도로 조금 통증을 느꼈다. 나는 그렇게 느꼈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시원하시다면서 좋다고 잘 받으셨다.


아... 여기서 세월의 차이를 조금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도 건강관리 잘하셨지만 나 역시 더 신경 써야겠고, 근력 운동도 더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Finish drink. 마사지 후에 차나 커피를 준다

마사질 다 받고 인천행 비행기의 탑승 수속까지 마친 후 서둘러 라운지로 달려갔다. 아래의 많은 라운지 중에, 출국장과 가까운 라운지로 들어갔다.


SC 모 은행사의 <x러스마일카드>. 이용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1일 차에 정리해 둚

다양한 회사, 카드의 혜택이 제각기 다르니 체크하여 유용하게 이용하는 게 필요하다.

무난한 서양식 음식들. 가짓수가 많진 않았으며 빵과 과일이 맛있었다. 아이스크림 포함해 다 무제한

x러스마일카드를 이용했기에 본인 무료, 동반자 1인 30 USD는 익월에 청구돼 결제된다. 현지 가격을 보니 50 USD 정도 했던 거로 본 거 같은데, 그 가격으로 이용한다면 비추. 그냥 공항 내에 맛집을 구글이나 네이버 등에서 검색해 사 먹는 게 낫다. 아버지와 왔기에 편히 쉬게 해 드리면서 저녁을 사드릴 목적으로 이용했던 것. 또한 오후 11시 반에 비행기 탑승이라,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아마 한 번 정도만 식사할 것이었기에 딱이었다.


인천행 탑승 게이트 앞에서. 아들의 계획대로 잘 따라주신 아버지
조금 돌아간 여정이지만 최선이었으며, 좋았다.

그렇게 5시간 반 정도를 비행해, 오전 7시 전 9박 10일의 여정을 무사히 잘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일정상 바로 출근하셔야 했던 아버지께 미리 잘 자두시라고 했는데 다행히 잘 주무시며 오셨고, 좋은 컨디션으로 옷만 챙기고 직장으로 바로 가셨다. 홀로 남은 난 캐리어들을 챙기고 긴장을 푼 채로, 이제 남은 하나의 '마지막 과제'를 하러 공항 내 푸드코트로 갔다.





이 맛있는 한식을 먹으면서, 다시 한번 한식의 구성과 맛에 고마움을 느끼며 모든 것에 감사했다. 우리 부자가 보냈던 그 행복한 여정 안에, 그렇게 꿈꿨던 행복한 조각들이 이젠 우리의 기억 속에 뒤죽박죽 그러나 행복하게 저장이 되었다. 이건 이제 언제든지 우리 부자가 사진으로도, 영상으로도 생생하게 꺼내 추억할 수 있다. 아버지의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너무 좋은 여행이었다.


참 다행이었던 건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목표한 대로 올해 실행해 냈다는 것이다. 먼저 이걸 생각하시고 나에게 말씀해주시며, 꾸준히 운동관리를 해오신 아버지께 칭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마치기까지 도움을 주신 많은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다 소중하고 고마운 분들이고, 지금도 연락을 지속하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 이 역시 여행이 주는 값진 선물이다.


끝으로, 당시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나에게도 역시 잘했다는 칭찬의 말을 해주고 싶다.


사실, 여행으로 어디를 가는지는 이젠 이전보다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그보다 중요한 건 누구와 가느냐이며, 여기에 더해 이번 여행에서는 아버지가 원하시는 곳에 같이 가드리려고 했던 게 중요했다고 본다. 여행의 시간은 늘 우릴 기다리지 않기에, 가야 한다고 생각할 때 핑계를 대고 가야 한다. 바로 지금도! 우리의 소중한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기에.



참, 이 여행으로 또 새로운 여행의 꿈이 생겼었다! 바로 그건, 엄마까지 모시고 이번엔 엄마가 가고 싶은 여행지로 가서 셋이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엄마한테 여행 가기 좀 전에 다시 물어보겠지만 시간을 꽤 확보할 수 있다면 아메리카 대륙의 북미나 중남미가 될 것이다. 올드한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쿠바를 좋아하시지만, 다른 곳이 될 수도 있다. 엄마랑은 트레킹을 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 역사적인 유적지를 좋아하시는데 이젠, 내가 그 말동무가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그래도 지루하실 아버지를 위해선 인근의 여행지에 트레킹을 할 수 있는 곳도 생각해보겠지...


내 여행의 마지막 대륙이었던 아프리카, 그 이후 네팔에 아버지와 다녀온 이후 여행의 욕심이 더 없어졌지만 종종 이런 생각은 한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그 무엇보다 일상에서 더욱 힘을 낼 수 있게 된다!






여행이 끝난 후에도 난 가이드 Raj와 종종 페이스북으로 소통을 했는데, '19년 말에 코로나는 네팔 히말라야도 비켜가지 못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외국인들의 관광산업 유입도 아예 끊겨버린 네팔. 물론 현재 한국에서도 어려운 상황에 계신 분들도 많지만, 지금 그곳엔 식량 수급 자체가 정말 귀하고 생계 걱정의 차원이 한국과는 다소 다르다고 한다. 정말 식량이 부족해 생명의 위태로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난 직접 Raj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내용을 받고, 조금의 후원으로 마음을 보탰다. 그는 우리 부자의 인생 버킷리스트를 이루는데 최선을 다해줬었다. 결과적으로 평균 총 7일 정도 걸리는 일정을 하루 반이나 당겨 성공하는데 훌륭하게 이끌어 주었던 그에게 난, 그 소중했던 가치를 생각해 후원이라는 명목으로 다시 보답해 주고 싶었다.


페이스북으로 Raj와 소통, 카톡으로 송금을 전달할 수 있어 다행

난 누구에게 후원이나 기부를 하는 것은 더욱 신중히 한다. 이런 자금이나 물품 등은 의도한 대로 확실하게 수신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중간에 누굴 거치면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당사자와 꼭 확인을 해야 한다.

앞장서서 우리 부자의 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준 Raj

히말라야에서 가이드를 하는 일 말고는 다른 일로 수입을 채워 그의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상황임을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난 그에게 후원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Raj와 페이스북과 인스타로 종종 교류하고 있었을 때였다. 그는 쉽지 않았을, 도움의 부탁을 나에게 해주었고, 난 당시 이용했던 현지 한국 여행사의 계좌에 송금해 우리 부자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 한국과 내 상황이 좀 힘들다곤 해도, 당장 그와 그의 가족들이 식료품이 부족해 끼니를 걱정할 정도에 작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음에 한편으론 다행이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리 크진 않은 금액이지만 저 멀리 네팔의 포카라에서 고생하고 있는 Raj가 아껴서 잘 쓰고, 가족들과 함께 힘을 내서 이 시기를 잘 버텨내기를 바란다.


다시 히말라야를 보며 Raj와 함께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그때까지 꼭 그와 그의 가족들이 힘을 낼 수 있다면, 보람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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