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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러 Jul 13. 2019

전기뱀장어 2집 [Fluke] 리뷰

텔레캐스터의 소년스러움


전기뱀장어 2집 [Fluke]

2016

★★★★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주역, The Strokes를 국내 리스너들의 입맛에 맞게 버무리면 전기뱀장어가 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은 익숙한 듯 낯선 사운드를 가진 밴드였다. 거친 감촉의 사운드와 무심하고 나긋한 보컬 톤은 마치 초기 검정치마를 연상케도 했지만, 그처럼 교포같진 않았다. 포스트 펑크의 허무하고 시니컬한 감성을 공유하면서도, 훨씬 더 찌질하고 솔직하고 감정적인 우리 청춘의 모습을 음악화한 것이 전기뱀장어고, [최고의 연애]였다.


다만 이러한 장점이 안타까운 선입견을 부여하기도 했는데, 물론 많은 리스너들은 [최고의 연애]를 사랑했지만, 일각에서는 The Strokes의 복제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저평가를 내리곤 했다. 자우림의 이선규, 김진만의 도움을 받아 만든 [최고의 연애] 이후로 요령이 늘어난 것인지 스트레이트한 질감이 다듬어지고, 다양한 사운드를 여러 차례 선보였음에도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았다.


밴드를 둘러싼 복합적 평가의 중심에서 등장한 소포모어 앨범 [Fluke]는 이러한 선입견에 작별을 고했다는 점에서 고평가해야 할 작품이다. [최고의 연애]와 비교해보았을 때, [Fluke]는 훨씬 정갈하고 섬세하다. [최고의 연애]는 가장 서정적인 '별똥별'을 제외하고는 거친 질감의 기타를 한껏 끌어올려 속도감 있게 휘몰아치는 트랙들로 가득하다. '화살표'나 '송곳니', '최신유행'은 초기 The Strokes 혹은 Arctic Monkeys의 레퍼런스고, 템포가 느린 '최고의 연애'에서도 날것의 질감을 유지한다. 이에 비해 [Fluke]는 The Strokes는 커녕, 날것으로 가득하다는 느낌도 없다.


'적도'의 마무리 기타 리프를 Weezer의 'Buddy Holly'에서 따오고, 여전히 날 선 기타 사운드를 내는 둥 자신들의 모태와 영원한 작별을 고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Fluke]의 전체적인 사운드와 구성면을 파고 들어가면 그곳엔 전기뱀장어만의 모던 록, 그들만의 문법이 있다.



트랙마다 확고한 특징이 있으면서도 가사 속 감성은 여전히 청춘답다. 두 타이틀곡을 살펴보면, 은근슬쩍 점심이나 먹자며 제안하는 낭만적인 연애감정을 가진 '적도'는 사랑스럽고, 담담하지만 가장 서글픈 이별의 언어를 가진 '행운을 빌어'는 아련하다. 설렘과 센치함을 오가는 청춘의 감정을 뒷받침하는 것은, 그러한 감정에 딱 맞아 떨어지는 사운드다. 그 감정을 단 하나의 '청춘'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내는 역할은 일관된 질감의 기타 사운드다. 낭만적인 곡은 더욱 낭만적으로, 슬픈 곡은 더욱 슬프게 끌어낸다. 이러한 특징은 [Fluke]를 청량하다고 느끼게 하는 핵심점이다.


장난스러운 듯한 자기고백이 많았던 [최고의 연애]에 비하면 [Fluke]는 진중한 작법이 인상적이다. 앞서 말한 '행운을 빌어'도 그렇지만, 이 점이 가장 극대화된 트랙이 '미로'다. 연애관계에 있어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쉽고 담담한 자기 고백의 말들로 풀어낸다. 이 감정선을 훌륭하게 받쳐주는 것은 역시 사운드인데, 부드러운 기타 리프로 시작해 차곡차곡 정석적으로 다른 사운드를 쌓아올리다 후반에 폭발시키고, 끝에는 베이스만 남아 잔잔하게 여운을 낸다. 발라드적인 구성에 전기뱀장어의 사운드를 얹어 새롭고 강렬한 곡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회상, 그리움의 정서가 눈에 띄게 많아진 것도 특징이다. 멤버들 자체가 청춘을 겪고 있던 [최고의 연애] 때와는 달리, [Fluke]는 시간이 지나 청춘의 시기와 멀어져 당시를 아련하게 돌아보게 된 때였기에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작법의 변화다. '트램폴린'은 '트램폴린 너를 잊을 수 없어'라며 외치고, '공룡'에선 '너의 뒷모습이 기억에 남아'라고 이야기한다. '주륵주륵주르륵'에선 '네가 떠나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네'라며 상대를 그리워하고 지난 날을 후회한다. 이러한 감정을 귀여운 비유와 의성어로 중화시키는 노련함은 덤이다.


거칠고 날 선 것들을 중화하니 청량하고 시원한 모습이 되었고, 그것이 한층 성숙해진 청춘 감성과 어우러지면서 더욱 섬세하게 보편적 심리를 건드린다. 트랙 하나하나, 가사 하나하나를 곱씹을 때마다 그에 맞는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그 속에 자신을 대입해보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Fluke]는 전기뱀장어를, 누군가의 카피가 아닌 독보적인 강점을 가진 밴드가 되게 만든 아주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들의 성공을 앨범 이름처럼 그저 후루꾸라 치부하긴 어렵다.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그들에게 주어진 '당당한 행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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