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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러 Jun 24. 2019

술탄 오브 더 디스코 2집 [Aliens] 리뷰

디스코고 뭐고 술탄만의 음악 그 자체로


술탄 오브 더 디스코 2집 [Aliens]

2018


★★★★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태생은 그야말로 개그와 키치로 점철된 모습이었다. 머리에 터번을 쓰고, 정장을 입고 요상한 춤을 춘다. 심지어 음악도 AR로 틀어 놓는다. '여동생이 생겼어요', '요술왕자'처럼 제목부터 비범한 곡이 있는가 하면, '일요일 밤의 열기'에선 '내일 아침엔 박과장의 잔소리!'를 울부짖는다. 게다가 밴드 자체에 온갖 요상한 설정으로 가득한 스토리텔링도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 신드롬을 등에 업으며 당시 가장 유명한 인디 레이블로 거듭났던 붕가붕가레코드의 쌈마이 정수가 담긴 그룹이었다.


쌈마이 덩어리 속에서도 나잠수의 사운드메이킹과 프로듀싱은 화려하게 빛났다. 아무리 개그 그룹이어도, 기본적인 음악적 뼈대는 절대 허술하지 않았다. 그룹 이름 그대로 디스코에 충실한 사운드는 물론이고, '숱한 밤들'이라는 솔리드의 향수가 진하게 묻은 명곡도 뽑아냈다. 정말 장난스러운 프로젝트에 가까워 보였던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점점 하나의 밴드로서 완전한 구색을 갖추게 되었고, 이후 발매된 1집 [The Golden Age]는 6, 70년대 훵크, 디스코를 완벽하게 구현해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들이 정말 댄스 플로어의 왕으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술탄'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아라비안 댄스 황제 기믹, 그리고 '디스코'에 한정된 음악은 이후 그들의 창작력에 제한을 걸었다. 그들만의 재밌는 특징이자 강점이었던 것들에서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술탄 오브 더 디스코'라는 이름에서 '술탄'과 '디스코'를 과감히 희석시켰다. 온갖 설정놀이를 그만두고, 장르의 폭을 넓혀 다양한 사운드가 나올 수 있도록 재편했다. 그렇게 [The Golden Age]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소포모어 앨범, [Aliens]가 탄생했다.


더블타이틀인 '통배권'과 '사라지는 꿈'이 [Aliens]의 전체적 특징을 드러낸다. 이 앨범에는 과거의 술탄과 새로운 술탄이 공존한다. '통배권'은 익숙하고, '사라지는 꿈'은 새롭다. '통배권'은 '탱탱볼'처럼 별 의미 없지만 중독적인 가사, 그리고 훵키한 사운드로 무장한 곡이다. 그에 비해 '사라지는 꿈'은 차분하다. 블루 아이드 소울 장르에 차진 기타 리프가 강조되었다. 허심탄회한 자기고백의 정서를 가진 진중한 가사도 인상적이다.


과거와 새로움을 오가면서 앨범을 진행하는 내내, 단 한 트랙도 어색하거나 동떨어진다는 느낌이 없다. 이는 술탄 오브 더 디스코라는 밴드 자체가 디스코라는 장르에서 벗어나, 아예 술탄만의 사운드적 특징이 탄탄하게 잡혀간다는 것을 증명한다. 기존 컨셉과 장르의 국한으로 인한 필수요소들의 살점을 걷어내고, 댄서블한 기타 리프나 김간지만의 드럼 비트와 같은 멤버들의 튼실한 뼈대만 남겨놓았다.


그 증거로 1집에선 거의 모든 트랙에 배치되었던 브라스 사운드와 풍성한 코러스가 [Aliens]에선 필요할 곳에서만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 첫번째 트랙 'Playaholic'은 즐겁고 장난스런 분위기를 브라스와 코러스가 극대화한다. 반면 'Super Disco'는 디스코라는 이름답게 브라스가 들어가야만 할 것 같음에도, 오로지 술탄 멤버들만의 세션으로만 이루어져 매우 담백한 댄스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 속에서 매력적인 기타 리프와 드럼 비트는 어느 트랙이든 생기가 넘쳐, 장르적 다양함에서 오기 쉬운 트랙 간의 이질감을 없애고 술탄만의 음악으로 연결짓는다.


[Aliens]의 진가는 인터루드 트랙인 'Aliens'를 지나면서부터 확실하게 드러난다. 구성적으로나 장르적으로나 가장 새로운 R&B 트랙 '미끄럼틀', 하우스 장르에 기반을 둔 '로켓맨', 적당한 그루비함을 유지한 발라드 '어쩐지', 전체적으로 속도감 있는 구성과 베이스가 인상적이고 은근히 트로트같기도 한 '갤로퍼', 재미난 소재와 댄서블함으로 전 트랙의 사운드를 연장지으며 앨범을 마무리 짓는 '깍두기'. 전부 자연스럽게 술탄다운 음악인데, 생각해보면 이전의 술탄이 들려준 적 없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감탄스럽다.


그들이 [Aliens]를 통해 증명해낸 것은 단순히 본인들의 뛰어난 음악적 능력뿐만이 아니다. 아티스트에게 오랫동안 생명력을 불어넣고 고평가를 받게 만드는 핵심은 사운드 면에서의 독보적인 '시그니처'지, '콘셉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동안 훌륭하고 독창적인 밴드 음악을 들려주었지만, 콘셉트에 가려져 꾸준히 저평가 당했던 술탄 오브 더 디스코에게, '콘셉트'가 아닌 '시그니처'를 드러낸 [Aliens]는 그들의 훌륭한 지향점이다. 우스꽝스러운 터번, 강박적인 디스코 없이, 술탄 오브 더 디스코는 댄스 플로어의 황제 자리를 굳건하게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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