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ythingbut Jan 19. 2024

그날의 여정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주섬주섬 목욕가방을 챙겼다.


방수가 되는 핫 핑크 수영가방에 샴푸와 트리트먼트, 목욕타월과 바디 샴푸 그리고 세안제를 챙겨 넣었다. 가방이 깨끗해지기 위한 도움을 주는 것들로 반쯤 채워졌다. 집밖으로 나가니 공기가 차가웠다. 손끝과 코끝이 시렸다. 역시나 겨울은 길다. 추위가 가셨을까 하고 빼꼼 고개를 내밀어보아도 여전히 겨울 안에 머물게 된다.  






평일의 찜질방은 한산했다.


아주 수월하게 방 하나를 독차지할 수 있었다. 한두 명 정도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온도가 팔구십 도를 웃도는 공기에 이내 나와 열기만 남게 된다. 


하지만 나 역시 못 견디고 밖으로 나간다. 완전히 녹다운되어서 흐물거리는 연체동물이 되기 전에 열기로부터 몸을 꺼내온다. 뜨거운 공기의 넘나들기를 한 세 번. 은근히 배가 고파온다. 나는 탕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다들 탕에 모여있었는지, 수증기 같은 것 사이로 사람들은 맨몸이 보인다. 살색들이 눈 한가득이다. 


액체처럼 물 안으로 스며들듯 몸을 담그니 따듯했다. 그것은 공기와 달리 아주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잠깐 앉았다 일어났는데 몸에 줄무늬가 생긴다. 반인반수처럼 반은 불그스름하다. 


냉수를 뿌려주니 다시 한 톤의 피부가 된다. 다시 하나의 무엇이 된 모양이다. 시원한 물 한 잔을 들이켠 기분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모래시계가 있는 습식 사우나도 건식 사우나도 들어간다. 빈둥빈둥 이벤트 탕에 들어간다. 자색 고구마처럼 와인빛이 감돈다.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열탕에도 몸을 담근다. 마치 목욕탕의 온기를 모조리 흡수해 버리려는 동물처럼 양껏 욕심을 낸다. 


하지만 배가 고프다. 나는 마침내 지쳐서 온탕의 테두리에 걸터앉는다. 


물기로 가득한, 목욕탕의 분위기에 취해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든다. 가령 나랑 싸우느라 수고가 많은 남편. 제법 어른스러운 마음이다. 별 일도 아닌 걸로 투닥거리고, 한 참을 토라져 있느라 고생스럽기는 둘 다 마찬가지라는 거품 같은 생각들이 보송 피어오른다.


그런데 지나치게 느슨해진 탓에 문득 오이도가 떠올라버렸다. 


여행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야심 차게 홀로 떠났던 곳이다. 


대학교 때였다. 그날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갑자기 어디로든 가버리고 싶었다. 기껏 정해진 목적지가 오이도였다. 파란색 호선의 맨 끝. 나는 멀리 떠나는 사람처럼 카메라도 돈도 챙겨서 집을 나왔다. 늘 타던 사호선에 올라타 종착역까지 내리지 않았다.


가는 내내 심장이 뛰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별 볼일이 없었다. 물때를 확인하지 않는 바다는 질퍽한 갯벌을 드러냈고, 커피를 팔지 않게 생기지 않은 곳에서 커피를 팔았다. 나는 그냥 돌아갈 수가 없어서 관광지의 기념품 가게에 들르는 식으로 요상한 장소에 들어가 맛없는 음료를 마셨다.


도달하는 곳보단 떠난다는 일 자체가 중요했는지도 모른다. 


공항이 기억에 남은 걸 보면, 다른 장소들도 그런 식이었다.  


일본도, 중국도, 영국도, 미국도, 이탈리아도, 싱가포르도, 스페인도, 공항의 풍경이 마음에 새겨진다. 오이도보다는 근사하고 먼 곳이었지만, 그래도 공항을 잊지 않게 된다. 






그곳은 떠나기 위한 장소였다. 


그런 일을 체계적으로 진행하는 곳이 공항이었다. 여타의 터미널들에서 떠나는 일을 도와주었지만, 나에게 유독 선명한 것은 국제선이 공항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들로 가득한 공기가 있어야만 했다. 


그곳에는 들리는 말들이 없었다(한참 외국에 살며 영어로 말을 했으니 영어를 모르지는 않지만 모국어가 아닌 언어란 귓가에 긴장을 주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다 - 흥미롭게도, 적당히 마음을 먹으면 무엇도 듣지 않을 있었다). 


나는 그저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 안내도를 따라서 움직인다. 


티켓에 명시된 카운터를 찾아가, 짐을 맡기고 유유히 출국장을 통과한다. 신발을 벗거나 짐을 일일이 풀어헤치는 일들은 번거롭기 그지없지만, 이내 가벼워진 양손을 자각하며 떠나는 일이 이토록 쉬었나 하고 반문하게 된다.


전광판을 찾는다. 구체적으론, 비행기들과 게이트들의 정보가 나란히 균형을 이룬 문자들을 찾는다. 가만 보니, 그것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지명들이 빼곡하다. 나는 남미의 어느 국가들도 아프리카도, 북유럽도 가본 적이 없다. 만일 오이도와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어디로든 다시 떠날 수 있는 설렘이 샘솟는다.


드디어 게이트에 도착한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이들이 군데군데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 너머로는 통유리창이 보였고, 그리고 그 너머로는 비행기들이 보였다. 비행-물체들은 약속이라도 한 양 굼뜨다. 아주 느릿하게 게이트로 향해온다.


기다림 속으로 하나둘 인물들이 늘어난다.


불공평한 이유로 히잡을 쓴 여인들이 보이고, 히잡을 쓰고도 천진난만하게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꼬불꼬불한 머리칼을 한 두 가닥 늘어뜨린 랍비도 보인다. 몸의 비율이 유난히 수려한 흑인들도, 도자기처럼 얼굴이 뽀얀 아이들도 보인다. 


각기 다른 외양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각기 다른 높낮이의 언어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에게 무용했다. 수세월에 걸쳐 형성된 규칙들로 의미를 형성하는 말들이 나에게는 도통 들리지 않는다. 무의미한 목소리들이 백색소음처럼 백그라운드를 이룰 뿐이다.


공항의 음성들을 흥얼거리다 보면, 돌연 나의 것들이 선명해진다. 나의 목적가 분명해진다. 나는 오직 나에게만 부합되는 의미들을 되짚는다. 평소라면 움츠려 들었을 단어들이 문장을 이루며 윤곽을 드러내는 통에 괜히 마음이 들썩인다. 춤을 추듯 공상을 쫓으면 속마음과 일치된 말들이 공항의 높다란 천장까지 닿는다. 


아이인지 어른인지 구분이 안된다는 동양인의 외양이 타인의 관심을 끌었는지, 종종 어떤 말들이 영어로 들려오기도 하지만 그다지 난감하지가 않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안부나 목적지를 묻고, 때에 따라서는 아주 간단한 영어로만 융통되는 웃음이나, 기다림에 대한 고충을 나눈다. 그러고는 정확한 시곗바늘처럼 제 자신으로 돌아와 나만의 시간에 머문다. 


흔치 않은 감각이다. 최소한의 말들로 가능한 멀리에 이르게 하는 진귀함이 공항의 사운드였다.  








작가의 이전글 아름답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