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

습작

by 최광래

"누구야? 누가 양파를 선반에 그대로 뒀어!"


외침으로 시작하는 주방의 하루, 이곳에서 고요함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일한 지도 벌써 일 년째, 정확히 말하면 열한 달이지만 일 년이 지나니 어느새 나는 이 년 차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달라진 건 없다. 한 명의 오너 셰프와 두 명의 셰프, 그리고 여섯 명의 조리사들이 함께하는 주방에서 나는 최하층을 담당하고 있다. 선반에 양파를 둔 것은 공교롭게도 나였다. 오너 셰프의 잔소리가 끝나면 셰프의 핀잔이 남아있다. 칼소리가 차갑게 부딪히는 주방에서 나는 시선을 아래로 뒀다. 선반에 놓여있는 양파를 보며 생각했다. '양파 한 상자가 이 만원쯤 하는데. 나는 칠천 원 정도 하는구나. 양파님께 무례했습니다. 다시는 선반에 두지 않겠습니다.' 차갑게 다짐했다.


어려서부터 요리가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어버이날 숙제로 부모님께 요리를 해 드리라고 했는데, 그때 나는 라면밖에 끓이지 못했다. 그래서 더 최선을 다했다. 칼질 한 번 해본 적 없지만, 스프를 먼저 넣고, 물은 계량컵으로 550ml를 정확히 넣고 센 불에 3분 20초라는 세밀한 불조절까지. 중간중간 면을 들어 식히는 것까지 방법을 총동원했다. 그렇게 끓여낸 라면은 꽤나 먹음직스러웠고 부모님은 감격에 겨워 라면을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드셨다. 설거지까지 하는 것이 숙제였으나,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이 비워진 그릇을 보며 처음으로 '요리의 기쁨'을 맛봤다. 그렇게 맛 본 기쁨은 어느 맛보다 달콤했다. 그날만큼은 초콜릿을 먹지 않아도 차고 넘치는 달콤함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붙잡고 칼질을 배웠다. 매일 시장을 따라나서며 좋은 재료와 손질법에 대해서 배웠다.


다행히도 요리에 재능이 있었다. 정확한 계량과 세밀한 손재주는 요리에 도움이 됐다. 게다가 겁 없는 과감함도 재료를 손질할 때 필요한 능력이었다. 센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까지 비벼내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까다로운 입맛도 한몫했다. 재료를 정확히 구분해내거나, 장금이처럼 홍시를 알아맞히진 못해도 필요한 재료와 부족한 재료를 맞출 수준은 됐다. 무뚝뚝한 태도는 요리에 있어 장점이 됐다. 때론 열정적이지 않은 것이 더 필요한 순간이 오는데, 주방에서의 삶이 그랬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요리사라는 꿈을 키웠다.


요리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으레 가는 조리고등학교 입시는 준비하지 못했다. 집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난생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정말로 미안하다고. 그렇지만 나는 요리에 대한 진심이 부족한 내 탓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알바를 해서라도 다닐 수 있을 테고, 정 어렵다면 장학 제도를 알아봤어도 되는 것이었다. 나는 진심이 부족한 게 맞았다. 그렇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갔지만 저녁에는 홀로 요리책을 읽고 자투리 재료들로 솜씨를 다지며 시간을 보냈다. 손에는 점점 흉터가 늘어났고, 기름에 탄 화상 자국은 두터워졌다.


대학은 당연히 가지 않았기에 조리사라는 타이틀을 바로 맛볼 수는 없었다. 유학과 조리원 출신의 조리사들이 가득한 이 세계에서 내가 살아남는 방법은 철저히 낮은 자세였다.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로 주방 일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접시를 닦다 남는 시간에 양파를 손질할 수 있었다. 하루에 몇 백 킬로그램이 되는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는 일도 내 차지였다. 어깨에 짐을 올리기 위해 주로 나는 허리를 굽히고 다녔다. 다행히 나는 낮은 자세가 익숙한 사람이었다.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무릎 꿇을 수 있었다. 그저 낮은 터널을 넘기 위한 낮음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매일을 쭈그려있었다. 그렇지만 고개만큼은 꿋꿋이 들고 다녔다. 허리는 낮아도 땅을 보지는 않기로. 지나가면 광명이 보인다는 믿음이 있었다. 터널이란 놈이 그렇지 않았나. 탈출했을 때의 쾌감이 더 크려면 지금의 어두움을 잘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손가락이 잘릴 뻔 한 일도, 고추기름이 눈에 튀어 실명할 뻔한 일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터널에도 분명 끝이 있으니까. 두 팔에서 칼과 도마를 놓지만 않으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안타깝게도 양파를 선반에 둔 날이 하필 위생 검문 날이었을 뿐이다. 하필 그 양파에 죽은 날벌레가 있었을 뿐이었다. 하필이면 그 양파를 가져온 곳이 야외 창고였을 뿐이다. 하필이면 야외 창고에서 바퀴벌레 시체가 나왔을 뿐이었다. 하필이면 하필이면, 사장님은 웃으며 내게 퇴직금을 내밀었다. 사실은 십일 개월이라 줄 필요 없는데 챙겨준다면서.


아침부터 한 끼도 먹지 못해서 주린 배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선반을 열어 라면을 끓였다. 요리를 한다는 놈이 집에는 고작 라면뿐인 게 우스웠다. 집에서 밥을 먹을 시간이 없었을 뿐이었다. 하루에 11시간을 서서 근무했을 뿐이고, 매일 12시에 퇴근하고 다음날 6시에 출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뿐이다. 550ml의 3분 20초짜리 라면, 나의 라면 공식은 변하지 않았지만 오늘은 너무나도 짜고 짜고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