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혼자가 혼자에게를 읽고
비뚤어진 나는 행복에 대한 정의를 뒤틀고 싶었던 적이 있다. 고통이 나쁜 것일까, 폭력이 나쁜 것일까. 피해를 주는 게 왜 나쁜 것일까. 침범이 왜 나쁜 것인지 계속해서 반문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아마도 그간 주고받은 상처에 타당함을 붙이고 싶던 치졸함이었을 테다. 핑계가 필요했다고 여긴다. 부끄러운 과거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이 자라나면 크게 두 가지 방향의 선택을 하게 된다. 더 집착하거나, 더 회피하거나. 나는 회피를 선택했다. 친구는 있지만 만나지 않아도 괜찮았다. 게임을 하며 주고받는 순간의 인스턴트 상호작용이 위로가 됐다. 가족과 대화하는 일도 지쳤다. 연애는 했음에도 사랑을 말하기는 어려웠다. 비혼이라는 단어를 쉽게 꺼내버렸을 때가 있는데. 결혼에 대한 회의감을 그런 식으로 표출했다.
한편 중간중간 왈칵 쏟아져 나오는 함께에 대한 집착은 올가미가 되어 상대를 조여왔다. 사력을 다해 외로워지지 않으면 잠깐의 치기로 함께에 중독되어 버린다. 영원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영원을 그리는 욕망이 자꾸만 자라나는 것이다. 나는 사력을 다해서 외로움을 선택해야만 한다.
외로움을 선택할 수 있는 채로, 중간중간 차오르는 영원에 대한 욕망을 분출하고 싶은 삶. 불가능한 이상은 그렇게 소모적으로 관계와 시간을 보내버린다. 어찌 됐던 지금은 사력을 다해서 혼자가 되는 것에 조금 익숙해졌다. 이 틈이 방심이 되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 혼자를 선택한다. 소통을 접어두고 달리고, 글을 쓴다. 약간의 욕망이 묻은 채로 글을 쓴다.
친한 동생이 찾아왔다. 연애가 쉽지 않다고 한다. 나만 놓으면 되는 연애, 무슨 말인지 짐작이 됐다. 노력해봐도 상대는 돌아오지 않고,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라서 자꾸만 현재와 비교되는 것. 함께 자리에 있던 A는 그저 평소의 상태로 돌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초반에 애정의 갈고리를 던지기 위해 무리한 팔놀림을 하던 것들이 이제야 제 자리와 박자를 찾은 것 아니냐고. 잠자코 슬픈 한숨을 귀담아 들었다.
그런데 말이다. 헤어짐을 말하는 상대는 이미 관계의 금을 그어가기 시작한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정말 아프겠지만, 지금의 붙잡음을 위한 꽉 쥐는 노력이 정말 너의 진심일까. "사랑한다면 뒤돌아보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의 전제에는 그것이 사랑임을 확실히 알아봐야 한다는 경고가 내포돼있다. 너는 정말로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걸까?
이병률 시인은 "이성이 하는 사랑이지, 영혼이 하는 사랑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계속되어야 하는 관계일까?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일일까. 아니면 그냥 정상적인 상태라는 최면에 취해 네가 지키고 싶은 안정감일까."그에게 질문했다. 사랑은 아프다지만 아픈 것이 꼭 사랑은 아니다. 나는 동생에게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랑을 해라, 지금의 연인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해라. 연애에 묶여 사랑이 찾아와도 벗겨내지 말고. 사랑을 해라. 사랑을 해.
아무리 사랑이 부족한 사람도 자기애만큼은 빠질 수가 없어서. 믿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 나는 사력을 다해 외로워지려 한다. 사랑의 형태를 한 여러 감정의 액상이 찾아왔을 때. 진실을 가려낼 수 있도록 차갑게 얼리는 것이다. 아무리 얼려도 얼지 않는 조촐한 박동이 사랑이다. 최소한의 감정만으로도 심장을 움직이는 사랑을 기다리지만 있는 힘껏 외롭게 지낼 것이다. 제대로 솔직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최대한 혼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도 혼자입니다. 괜찮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