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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러 Mar 07. 2019

검정치마 3집 Part.2 [THIRSTY] 리뷰

잘 만든 작품일지라도, 사람들이 수용하지 못하면


검정치마 3집 Part.2 [THIRSTY]

2018


★★★☆


 [THIRSTY]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조휴일이 그럼 그렇지.'


 [THIRSTY]는 전작 [TEAM BABY]의 완전한 반대 축에 놓인 앨범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같지만, 그 사랑의 형태가 다르다. 이는 앨범아트에서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TEAM BABY]에서 쓰인 부모님의 결혼사진에는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둘만의 사랑만이 존재한다. 결혼은 그 사랑의 결실이나 다름없다. 여기엔 그 어떤 부정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THIRSTY]는 그 누가 봐도 부정하다. 슬픔의 감정을 드러내는 피에타를 모티브로 한 이 사진의 남성은 괴물의 면상을 가졌다. 슬픈 괴물. 충분히 말은 되지만, 어째 어울리진 않는다. 이렇게 [THIRSTY]는 앨범아트부터 그로테스크함을 드러내며 청자를 불편하게 한다.


 화자는 첫 곡 '틀린질문'에서 검게 물든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온다며,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검게 물든 것임을 확실하게 깔아두고는 쉬지도 않고 바로 다음 곡 'Lester Burnham'을 시작한다. Lester Burnham은 영화 <아메리칸 뷰티>의 주인공이다. 이 인물은 자신의 삶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이 공허감에 의해 아내를 두고 딸의 친구와의 불륜에 빠진다. 이 곡은 거친 노이즈 가득한 사운드와 함께 달리는 화끈한 록 넘버지만, 가사는 그리 화끈하진 못하다. 추악하고, 더럽고, 뻔뻔한 자기합리화가 이어진다. 자신의 마음엔 커다란 구멍이 있고, 자신은 항상 목이 마를 뿐이라고 말하지만, 불륜 행위는 오로지 자기를 꼬신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며, 자신의 죄책감은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섬'을 기점으로 화자는 점점 돌이킬 수 없게 된다. 화자는 자신이 더는 기존의 연인에게 마음이 없음을 인지한다. 자신의 연인을 '썰물이 없는 섬'으로 비유하며 천천히 흘러가던 노래는, '틀린질문'의 가사인 '내 음악이 비명이 되면 춤을 출거래요'와 정확히 일치하는 구성으로 전환된다. 비명과 함께 결국 완전히 댄서블하게 바뀐 노래는 화자의 확고해진 마음을 표현한다.


 명랑한 사운드는 이어지는 트랙 '상수역'과 '광견일기'까지 이어진다. '상수역'과 '광견일기'는 그가 불륜과 성매매에 빠진 것을 드러낸다. 이러한 행위는 당연히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인스턴트식이고 즉각적인 쾌락의 추구이다. 이러한 추구가 결국 끝에 가서 남기는 것은 또 다른 공허함이고 갈증이다. 'Bollywood'는 이러한 마음을 반영하듯, 댄서블하지만 어째 슬프다. 기쁘나 슬프나 춤을 추는 발리우드 영화처럼, 화자에겐 춤과 눈물이 뒤엉킨 혼란스런 삶에 놓여 있다. 그도 슬슬 이 혼란과 갈증을 구체적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한 회의감은 '빨간 나를'부터 이어진다. 휴일은 언제나 너의 생일이라고 말해주던 기존의 연인을 그리워하는 그는, 현재의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의 늪에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후회, 공허, 그리움과 같은 감정에 대한 단상을 늘어놓는다. '하와이 검은 모래'는 그의 지독한 합리화이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지만, 그녀에게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돌이키기엔 너무나 늦어버렸기에, 불륜에 빠진 그 삶을 여전히 살아간다. 그것을 증명하는 '맑고 묽게'의 첫 소절은 '그녀를 사랑하기에 그녀의 남자를 사랑하네'다. 어휴, 등신새끼.


