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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러 Jun 15. 2019

브로콜리너마저 3집 [속물들] 리뷰

4집은 마흔인가


브로콜리너마저 3집 [속물들]

2019


★★★


[졸업]으로부터 무려 9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아무런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싱글을 내며 창작을 쉬지 않았고, 윤덕원은 솔로 앨범까지 발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것들이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좋아하던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진 못했다. 오히려 싱글이 하나하나 발매될 때마다, 브로콜리너마저라는 이름의 가치가 떨어지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보편적인 노래], [졸업]이 보여준 정규앨범들의 힘이 너무 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3집 [속물들]로 9년 만에 돌아온 그들은 타이틀곡 '속물들'을 통해 약간의 자기고백을 내보인다.


'겉으론 아닌 척하고 딴청을 피고 있었지만 사실은 도망치고 있었어.'

'그래 우리는 속물들. 어쩔 수 없는 겁쟁이들.'


9년 동안 자신들의 모습 또한 변할 수밖에 없었음을 말하고, '속물'이라는 직설적인 단어를 쓴다. 솔직히 이쯤 되면 연속적인 싱글 발매로 실망하던 사람들, 그리고 초창기 브로콜리너마저를 좋아하던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살짝 빡이 돌 수도 있겠다.


'아 시발! 내가 좋아하던 브너는 대놓고 자본에 찌든 상업밴드가 되었구나!'


하지만 브로콜리너마저의 힘이 완전히 빠진 건 아니다. 여전히 잔잔하면서도 명랑한 분위기를 유지해나가는 사운드, 편안하고 포근한 멜로디를 통해 차분하게 들을 만한 음악을 띄고 있다. 자기복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스타일이 가장 브로콜리너마저답다. 사운드에 파격적인 변화를 선보인다면, 그게 오히려 독이자 자충수일 것이다. 변한 것은 가사 안에 담긴 생각, 사상, 메시지이다.


1집 [보편적인 노래]가 풋풋하고 젊은 감정, 사랑, 설렘에 대해 보편적이고 담담하게 이야기한 앨범이라면, 2집 [졸업]은 점점 삶의 커다란 변화를 느끼는 청춘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담아내어 청춘들의 공감을 끌어낸 앨범이다. 3집 [속물들]은 그 청춘들이 30대 즈음이 되었을 때, 삶을 살아가며 느낄 감정들을 이야기한다. [속물들]의 화자들은 대개 [졸업]의 화자들보단 성숙하지만, 여전히 완성되진 않은 존재들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리고 주변 환경으로 인한 고민에 둘러싸인 사람들이다.


훌륭한 인트로 트랙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는 [속물들]의 전체적 감정을 대변한다. '나'는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다. '나'라는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는 자신조차 정의하지 못하고, 결국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라는 말로 복잡한 상념을 접어둔다. '속물들'은 자신을 속물이라고 솔직하게 밝히며 '여러분들도 부자 되고 싶으시죠?'라며 은근슬쩍 공감을 유도한다. 가장 대중적인 멜로디 라인을 가진 '서른'으로 30대의 전체적인 감정을 이야기한 뒤, '괜찮지 않은 일'에선 '나'는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되지 않고, 누구도 상처 주지 못할 사람이 되겠다며 다짐한다.


'혼자 살아요'는 자신에게 훈계질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두 귀를 닫는다. '가능성'은 과거를 회상하며 '그럴 수도 있었지'하고 담담하게 점점 자신에게서 멀어지고 사라지는 주변의 것들을 곱씹는다. '행복'은 행복해지기 위해 지난날들을 잊어버리려는 메시지를 내보인다. 마지막 트랙 '아름다운 사람'은 매일 아침 계속될 막막한 일상을 살아가는 '너'에게 남은 아침까지 행복하길 바란다며 소소하게 위로를 건네고 앨범을 마무리 짓는다.


결국, 브로콜리너마저는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역설적인 모습을 보인다. 시선은 젊음에서 성숙으로, 청춘에서 사회로 이동했지만, 진지하고도 명랑한 느낌의 묘한 어투로 내면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 보편적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여전한 강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브로콜리너마저를 좋아하고 사랑했던 이유, 그 본질 자체는 소멸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 숨 쉰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0대 후반에 [보편적인 노래]를, 20대에 [졸업]을 듣고 자라 어느새 30대 언저리, 혹은 30대가 된 사람들에게 [속물들]은 더욱 좋은 앨범으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보편적인 노래], [졸업]과 비교해 보았을 땐, 상대적으로 사운드의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특히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서른'은 보편적이고 대중적이지만, 참신한 사운드가 느껴지는 곡이 아니라는 점에서 진한 아쉬움을 남긴다. [졸업]의 핵심이었던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이나 '졸업'이 보여준 구성적 쾌감을 생각해보면, [속물들]은 브로콜리너마저스러운 작법과 사운드로 가득하지만, 그 이상의 감탄이나 찬사를 자아내진 않는다는 점에서 무난하게 느껴진다. 아직 [속물들]의 감성과 맞지 않은 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사실 필자는 [속물들]의 감성에 완전히 공감하지 않는다. 여전히 '앵콜요청금지'에 가슴 아파하고,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에 먹먹해하는 필자가 '속물들'에 속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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