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느 밤에 키타노 타케시의 <하나비>를 보았다.
좀처럼 화면에 빠져들 수가 없었다. 그러길 한 시간 남짓 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선 어느 장면에서 거대한 산이 등장했다. 세상의 모든 빛을 머금고도 고요히 자태를 드러내는 '산'의 태도에 나는 잠깐 숨이 멈칫했다. 그러고는 이내 세상에 이토록 좋은 영화가 또 어디 있겠냐라는 태도로 이야기와 하나가 되었다.
그러자 폭력과 놀이가 밤하늘의 폭죽처럼 터져 오르는 키타노 타케시의 영화는 더 능청스럽게 나를 끌어당겼고, 나는 연이어 그의 또 다른 영화인 <소나티네>를 보았다. 비슷한 방식의 놀이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색을 발하며 펼쳐졌다. 그것은 즐거웠으나 위태로웠다.
사실 한동안 나는 그의 영화들을 보지 않았다. 한국에 대하여 내뱉은 일부 발언들 때문이었다. (애국자의 기준이 무엇인지, 애국이란 어떤 연유에서 필요한지 뭐 그런 생각들에 대한 확고함은 없지만) 애국자라서 그의 영화들을 멀리하게 된 일은 아니었다.
그보단 키타노 타케시의 <키즈리턴>을 몹시 좋아했기 때문에 그에게 무언가 실망하여서 영화를 그만 보게 되었다는 편이 더 적합한 인과관계였다.
무엇에도 적응하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도는 두 청년의 이야기인 <키즈리턴>은 이십 대의 나를 번번이 위로해 주었었다. 나는 비록 실패를 하여도 또 다른 어떤 일은 아직 시작도 해보지 않았다는 영화의 엔딩을 기억하려고 들었고, 덕분에 그 장면에 흐르던 음악은 시네마천국의 OST보다 더 깊이 귓가로 스며들었다.
나는 무턱대고 키타노 타케시를 믿어버렸다. 그에 대하여 아는 사실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옳게 사유하고 옳게 행동할 거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그의 거친(한쪽으로 치우친) 발언들은 나를 당황하게 했고, 그와 나 사이에 흐르던 안락감을 뒤흔들어 놓았다. 나는 나의 영토에서 그의 영화들을 보지 않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서야 본 그의 영화들은 여전히 좋았다.
그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다소 복잡한 인물이라는 데는 수긍할 수 있었다. (이러한 타이밍에 홍상수의 영화를 언급하는 게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홍상수의 <탑>에 등장하는 병수만큼이나 층층이 다른 면모가 있는 인물이었다. 선뜻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창조해 낸 인물들이 더 표면에 가까울 정도로 매끄러웠다. 나는 단지 한 사람의 관람객으로써 그가 그려낸 세상을 지켜보았고, 미감이 흐르는 장면에 잠시 머물렀다. 마치 강아지의 복슬복슬한 털이라면 모든 게 다 누그러지는 양.
(그것은 나의 인생에서 반복된 화해의 방식이기도 했다)
열두 살의 어느 하굣길이었다.
무언가 별일이 일어 난 건 아니지만, 어깨에 둘러맨 가방 끝이 나를 땅 속으로 잡아끄는듯한 무거운 날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는데도 그랬다.
그저 새까만 얼굴의 남자 담임 선생님이 골방에 여자 아이를 딱 한 명씩만 불러냈고(다시 말하지만 별일은 없었다. 그는 골방 문을 닫고 단둘이 있는 일을 즐겼다. 그저 가만히 웃기만 했는데, 나는 그 미소가 징그러웠다), 어떤 아이 하나가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책상에 앉아서 수업을 듣고, 혼자서 운동장을 배회했을 뿐이었다.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는데, 솔직히 그 아이에게서는 냄새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무형의 인간처럼 존재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쪽이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슬그머니 옆에 앉아도 그 아이는 말이 없었었다.
골방 안에 있던 다른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혼자이던 아이에게 또 다른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런 것들은 전반적으로 불투명했고, 나는 번번이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렇게 이상향에 미치지 못하는 6학년 1반의 교실에서 홀연히 빠져나왔다.
하늘은 맑고 투명했다.
색채라기보다는 물성이었고, 물성이라기보다는 드넓은 무엇 같았다.
몸이 붕 떠오른 듯한 환각 속에서 높은 곳을 우러러보고 있는데 캔디바 아이스크림 같은 연한 하늘빛 사이로 해가 저물었다. 바탕에 알맞게 호응하는 듯한 연하디 연한 오렌지 색이었다. 한도 끝도 없이 멀리 퍼져나가는 온기를 쫓다 보니 공간은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팽창해 버렸다. 그러자 눈 안으로 담을 수 없는 것들이 한 번에 쏟아져 내렸다. 부인할 수 없는 아름다운 형상은, 그러한 세계가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할 거라는 확신을 심어버렸다. 나는 넋을 놓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중얼거렸다. ‘다 잘될 거야.'
아이의 음성으로 희망을 내뱉었다.
그 후, 누군가 나에게 좋아하는 색을 물을 때면 나는 그날의 하늘이 떠올랐다.
그 하늘은 어디론가 사라지지 않았다.
대체로 저녁 무렵이면 찰나의 빛을 발하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그것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였다. 바닥만 보며 쓸쓸히 걷는 날 들도 많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껴도 딱히 말해볼 수가 없었다. 말없이 걷기만 했다. 동네를 걷고 계단을 걸었다(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오르기도 했다).
힘없는 발길로 집으로 향하던 몇 해전의 어느 하루였다.
계단실을 걷는데, 좁고 좁은 창을 통해 빛이 들이닥쳤다. 계단참에 네모난 석양빛이 진하게 고정되었다. 그것은 움직임이 없는 완고한 그림처럼 한동안 나를 막아섰다. 너무 짙고 따스한 오렌지색이라서 계단 실의 회색깔이 무안해졌다. 나의 마음이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는 문득 그 하늘을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그러자 무언가가 일렁였다.
다급히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가 주저앉아버렸다. 최대한 냉정히 붙잡아둔 냉기가 몸 밖으로 빠져나올 듯 위태로웠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욕설이든 눈물이든 후회이든 상처이든 상관없었다. 아주 멀리에서 온 이상주의자가 빛을 내어주면 모든 걸 꺼내어 찬찬히 들여다보아도 좋을 것만 같았다. 그냥 기분이 그랬다. 빗장을 풀고서 마음의 음영과 슬픔의 무게를 가늠해 보아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는 잠시 그를 쫓아 말해보아도 좋을 것만 같았다. 다 잘 될 거라며, 울먹이며 웃어 보이며, 눈앞에 펼쳐진 찰나의 아름다운 세상을 눈에 꾹 담아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