 화자는 결국 괴물이 되었다. 잠든 연인을 보며 밤새도록 운 그는, 돌아갈 수 없는 옛날의 자신을 그리워하고 현재를 후회한다. 정서는 사랑스럽고 순수한 둘만의 사랑을 그린 [TEAM BABY]의 가사와 소재를 은근슬쩍 비틀면서까지 드러난다. 마지막 트랙 '피와 갈증'에서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단지 사랑에서 느끼는 감정을 충족하려는 검은 욕망이다. 이러한 욕망을 가진 자신을 반성하고 참회하는 모습 따윈 없다. 오히려 그런 자신을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징징댄다.


 '이건 내가 아니에요.'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뻔뻔함의 극치와 함께, [THIRSTY]의 이야기가 끝난다.


 자, 길고 긴 이 앨범에 담긴 이야기에 대한 해설을 마쳤다. 결국 [THIRSTY]는 <아메리칸 뷰티>를 모티브로 한, 한 남자의 뻔뻔한 사랑 이야기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에 감히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사랑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앨범의 화자가 저지른 모든 행동은 그 '사랑'의 감정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불륜을 저지르고 성매매를 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자.

 '니가 사람이니?'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동이 잘한 짓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사람인데 그런 짓을 할 수 있냐'라는 질문에 '예, 저는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순순히 인정하진 않는다. 왜 자신이 불륜 행위를 하고, 사창가에 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추잡한 자기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그 자기변명은 역겹지만, 한편으로는 애잔하기도 하다.


 누구나 순수한 사랑에 몰입하던 때가 있다. 그 사랑이 전부이며, 이 감정은 영원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불같은 감정도 결국은 타고 남은 잿더미가 되기 마련이다. 간단히 말해, 권태기. 이 시기는 연인 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당사자들은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감정이 식었음을 확인하고 헤어지기도 하고, 이 감정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인정하고 서로 복구를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그냥 정 때문에 계속 만나기도 하고… 선택지는 다양하다.


 [THIRSTY]는 그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다른 사람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기존 연인에게 숨기고 살아가는 멍청한 짓을 골랐지만, 우리 세상에 은근히 많이 존재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순수한 사랑, 그 불타는 감정을 다시 한 번, 다른 사람으로 느껴보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즉각적인 쾌락일 뿐이다. 그렇기에 채워도 채워도 완전한 충족감 따윈 느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갈증을 겪는 삶, 그것이 그들의 인생이다. 검정치마는 그러한 인생을 미화하기보단, 그저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뻔뻔하지만 감탄스런 비유적 표현, 그리고 가사에 어울리는 멋진 사운드, 구성과 함께 말이다.


 이번 앨범을 좋아하는 검정치마의 팬들에겐 참 안타깝게도, 이 앨범은 검정치마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 가장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조휴일에게 실망했다며 팬을 그만두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할 정도다.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이 박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크게 셋으로 말할 수 있다고 본다.


 첫째, 보편적인 인식 속의 검정치마와는 너무나도 다른 작품이 튀어나왔다.

 [TEAM BABY] 리뷰에 볼드체로 강조하면서까지 써놓았듯, 대중이 가장 사랑하는 검정치마의 모습은 [TEAM BABY]이다. 검정치마의 명곡 중에는 표현 수위가 강한 '강아지'나 대놓고 욕설이 나오는 'Tangled'처럼 완전히 사랑스럽진 않은 곡들도 있고, 2집의 '음악하는 여자'같은 곡은 비하적 표현으로 논란이 되었다. 하지만 어쨰 대중은 검정치마를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하는 싱어송라이터'라고 각인했고, [TEAM BABY]를 발매하면서 그 각인이 한 층 더 선명해졌다. 그런데 다음 앨범이 이 모양이니, 또다시 아름답고 달콤한 러브송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당황했을까.


 둘째, 많은 사람이 '화자 ≒ 조휴일'이라고 생각한다.

