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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러 Mar 10. 2019

SURL EP [Aren't You?] 리뷰

사람들은 고독하다. 너도 그렇다.


SURL EP [Aren't You?]

2018


★★★★☆



사람들은 참 고독하다. 그런데 그 고독을 남들에게 표출하긴 싫다. 혹은, 표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그게 오늘날의 일상이다.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은 서로가 하나로 연결되어 더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수단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오히려 대인관계는 더더욱 얇고, 불투명하게 변해갔다. 자신의 사생활을 스스로 노출해야만 그 얄팍한 관계를 그나마 유지할 수 있다. 반응을 얻기 위해선 오로지 좋은 것, 남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것만을 게시해야 한다. 사소한 것 하나마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된 시대다. 덕분에 많은 사람에겐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이 종일 따라붙는다. 이러한 삶이 눈덩이를 굴리듯, 점점 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키운다. 속은 그렇게 썩어 곪아가는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하는 모순이, 당연한 상식이 되었다.


 SURL의 첫 EP [Aren't You?]는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훌륭하게 파고들었다. 앨범 제목에서부터 너 또한 그렇지 않으냐며 공감을 끌어내는 이 앨범은 세상 풍경에 대한 소소한 고찰부터 사람들의 우울하고 고독한 내면까지, 겉과 속을 넘나들며, 고독하고 피로한 현대사회를 담담하고 세련되게 그려낸다. 트랙마다 가진 메시지를 받쳐주는 전체적인 사운드 역시 지적할 만한 부분 하나 없이 훌륭하게 만들어졌다. 98년생들이 모여 결성한 밴드답게, 딱 이 나잇대의 사람들이 즐겨듣고 좋아하던 밴드 사운드인, 90년대의 얼터너티브 록과 브릿 팝의 사운드가 느껴져 모든 트랙이 친숙하게 느껴지고, 멜로디가 금방 귀에 달라붙는다.


 '9지하철'부터 재미난 관찰력을 드러낸다. 지옥철이라는 별명이 항상 따라다니는 지하철의 풍경을 직설적인 가사로 보여준다. 만원 지하철 특유의 열기, 모두가 바쁘고 정신없지만 이동하기 위해선 사람들 틈에 끼여 가만히 서 있어야 하는 특징이 만들어내는 고요한 듯 복작복작한 그 무언가를 그대로 표현한다. 빠른 속도감의 드럼 비트와 그에 걸맞은 거친 사운드의 기타가 딱 적절하게 지하철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에너지의 응축과 표출이 교차적으로 발생하는 듯한 구성 또한 지하철에 어울리는 요소다.


 열광적인 사운드가 끝나면, SURL은 점점 인간의 고독하고 우울한 내면을 탐구하는 데에 집중한다. 블루지한 사운드가 인상적인 'The Lights Behind You'는 방 안에 드러누워 고독에 대해 사색하는 모습을 그려내는 곡으로, SURL이 가지는 밴드 사운드의 스펙트럼이 그리 좁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작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트랙 '눈'은, 이 앨범 최고의 킬링트랙이다. 사운드 자체는 몽환적이고 깊은 슈게이징의 느낌이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코드는 지극히 대중적이다. 일상 속 우울의 정서가 가장 깊고 담담하게 표현된 이 트랙은, 설호승의 절제되었지만, 충분히 호소력 짙은 보컬과 깊은 질감의 연주가 맞물려 최고의 조합을 선보인다.


 내면 깊이 들어갔던 SURL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세상을 고찰한다. 리드미컬한 베이스가 인상적이고, 전체적으로는 댄서블하기까지 한 'Candy'는 사탕 발린 말만 해대며 남들에게 접근하는 교활한 사람들에게 시니컬한 시선을 던진다. 이 트랙 역시 '눈'만큼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가 인상적인 또 다른 킬링트랙이다. '눈'이 감성적이고 깊이감 있는 SURL을 보여준다면, 'Candy'는 그루비하게 놀 줄 알면서도 시니컬한 모습의 SURL을 보여준다. '9지하철'처럼 빠른 속도감을 가졌지만, 사운드는 하늘하늘하게 흩날리는 깃털과도 같은 몽롱한 드림 팝인 'Like Feathers'를 마지막으로, 앨범은 20분간의 짧은 여정을 기분 좋게 마무리한다.


 12월에 발매된 앨범이지만, 근래 신예 록밴드 중에서 가장 괴물 같은 EP일 것이라고 감히 이야기해본다. 가사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정서를 터치하고, 대중적으로 충분히 먹힐만한 트랙들도 있고, 전체적으로 짙고 몽롱한 사운드를 가져가되 그 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지루하거나 개성 없는 느낌도 전혀 들지 않는다. 게다가, 'The Lights Behind You'에서 드러나는 기타 솔로 파트만 들어봐도, 이 밴드의 연주실력이 굉장히 탄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은 밴드지만, 그래서인지 아직까진 단점을 찾기도 힘들다.


 어째, 새소년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과 같다. 젊은 감성으로 보편적 감정을 노래하는 대중적 코드의 밴드가 많아진다는 것은 참 좋은 현상이다. 안 그런가. Aren'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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