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산문

막연한 꿈이라도 걸을 수만 있다면

환상으로 시작하는 일이 얼마나 멋집니까

by 파르르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코미디언 박명수 씨가 무한도전에서 외친 말이다. 당시 무한도전을 중심으로 한 짤방 문화와 함께 퍼져나가 대학생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이미 다들 알겠지만, 큰 의미를 가진 말은 아니다. 그냥 그 상황에서 가장 단순하게 웃길 수 있는 말을 던진 것일 뿐이고, 특유의 고장 난 듯한 표정과 말투로 많은 이들의 웃음을 자아냈을 뿐이다. 그렇지만, "꿈은 없고요."라는 말의 솔직함만큼은 마음에 든다. 어렴풋이 잊고 있던, 꿈의 존재를 '없다.'는 말로 일깨워 준 그의 개그가,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우습지만은 않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꿈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장래희망이나 목표는 있지만, 꿈이라고 부를 만 한 단어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본다. 로봇이 된다던가, 변신을 하고 싶다는 둥 막연한 꿈을 읊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꿈을 잃었다기보다는 막연했던 꿈보다는 구체적인 목표나 장래 희망을 외는 일이 더 쉬워진 것 같다.


현실을 생각하면 할수록 꿈의 범위를 제한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단어를 들으면 가능성을 먼저 생각하게 되니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전제는 '할 수야 있겠지.'라는 가능성이다. 할 수 있는 일만을 상상하는 게 현재의 모습이라면, 과거의 꿈은 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지도 않았던 듯하다.


걷기 위해서는 길이 필요하다. 잘 깔린 포장도로는 아니어도, 걸음을 뗄 수 있는 곳. 묵묵히 걷는 사람들의 위대함은 '걷는 데'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막연한 꿈이라도 길로 생각하고 걸을 수 있는 태도. 환상을 보고서도 걸음을 옮기는 일. 가능성을 재단할 수도 없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으면서도 포장도로가 아니면 걷지 못하는 내 태도는 약간 부끄럽다. 환상으로 시작하는 일이 얼마나 멋진가. 마구 꺾이고 넘어지더라도 걷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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