 조휴일 본인은 여러 곡을 통해 앨범의 화자가 자신의 모든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님을 강조했다. [TEAM BABY]의 '난 아니에요' 같은 곡이 바로 그가 창작활동에서 겪는 딜레마를 드러내는 곡이다. [THIRSTY]의 마지막 곡인 '피와 갈증'의 마지막 구절 또한 화자가 자신이 아니라고 슬쩍 손을 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검정치마의 곡들은 조휴일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느낀 그의 여러 감정과 생각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앨범의 서사나 예술성, 현실감 따위가 강조되는 작품일수록 대중은 유난히 창작자와 작품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THIRSTY] 또한 그 시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게다가 '달력의 빨간 날은 다 내 생일이라 하던 그녀'와 같은 가사들은 조휴일과 화자를 완전히 별개의 인물로 떼놓고 보는 일을 더욱 힘들게 한다. 때문에 '조휴일이 바람 피우고 성매매를 했네.'라고 무심코 생각해버린 것이 뇌리에 완전히 박히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작품 수용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휴일로서는 좀 억울하겠지.


 셋째, 이러한 소재에 염증이 난 사회에 내보이기엔 많이 투박한 작품이다.

 뭐가 어찌 되었든 간에 일단 페미니즘이 사회의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이 시대에서 예술계는 성장통을 겪고 있다. 거장으로 취급받던 인물의 추악한 행위를 사회의 양지로 드러내 알리는 것부터,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던 지나친 남성 중심적 시각에 대한 경계,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소비된 여성 혐오적인 표현들에 대한 지적까지 다양한 형태의 변화가 끊임없이 목격된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오히려 예술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많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게 억압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간에 팩트는, 한국 예술계는 그동안 '남성'의 시각에서 인간의 애환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여성'을 단순한 표현의 도구, 수단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고, 그걸 '마초'라는 단어로 포장했다. 명작이든 졸작이든 간에 이런 소재를 몇십 년이나 우려먹다 보니, 이젠 좀 다른 게 보고 싶어진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그렇게 이상한 현상은 아니다. 그리고 딱 하필이면 이 시기에 아주 정확하게, 우리 예술계가 지겹도록 우려먹은 골조에 맞아떨어지는 [THIRSTY]가 발매되었다. 물어뜯기기 딱 좋게 말이다.


 일단 [THIRSTY]를 두고 서로 '한남'이네, '꼴페미'네 하는 논쟁은 가치가 없다. [THIRSTY]엔 불륜과 성매매에 대한 미화의 의도가 없으므로 이를 굳이 '한남'에 '여혐'이라고 몰아세울 이유도 없고, [THIRSTY]의 소재와 표현법 자체에 불쾌함과 지겨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굳이 '꼴페미'라고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다만 대중이 본인의 의도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창작자로서 조금 더 신경을 써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조휴일의 솔직하고 투박한 가사는 언제나 매력적이지만, '천박한 계집아이' 같은 표현은 확실히 불필요하게 과하긴 했다. 아무리 해석과 판단은 대중의 몫이라 해도,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수용을 거부하는 여론이 많은 것은 창작자의 불찰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THIRSTY]는 마니아들이 딱 좋아할 만한 검정치마의 모습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순애보적 사랑을 노래하는 [TEAM BABY]에 비하면, 서사도 있고 담긴 메시지도 나름 심오한 데다가, [TEAM BABY]에서 보여주지 않은 검정치마의 '발칙함'이 시종일관 드러나는 앨범이기 때문에 마니아들과 평론가들의 침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받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다.


 이렇게 극과 극의 성격을 3집이라는 하나의 정규앨범으로 묶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Part.3이다. 정반대의 사랑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풀어낸 그가 이야기할 사랑 이야기의 그 마지막 장이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THIRSTY]를 둘러싼 논란이 완벽하게 재정리될 것이다.


 물론 그때까진 계속 싸우는 꼴 볼 수밖에 없지. 아이고 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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