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대학생 1편

베테랑 취준생

by 최광래

서울 소재 대학에 10년째 다니고 있는 대학생 K. 건물은 없지만 빚도 없는 부모님 밑에서 월 50만원씩 용돈을 받으며 살고 있다. 이전에 인턴을 할 때는 용돈을 받지 않았기에, 취업 준비 기간에는 용돈을 받기로 했다.


인턴만 세 번, 그 중 대기업에서 인턴을 한 적도 있다. 정직원 전환 제의도 받았었는데. 더 큰 기업을 준비하고 있어서 거절했었다. 안타깝게도, 그 기업은 지금 국내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 취업 준비 스터디에서는 모임장을 맡아 친구들의 자소서를 봐주기도, 입사 전략을 점검하기도 했다.


사실 처음부터 10년간 대학을 다닐 생각은 아니었다. 졸업유예 두 번에, 추가학기 두 번. 취업 준비 기간에 맞춰 늘어난 기한이다. 대학생일 때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이 있다. 모 공공기관은 대학생만 인턴으로 뽑는다. 대학생은 학교 시설과 오피스365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 국비 지원 사업은 대학생들에게만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유예생이라는 핑계는 구직 중에도 도움이 된다.

"졸업 후에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아, 저 아직 학교 다니고 있습니다."

K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안했지만 학생이라서. 근데 요즘은 조금 불안하다. 면접관들이 유예 제도에 대해서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굳이 묻지는 않는 것 같은데. 그건 아마도 취업 환경이 어렵다는 것을 면접관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겠다.


K는 매일 오전에 홍대에서 스터디를 하고 있다. 무인 스터디 카페에서는 매주 예약을 진행하다 보니, 사장님과 개인 톡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자리에 앉자 하나 둘 스터디원이 모였고 가볍게 인사를 주고 받고는 스터디를 시작했다.


최근 스터디에서는 K를 중심으로 피드백 하는 시간이 늘었다. 목적, 스펙, 진로에 따라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소서와 모의 면접을 피드백한다.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도 잠시, K는 어느새 회초리만 안 들었을 뿐 스터디의 선생님이 된다. K가 하는 말은 법이 되고 규칙이 된다. 표정을 보니 싫지는 않은 모습이다.


스터디가 끝나고 스터디원중 한 명이 상담을 요청했다. 자소서의 구성과 문장, 앞으로 하면 좋을 일들에 대해 물어봤다. K는 지식을 총동원 해서 전략을 구상했다. 그 중 반은 자신이 계획했던 것들이다. 과거에 이뤘던 것도 있고, 앞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들이 있다.


남은 시간은 하소연의 시간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스터디원의 하소연을 반 쯤 흘러넘겼다. 흔한 연애고민, 부모님의 압박, 생활비 문제까지 K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인은 없었고, 누굴 만날 시기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취업 시장을 모른다며 싸워둔 지 오래라서 딱히 별 말이 없으셨고, 용돈도 넘치진 않지만 부족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공감되지 않는 끄덕임을 가득 채운 채 가만히 얼음만 씹는 시간이 늘어났다. 상대도 알아차린 걸까, 어색한 침묵이 약간 돌고 자리가 금방 마무리됐다.


같이 있던 스터디원은 떠드느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커피를 텀블러에 담았다. K는 귀에 물이 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몇번 고개를 흔들고는 길을 나섰다.


집으로 가는 광역버스 대기줄에 섰다. 주머니에서 유선 이어폰을 꺼낸다. 아직은 무선 이어폰을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면접왕의 최신 영상이 업로드됐다. 재생을 누르고 자연스럽게 댓글을 본다. 수많은 합격 후기들. 부러움도 사라진 지 오래, 이제는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버스에 오르고 난방 때문에 산소가 부족해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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