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
PC방 카운터에 앉아 정산을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울리는 게임의 효과음과 사람들의 욕설, 웃음소리 같은 소음 때문에 카운터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자리에 앉으면 좌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어려웠다. 방음이 잘 되어있었고 유리창이 있긴 하지만 담배연기가 쌓여 흐린 시야만 제공하고 있었다. 오른편 좌석에서 작은 외침이 들려왔다. “놔라! 진짜.” 또렷하고 높은 목소리, 함께 일하는 해진의 목소리였다. 해진은 청소를 하기 위해 끌차를 끌고 오른편 좌석을 청소하러 갔었다. 키보드를 쾅, 쾅 털어대는 소리가 멈췄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자리에 서서 어떤 남자와 대치하고 있었다. 담배 연기가 가득 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장면이 정확하지 않았기에, 가만히 앉아서 생각했다. ‘친구인가?’ 해진은 넉살 좋고 친근한 성격이라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말을 걸어준 것도 해진이었다. 여자아이면서도 형님, 형님 거리면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성격 덕분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PC방에 찾아오는 대부분의 단골들도 그런 식으로 해진과 친해진 사이가 많았다. 해진은 그녀가 가진 특유의 친근감으로 손님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장난을 치는 모습도 자주 보였다. “놔요!”라는 분명한 외침을 들었음에도 하던 정산을 멈추지 않고 생각한 이유였다. ‘장난치는 중이겠지, 워낙 친한 사람이 많으니까.’ 동전을 달그락거리며 현금 잔고를 맞추는 데 집중했다.
“신고한다?” 조금 더 분명하게 들린 외침에 고개를 빼꼼 내밀어 오른편 좌석을 쳐다봤다. 막혀 있는 유리창이 답답해서 고개를 내밀어 봐도 구조상 좌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카운터에서 일어나서 좌석으로 향해야 하나 고민했다. 결국 정산을 포기하고 꺼내 두었던 현금을 정리했다. 포스기에 현금을 채워 넣었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지난번에 카운터에 손을 뻗어서 현금을 꺼내 간 절도범이 생각났다. 혹시 모르는 마음에 열쇠를 찾아 잠금장치를 걸어 두었다. 그 사이 손님이 올지도 모르니 ‘잠시 기다려주세요.’라고 써진 팻말을 꺼내 앞에 두었다. CCTV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한 뒤에야 카운터 왼쪽에 있는 칸막이 문을 열고 해진이 있는 좌석으로 향할 수 있었다. 자리에 도착했을 때. 손님은 해진의 오른팔을 잡고 있었다. 해진은 작은 체구로 팔을 뿌리치고 돌아서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완력 차이 때문에 그렇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깜짝 놀라 그녀를 불렀다. “해진아.” 두 사람이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팔목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했다. 그냥 손님일까, 아니면 애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알기로 해진은 애인이 없었다. 일단은 불렀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손님은 잠깐 손에 힘을 풀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해진은 팔을 뿌리쳤고 빠른 걸음으로 카운터로 향했다. 손님은 자세를 바로잡고 일어서서 해진을 따라가려 했다. 카운터 앞에서 손님을 저지했다. “카운터에는 직원만 들어갈 수 있어서요.” 손님의 표정에는 당황과 분노가 섞여있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손님은 자리로 돌아갔고 나도 카운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칸막이를 열고 카운터로 돌아오니 해진이 없었다. 카운터 뒤편에 있는 조리실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조리실은 사장이 위생에 대한 자신감 표출을 위해 오픈형 주방을 따라한 형태였다. 불가능한 구조였지만 무리한 욕심으로 겨우 반쯤 손님들에게 보이고 있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안쪽에는 어쩔 수 없이 보이지 않는 공간이 있었는데, 어둡고 꽉 막힌 공간이라 별 다른 용도 없이 비품 창고로 쓰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의자를 설치해두고 가끔씩 휴식을 취하곤 했다. CCTV가 있었지만 사장도 그 정도 휴식은 인정해줬다. 하루 종일 청소를 하고 매캐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일을 하니까. 하지만 카운터에 앉기 시작한 이후로는 잘 가지 않았다. 이미 하루 종일 앉아있기도 했고, 카운터 업무는 딱히 휴식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해진은 그곳에 앉아 옅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해진이 먼저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청소를 하러 다시 나가려는 그녀에게 카운터를 맡기고 오른편 좌석으로 향했다. 청소를 하다 만 좌석에서 손걸레를 집다가 아까 그 손님과 눈이 마주쳤다. 해진이 아니어서 아쉽다는 눈빛이었다. 손걸레를 바르게 개고 키보드를 쾅, 쾅 두 번 털었다. 게임 소리부터,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소음이 많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청소를 이어나갔다. 오랜만에 끌차를 끌고 280석이나 되는 좌석 순례를 한 바퀴 돌았다. 좌석 순례, 이어폰을 끼고 아무 말도 없이 꼬박 한 시간을 청소하는 모습을 두고 직원들끼리 붙인 이름이었다. 몇 주 만에 자리 청소를 했더니 몸이 오히려 개운했다. 그간 카운터에 너무 오래 앉아있던 탓이었다. 기지개를 켜며 가끔씩은 카운터 밖에서 청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